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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1호선 어디서 시작하는지 아니?

길위에 해설여행 - 도시 여행기 1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


  내가 하고 싶은 것, 목표, 가고 싶었던 길 들을 모아서 버킷리스트(나의 꿈 목록)를 만들어서 가지고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미래에 하고 싶은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가끔씩 들여다보면 어느새 이루어 진것들이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해 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버킷리스트를 업데이트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적어 놓았다. 둘레길 답사라던가 연애, 가고 싶은 해외여행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국도 1호선을 종주하는 것이다.


   둘레길을 답사하고 걸으면서 나에게 영향을 끼친 몇가지 길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삼남대로이다. 이를 알게되면서 전라도쪽으로 답사를 제법 많이 다녔다. 그리고 삼남대로가 현재 국도 1호선 아래에 매몰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그래서 인지 마음 구석에 1호선을 완주해야 겠다는 작은 의지가 생겼는데 어느새 자라나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 않으면 숙제하지 않은 것처럼 찜찜함이 계속 남아 언젠가는 하고 말테다라는 의지(?)를 불태우곤했다. 여러 번의 시기를 놓치고 결국 결전의 날이 왔다. 이날 아니면 더이상 할 수 없을 듯하여 마음먹고 나섰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차를 몰고 무작정 목포로 미친듯이 운전하여 내려 갔다.



국도 1호선, 그리고 삼남대로


국도 1호선 정의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이르는 일반 국도. 목포시를 기점으로 호남 지역의 인구와 산업이 밀집된 서부 평야지대(무안, 함평, 나주, 광주, 장성, 정읍, 김제, 전주, 완주, 익산), 충청남도 중심부(논산, 공주, 연기, 천안)와 대전광역시 그리고 수도권 남부(평택, 오산, 화성, 수원, 의왕, 안양)와 서울특별시를 관통한 다음 경기도 서북부(고양, 파주)를 거쳐 평안북도 신의주시까지 뻗은 도로이다.  

국도1호선 [國道1號線]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삼남대로는 조선시대 10대로 중 하나이며, 삼남지방(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으로 내려가는 길이자, 제주로 가는 귀향 길이기도 하며, 곡창지대에서 세곡을 실어나르기위한 가장 빈번하게 다녔던 길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양위로는 의주대로가 있어 중국에 가장 빨리 닿을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두 개의 옛길은 근대에 와서도 아주 효용이 높은 길이였다. 철도로는 경의선과 호남선이 이어지는 길이고, 도로로써는 국도1호선의 근간이 된다. 옛길은 일제강점기에 신작로라는 신식 도로를 개설함으로써 기존의 대로를 흡수하였다. 천안 위쪽의 길은 예전 정조시대에 만들어진 시흥대로와 거의 동일하지만 천안 아래로는 조금 다르게 만들어 졌다. 하지만 지나가는 도시는 거의 비슷하다. 단지 국도 1호선의 끝은 목포이지만 삼남대로의 끝은 해남군 이진리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옛길을 다녀온 나로써는 국도 1호선이 특별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옛길을 원형 그대로 걸을 수 없으니 자가용으로 대신하여 다녀 본 것이다.  


   국도 1호선의 북쪽 끝은 신의주까지이지만 실제로는 철책선때문에 판문점까지만 이어져 있는데, 그나마 문산을 지나 통일대교 이후부터는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민통선구간이라 실제로 자가용으로 갈 수 있는 곳은 통일대교 앞까지 이다. 약 496km 정도 되는 거리를 하루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목포의 시작점에 차를 멈추고...


  밤에 차를 몰고 내려가 목포시내에서 하루를 보내고 아침 일찍 시작점을 찾아 나섰다. 그전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목포역 근처에 있는 감자국집을 찾아갔다. 돼지 등뼈를 푸짐하게 내어주는 식당이다. 국물이 맑은 것이 여타의 뼈해장국과는 달랐다. 곰탕국물에 뼈를 넣은 듯한 느낌이다. 개운하게 속풀이하고나서 차에 올랐다.


   맑았던 하늘이 이날따라 비오는 날로 바뀌었다. 운치있는 날이다.



   국도 1호선의 남쪽끝은 목포 신항이 있는 고하도라는 섬 중간이다. 길이 단절된 것도 아니고 계속 이어져 있고 직진을 했다면 해남까지 연결되는 길이다. 하지만 지도에서 1호선 끝이자 시작점은 신항교차로이다. 목포신항교차로에는 아직도 세워져 있는 세월호가 눈에 들어온다. 2년 전에 왔을때만 해도 누워있었던 배가 지금은 세워진채 일부가 분해되어 있다. 저런 모습을 보이는데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것이 의문스러웠다. 짧게나마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둘러본 후 본격적인 나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하였다.

세워진 세월호의 모습 - 선수쪽 갈라진 틈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고하도에서 왔던 길을 되돌려 운전하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수려한 디자인을 한 사장교인  목포대교를 건너는 것이다. 오른편을 바라보면 유달산이 보이고 그 위로 해상케이블카가 유달산을 가로질러 넘어가고 있다. 바다위와 산위를 넘어가는 케이블카를 타보는 것도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다음에 목포를 찾아와야할 이유가 생겼다. 국도 1호선을 찾아 가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는 않았다. 도로 사거리마다 세워진 안내 표시판에서 흰색 동그라미 1번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혹시나 헤맬것을 대비하여 스마트폰에 1호선을 검색하여 지도위에 띄워놓고 운전을 하니 이리저리 신경은 쓰이지만 그런대로 운전할 만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2,3차선으로 천천히 차를 몰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도로의 구분 및 표시)



 목포를 벗어난 후 처음 만나는 도시가 무안이다. 원래대로 가려면 1번 국도를 타고 무안시내 외곽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무안시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여 조금 벗어나 시내길로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서울과 사뭇다른 시골스런 모습, 큰 건물없이 나즈막한 빌딩이 오밀조밀 모여있고, 그나마 고층빌딩은 아파트 뿐인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이 풍경이야말로 자연과 더불어 섞여있는 멋드러진 모습이다. 주변에도 높은 산이 별로 없다보니 조금 높은데 올라서면 시내뿐만 아니라 들판이 끝나는 곳까지 넓게 바라 볼 수 있다. 문득 이여행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아니 내가 어떻게 여행을 해야할지 결정을 해야했다. 국도여행이니 만큼 오로지 1번 국도를 따라 운전만 하면서 올라가거나 무안시내에 들어온 것처럼 1호선에서 만나는 도시를 들렀다가야 하느냐는 결정이다. 내 마음은 도로옆에 있는 도시를 거쳐 가는 거였다. 1호선 국도를 조금 벗어나더라도 의미가 퇴색되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무안시내를 지나면서 내 여행에 대한 주제를 정할 수 있었다. 


   여행이 조금 변하면 어떤가? 모든게 정한대로 되지않을때도 있거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도 하니 그걸 선택하여 따르면 되는게 아닐까? 이렇게 내 여행은 애초에 계획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작은 한양이라 불리웠던 도시 - 나주시 


   무안을 거쳐 1번 국도 표시를 찾아가다 보니 익숙한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전라도쪽 답사를 할때 많이 머물렀던 곳이자, 나주 둘레길이 생겼을때 홀로 답사 및 리포트작성하러 왔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나주시는 구도심과 신도심이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구도심은 금성관과 나주읍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도심으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다. 전라도라는 말은 전주와 나주가 합쳐진 말이다. 그만큼 나주라는 도시는 예전에는 큰 도시이자 주요 길목에 위치한 도시였다. 조선시대에는 목포까지 나주목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나주에 부임해온 목사의 위세가 대단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주에는 목사가 기거하던 내아건물이 남아있어서 한옥 숙박체험이 가능하다. 맞은편에는 관리들이 쉬어가던 건물이였던 금성관이 자리잡고 있다. 때에따라서는 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기능을 가진 곳이다 보니 규모가 제법 크다. 이러한 관아 건물은 전주에도 가면 만날 수 있지만 금성관처럼 온전하지 않고 한쪽 건물이 없어져 날개가 떨어진 새처럼 보인다.



 나주에 오면 맛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나주곰탕일 것이다. 비오는 날에도 여기는 사람들이 제법 북적거릴만큼 많이 보였다. 대부분 곰탕식당 거리에 몰려 있으며 저마다 이집저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고 있다. 블로거나 타지역 사람들은 나주 하얀집을 추천하지만, 현지인들은 골목 사이에 있는 남평할매집을 선호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하얀집 옆 한옥집을 좀더 많이 다녔었다. 고기가 좀더 부드러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침을 거하게 먹고 나오다 보니 곰탕은 땡기지 않았지만 입에서 침이 고였다. 조건반사인가 보다.  짧게 금성관과 나주향교를 둘러보며 조금씩 변하는 나주시를 보았다. 한옥거리로 조성하려는지 조금씩 수전하고 옛 모습의 집으로 공사하는 현장이 읍성 주변에 제법 보였다. 



때로는 여행이 일정대로 되지 않는다 


   아쉬움을 접은 채 계속 차를 타고 나주시내에서 광주방향 도로를 타고 가다가 1호선 국도를 다시 만났다. 예전에는 나주시를 가로질러 갔을 터인데 지금은 나주시 외곽을 돌아 도심을 빠져 나간다. 그래서 좋은 것은 고속도로처럼 빠르게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신호등도 없고 횡단보도도 없다. 무료로 다닐 수 있는 고속도로 같은 국도이다. 1호선이 인접한 도시가 많지만 도심을 들어서는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 우회하여 돌아갈 뿐이다. 그러다보니 빠르게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운전하며 오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지나가다 보이는 곳이 있으면 들려보는 것으로 여행방법을 바꾸었다. 그러다 논산 연무대가 보이는 곳에 신병훈련소 입구가 보였다. 지나가다 그대로 차를 세우고 그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서 신병들의 군가 소리도 들려왔다. 


  "여기가 TV에 나왔던 바가지가 극성인 그곳인가?" 


   왜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을까? 남자라면 일생의 20여 개월을 보내야 하는 중요한 장소인데 잠깐에 이별을 잘 보내게 해주지는 못하고 그걸 상술로 이용한다는것이 울화통이 터지게 해서일까? 나한테는 이곳은 신기한 장소일 뿐이다. 방위로 집근처 부대에서 훈련을 받다보니 논산훈련소는 그저 낯선 장소일 뿐이였다. 훈련소앞을 지나가다 '선랴인랜드' 표시판이 보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표시판을 따라 들어갔다. 여기가 예전 TV드라마인 '미스터선샤인'의 실외 촬영장소였다. 코로나 여파로 임시 휴관한 상태이다 보니 실내를 들여다 볼 수 없지만 담너머 보이는 세트장 모습만 봐도 놀랍고 궁금증을 자아냈다. 실내에 들어서면 멋드러지지 않을까 싶었다. 썰렁한 바람과 몇 몇에 사람들만이 지나가는 이곳은 폐허의 도시처럼 보인다. 대신 다음에 다시 찾아와야지 하는 여행의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선샤인랜드 주차장앞에 논산시내의 관광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잠시 드려다보니 제법 관광지가 많았다. 그중에 눈에 들어온 장소가 강경읍이다. 예전 부여에 봉사차 갔었을때 강경의 막걸리를 맛보여준것이 기억이 났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강경읍과 부여는 마주보는 동네이다. 갑자기 강경읍에 가고싶어 졌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4시를 넘어섰다. 이대로 임진각을 간다고해도 밤늦게나 도착할텐데 그럴 바에야 논산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강경읍내를 둘러보기 위한 나름에 생각이 담겨있기도 하다. 원래 일정은 1박 2일의 일정이였는데 급작스럽게 2박3일의 일정으로 변경되는 순간이다.


   여행은 가끔 이렇게 된다. 나름 일정을 짜고 계획대로 움직이는것을 선호하는 나이지만 요즘은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기보다  즉흥적인 상황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계획에 없던 계획을 만들거나 장소를 바꾸기도 한다. 이번 여행도 계획한 것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이고 무계획적인(?) 상황을 많이 내포하고 시작한 여행이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논산에 숙소를 예약하고 강경읍으로 가보기로 했다.



  옛 추억의 맛, 막걸리를 찾아보다 


 강경읍을 찾은 주된 이유는 막걸리였다. 몇 년 전 부여에 봉사차 왔을때 마을청년회장님이 봉사단이 저녁식사할때 맛보여준 술이 강경에서 만든 막걸리라고 했다. 탄산이 적고 부드러웠던 막걸리 맛이 생생히 떠오르면서 강경에 가면 그 막걸리를 맛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강경역 주변에 차를 세우고 마을을 돌아보니 1980년대 분위가 물씬 풍기는 아담한 마을이였다. 눈에 뜨이는것은 주변에 첨탑 높은 교회가 제법 많다는 것이였다. 일단 막걸리를 찾아보기위해 마트에 들어서서 강경의 막걸리를 추천해달라고 하니 '망성막걸리'를 소개 받았다. 강경에서 많이 먹는 막걸리라고 하니 일단 한 병을 사다가 차에 두었다. 이제는 강경읍을 둘러보려 한다.

 

   애초에 계획에 있었던 곳은 아니지만, 정감이 가는 마을이다. 금강을끼고 부여와 마주한 이곳은 예전부터 포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젖갈을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둘러봐도 젖갈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짧은 시간에 둘러 보려고 한것이 욕심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름에 볼거리 많은 마을이다. 그중에 먼저 찾은 곳은 옥녀봉이다. 그 위에 올라서면 금강을 내려다보기 좋을듯 싶어서 이다. 옥녀봉위에는 최초의 침례교회 예배를 보았던 초가집이 조성되어 있다. 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선교를 하기위해 들어오면서 배를타고 왔기에 포구가 있던 도시에 교회가 먼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인천이나 강화에 최초의 교회나 성공회예배당 같은 건물이 제법 있다. 금강또한 마찬가지이다. 금강 하구에 가까운 부여와 강경에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와 선교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시골마을인데도 교회가 무척 많았던것이 이해가 되었다. 강경읍도 포구였기에 선교사들도 들어왔을 터이다. 그래서 자리잡고 선교활동을 하다보니 시골마을 치고 많은 수의 교회가 점차 생겼을 것이다. 옥녀봉에 올라서서 강경읍내를 내려다 보니 교회탑이 높히 세워진 건물이 눈에 잘 들어왔다. 낮은 건물에 뾰족한 종탑은 금새 확인이 되기 때문이다.  


 금강이 변하고 있었다. 해가 지면서 노을이 점점 하늘을 붉게 물들였고, 금강도 붉게 물들였다. 금강주변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뜨였다. 여기는 서울과 달리 보였다. 마스크 쓴 사람도 없고 걱정하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또다른 낙원인가 싶다. 잠깐 들렸다 가려했던 강경은 어느새 무궁화호 타고 1박하러 와야할 답사여행지로 자리잡혔다. 언젠가 날이 좋은 날에 막걸리 찾으러 다시 내려오리라 마음에 새겨본다.



 덧붙임.


 망성막걸리는 산도가 별로 없다. 까끔하고 탄산느낌이 적어 부드러웠다. 금새 한 병을 비웠다. 두 병 사올걸 그랬나...

  강경과 논산은 이대로 산뜻한 여행지이다. 논산은 그저 군인가족만 찾아오는 선입관이 있을법한데 그렇지 않다. 다니다보니 충분히 1박2일로 올만한 여행지이다. 강경읍 서원과 옥녀봉, 금강하구 노을, 논산 관촉사와 훈련소 주변만 둘러봐도 좋을듯 싶다. 물론 여기 말고도 갈곳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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