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아리수,열수,경강 그리고 한강-열번째

5코스 강남의 발전, 영동대교 건설_2

  석촌호수를 벗어나 신천동을 거쳐 한강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잠실지역은 아파트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초고층 아파트가 가득차있어 낮은 산 사이 계곡을 걷는 것이아니라 아파트로만든 산 사이 계곡을 걷는 기분입니다. 때로는 바람이 많이 불리도 합니다. 석촌호수 뒤편에 동네 이름을 보면, 삼전동과 석촌동, 신천동이 이어져 있습니다. 모두 송파강 유역에 있었던 지명과 나루명칭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삼전동은 삼전도나루에서 유래된 것이며, 신천동은 한강 북쪽 강이였던 신천강에서 따론 이름이며, 석촌동은 백제와 고구려시대에 돌무덤이 많아 돌이 늘어선 모습에서 따온 명칭입니다. 


잠실벌 지명의 변하다

  신천동시장 골목을 지나면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신천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명칭이 바뀌어 잠실새내역으로 불리웁니다. 예전 잠실섬과 부리도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이 재개발이 되면서 이주하여 정착하던 마을이 신천동 일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하철역 명칭도 처음에는 신천동이라는 명칭을 따라 신천역이라 하였는데 잠실일대가 발전하면서 잠실새내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내‘라는 의미는 옛 잠실벌 주변에 있었던 ’신천마을‘의 고유 한글인 ’새내마을’에서 따온것입니다. 역명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서대문구 신촌동과 신촌역과 발음이 비슷하기도 하며, 건설중인 서해선의 ‘신천역’과 중복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역명을 바꾸기위해 건의를 하였었습니다. 오히려 잠실새내역은 잠실역과 잠실나루역과 나란히 붙어 있어 시민들에게 오히려 혼동시킬 수 있는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몇 차례의 우여곡절 끝에 2017년에 잠실새내역으로 확정되고 주변 명칭 안내판 정비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잠실이라는 프리미엄을 얻으면서 옛 마을은 사라진 셈입니다.



사라진 송파강그 자리에 탄천이 흐르고...


  잠실새내역 사거리를 건너 석촌호수로를 따라 내려가면 한강공원과 이어지는 토끼굴을 만나고 컴컴한 동굴을 가로질러 가서야 탁 트이는 풍경을 마주하며 너른 한강 앞에 서게됩니다. 그리고 한강을 바라보며 왼쪽 청담대교가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지도를 보면 양쪽으로 정돈이 된 길죽한 강이 한강과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가 탄천입니다. 옛 지도와 비교해서 본다면 송파강 끄트머리가 탄천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잠실섬과 주변의 송파강과 탄천의 모습



  탄천은 오래전부터 동방삭의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은 기원전 한무제 시기 익살과 해학의 정치가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서는 장수의 대명사인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더 유명하며 개그프로에 장수를 기원하기위해 만든 긴 이름에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원래 동방삭의 수명이 삼십년으로 명부에 기재된 십(十)자에 한 획을 더 그어 천(千)으로 바꾸면서 삼천갑자를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옥황상제는 저승사자 마고를 보내 잡아오게 합니다. 마고는 꾀를 내어 이곳 탄천에서 숯을 빠는 시늉을 하는데 길을 지나던 동방삭이 “내 삼천갑자를 살지만 이런 기괴한 모습은 처음 본다.”고 하자 바로 붙잡힌다는 것입니다. 동방삭은 한나라 시대에 문장가로써 출현한 인물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실제로 동방삭은 3천갑자를 살지 못하고 1갑자(1갑자는 60년) 정도만 살았다고 합니다. 하여튼 탄천은 전설대로 숯을 빨았던 장소이자, 실제로 숯을 굽고 생산했던 지역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숯의 검은 물이 흘러 물색깔이 검다보니 탄천이라고 불리웠습니다. 탄천은 용인시에서 발원해서 성남시를 거쳐 한강과 합류합니다. 강원도에서 벌목된 목재가 이곳 송파나루에서 지금의 성남시에 있는 숯가마로 옮겨져 숯을 생산했는데 이곳을 숯골 또는 독정이마을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남의 옛 지명이 탄리(炭里)였고 이앞을 흐르던 하천이 탄천이였습니다. 지금은 검은 물이 흐르지 않고 한강과 합류하기전에 양재천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잠실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탄천은 송파강에 합류하는 작은 지천이였으며, 현재 탄천 주변에는 겨울철새의 보금자리로 자연하천으로 탈바꿈하였고 합수부에는 잉어등이 몰려다니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다시 서울숲으로...


  탄천 위를 올려다보면 넓은 고가도로가 지나갑니다. 다리라고 생각하지 않은 올림픽도로(대교)가 지나가고 정면에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복층으로된 청담대교가 보입니다. 아래층은 지하철 7호선이 뚝섬유원지역과 청담역 사이를 잇는 철로이며, 위층은 자동차전용 도로로써 분당까지 이어지는 고속화도로입니다. 예전에는 수서간고속화도로라고 불리우다가 현재는 동부간선도로 일부가 되었습니다. 한강에 놓여있는 다리중에 유일한 복층형 다리입니다. 물론 잠수교와 반포대교도 복층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애초에 복층으로 계획된 것은 청담대교입니다. 팔당댐 이후부터 한강유역에는 31개의 대교가 있는데 순수하게 서울시 권역에만 존재하는 다리는 총 22개 정도이며, 나머지 는 서울과 경기도를 잇는 다리입니다. 그중에 유일하고 저녁에는 녹색의 네온 불빛을 내뿜는 다리는 청담대교뿐입니다. 청담대교는 강남의 청담동과 이어지므로해서 청담대교로 불리운것이며, 이 일대의 한강변 물이 맑아 청숫골이라 불리웠고 청담동의 옛이름이 ‘청수동‘이기도 합니다. 



  한강의 남쪽은 수변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는 편입니다. 유일하게 조성된 공원이 없이 산책길과 자전거길만 존재하는 구간이 탄천을 지나 한강공원 잠원지구까지, 그리고 동작역부터 여의도입구까지입니다. 간간히 쉴 수 있는 벤치는 있지만 너른 공원은 없는 곳입니다. 그러다보니 한강을 마주하며 걷기에는 좋을 수 있습니다. 아무걱정 없이 발아래 걸릴 것 없이 무념무상으로 걸을 수 있는 포인트 장소입니다. 한강위로 지나가는 다리를 세면서 걸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입니다. 성수동과 청담동을 있는 한강에 7번째로 건설된 영동대교는 1973년 개통되어 강남 개발을 촉진시키는 데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전까지 한강을 잇는 다리는 한남대교뿐이였기 때문에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영동대교가 생김으로써 교통이 분산됨과 동시에 접근성이 개선되었습니다. 영동 (永東)이라는 명칭은 영등포의 동쪽에 있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1970년대 강남 개발 당시에 강남이라는 이름이 자리잡기 전 붙여진 명칭이라고 합니다. 영동이라는 이름은 ’비내리는영동교’라는 노래와 영동대로나 영동고등학교 등 지역 시설물과 도로 일부에 남아 있으며, 현재 강남으로 대체 및 확대되어 사용되어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영동대교를 지나 서울숲으로 가려면, 성수대교를 건너가야 합니다. 성수대교는 우리에게 큰 아픔을 안겨준 다리이기도 합니다. 성수동과 압구정동을 이어주는 교량으로 1994년 오전에 다리 중간 교각이 무너져내리는 사고가 발생하여 출근길 시민과 무학여고학생 등 30여명이 사망합니다. 복구공사를 통해 1997년에 재개통하면서 한강의 모든 다리를 시설물 안전진단을 다시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복구공사를 하면서 한강 북단과 남단에 입체교차로를 설치하여 간선도로와의 연계성을 높혀주었고, 붉은색 아치형 다리가 무척 인상적으로 보이는 대교입니다. 특히 밤에 조명이 켜졌을 때 아름다운 자태가 뿜어내는 다리이기도 하며, 성산대교와 명칭과 구조가 비슷하여 헷갈려 하기도 합니다. 성수대교의 남단은 압구정동으로 급작스런 강남개발을 통해 부자가 많이 생기면서 ‘압구정 오렌지족’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부유한 동네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압구정이라는 명칭은 이와는 반대로 아주 멋드러진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관상‘이라는 영화에 보면, 수양대군 옆에서 모사역할을 하였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을 도와 왕위를 찬탈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수양대군이 세조로 등극하면서 한명회는 한강변에 가장 아름다웠던 장소인 두모포 맞은편 동호와 응봉 등이 내려다보이는 장소에 정자를 세우고 ’압구정(狎鷗亭)’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압구정의 의미는 갈매기와 더불어 여생을 한가롭게 보내겠다는 의미로써 말년에 여유롭게 보내고 싶은 한명회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한명회의 호로도 사용합니다. 단순하게 압구정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갈매기와 함깨하는 편안함을 추구하는것처럼 보이지만 황희정승의 호였던 반구정(伴鷗亭)과 비교하면 달리 표현됩니다. 압구정의 ‘압‘이라는 글자는 익숙하다, 친하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업신여기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갈매기와 노닐지만 내아래로 내려다보며 같이 놀겠다는 의미이며, 한명회의 권세가 어느정도였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반구정의 ’반‘이라는 의미는 짝, 반려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갈매기조차 하등한 동물이 아닌 내 친구와 같은 동급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황희는 조선시대 청렴한 정승으로 익히 알려진 사람으로 인품이 어떠했을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의미이지만 사람마다 보는 생각은 다르기 때문에 이름이 달리 표현되었습니다. 한명회가 4명의 왕을 섬기면서 정승에 자리를 유지합니다. 이로인해 익히 알려진 충직했던 박팽년, 성삼문 등이 죽던가 삼족이 멸하는 극형을 당하게 됩니다. 

압구정동에서 바라본 강북의 모습
정선의 압구정도



다시 서울숲공원으로...

  한강의 다리를 건너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로 합니다. 광진교나 잠수교처럼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다리로써 넓고 안전한 다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강의 모든 다리는 사람이 건너다닐 수 있도록 좁게 인도를 설치해 두었지만 실제로 건너다니기에는 불편하기도 합니다. 대교에 접근한다 하더라도 쌩쌩다니는 차량으로 인해 섯불리 횡단보도를 건너기가 힘듭니다. 다행이 신호등이라도 있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차량들이 알아서 서행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성수대교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다리에 접근하기 쉽고 신호등이 있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다리입니다. 그래도 자전거와 교행할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한강다리를 건너본적이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건너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설사 건너봤다 하더라도 광진교정도 건너봤다고 합니다. 이번 한강길 12개 코스를 다니다보면 7개 정도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한강다리를 건너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시끄러운 차소리도 있지만, 한강 중앙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의 모습은 참으로 대단해 보입니다. 너른 강폭과 주변에 펼쳐진 산과 아파트와 같은 건물이 촘촘히 붙어있어 독특한 하늘이 닿는 선을 만들어 냅니다. 더욱이 해질녘에 다리 위에 서게 된다면 지평선에 걸치는 일몰을 보는 보너스를 받게될 것입니다. 


  서울숲이 보이는 사거리에서 마무리해도 되지만 공원을 가로질러 서울숲역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끄러웠던 소음으로 피곤했던 마음을 살포시 내려놓는 기회가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숲이자리는 예전에도 교통의 요지이자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지금 한강길을 걷는데도 모이는 장소이자 다시 6코스를 시작하는 중간역 같은 곳이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리수,열수,경강 그리고 한강-아홉번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