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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명리학 -운이란 무엇일까?

운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살다보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 잘 되면 '오늘 운이 좋은데!' 라고 말하고 반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운이 없다고 말한다. '운()'이라는 말은 명리학에서도 사용하는 말이다. 그리고 운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여 '운명()'이라고 말한다. 과연 사람의 삶은 정해져 있을까? 운명이라는 것도 정해져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고 이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우선, '운명'이라는 말의 사전전 의미를 찾아보면,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가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때 그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 힘에 의하여 신상에 닥치는 길흉화복" 

이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는 힘, 불가항력적인 것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말하며 영어로는 fate  또는 destiny이라고 번역한다. 그래서 무슨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는 운명론을 거들먹 거린다. 특히 잘 안풀리거나 힘든일이 계속 될때는 더하다. 과연 운명이라는 것을 정해져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에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신의 뜻이라고 말하며 어느정도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일부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헤쳐나가거나 선택하는 것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명리학 또는 역학에서는 운 또는 운명이라는 것을 말할때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고 보며 일부는 선택에 따른 결과로 말한다.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과거의 내 행동 또는 내 선택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그 선택마저 운명이라고 말하면 내 인생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 행동과 선택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생기고 그걸 바탕으로 사람들이 나를 규정하고 나를 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 대한 미래도 예측하려고 한다. 이러한 것은 나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이 행동하거나 어떤 상황에 대한 결정했던 방법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을 축적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항상 7시에 일어나고 8시 15분 전철을 타고 사무실에 9시 도착 후 일하다가 6시 되면 퇴근하고 10시까지 술마시며 놀다가 막차타고 귀가하는 생활을 하고 있고 반복해서 해오고 있다면 A라는 사람의 패턴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더해지면 반응이나 행동 패턴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운'이라고 말한다면 A의 행동은 인과응보, 원인과 결과 또는 운에 따른 방향성으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과 통계적인 자료가 쌓이면서 기호적으로 풀어놓은 것이 우리가 아는 역학(명리학=사주학=간지학)이라고 말한다. 예상치못한 상황도 경험으로써 축적이 되면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A의 행동성 예측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보여줄 때도 있다. 이러한 것을 보고 '행운()' 또는 불운()'이라고 말한다. 이부분은 예측할 수도 없고 무언가에 극복할 수 없는 힘으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운이라는 것은 잡을 듯 하면서 잡을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다가오는 신기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로 인해 인생은 극과 극으로 달라지는 경우도 있기에 사람마다 같은 삶을 사는 경우가 드물다.  명리학에서 운이라는 것은 이처럼 계속 움직이는 것이자, 반복되는 것이다. 운이라는 것도 시기에 따라 대운과 세운으로 구분하고 그 시게에 특정한 운이 뭉쳐져 있다고 보고 있다. 재물운, 직장운, 결혼운, 공부운 등등 다양한 운이 어느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해당운과 연관된 일이 잘 풀릴 수 있다고 본다. 낚시하는 사람이 산으로 가지 않고 바다나 강가로 간다. 하지만 좀더 큰 수확을 바란다면 저수지나 낚시터로 갈 것이다. 거기에다 낚으려는 어종에 맞는 미끼와 찌, 낚시대, 계절과 시간도 고려할 것이다. 대충 준비하는 초보 낚시꾼과 모든 경험을 한 프로 낚시꾼 사이에는 물고기를 잡은 수를 비교한다면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결국 프로낚시꾼은 운이 좋아서라고 말하겠지만 많은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고기를 운이라고 대입해 보면 우리도 그 운에 대하여 잘 알고 성질이 어떤지, 어떠한 시기에 어떤 운이 올지 알고 있다면 대처하기 훨씬 쉬울 것이다. 그 부분을 얘기하고 학문적으로 정리된 것이 역학이다.


  단순히 나의 운을 알아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있어 어느 운이 어느때 나타나고 어느때 사라지는지 알고나면 그 시기에 적합한 낚시대를 드리우면 되는 것이다. 운이라는 것은 계속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운을 찾아야 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운을 찾아 움직이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운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운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시기를 알면 도움이 될 것이다.

 


  과연 과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운이라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걸까?


 고전역학이 아닌 현대 양자역학이 대두되면서  비슷한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자의 움직임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시간을 정확히 하려면 위치가 불명확해지고 어느 위치에 집중하면 어느 시간에 존재하게 될지 불명확하게 된다. 결국 원자는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기에 대략 위치에 대한 확률로만 존재성을 알게 되는데 이를 파동함수라는 것을 통해 산출해 내며, 이러한 측정의 한계를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부른다. 


불확정성의 원리

   양자 얽힘(양자 얽힘 또는 간단히 얽힘은 두 부분계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일련의 비고전적인 상관관계이다. 얽힘은 두 부분계가 공간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존재할 수 있다.


 운이라는 것과 원자의 공통점은 서로의 위치를 속단할 수 없다라는 것이며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나타날 확률이 얼마인지 계산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명리학의 세운과 대운이 만세력을 통해 그 운을 표기해 은 것이라면 과학에서는 파동함수를 통해 원자내 전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모형을 만들어 s, p, d, f, 등의 기호를 통해 원자의 형태를 계산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원자의 크기를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정확한 원자의 크기를 아는 것이 아니라 원자가 발견될 확률이 90% 이상인 곳을 표기해 놓은 것이 원자의 크기인 셈이다. 운이라는 것도 흘러다니면서 영향을 주기도하고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시기에 어떤 운이 놓여 있는지 알기에 보다 쉽게 미래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하나의 다른 과학을 들여다 보자. 

 최근 마블영화 중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보면 시간강탈작전을 펼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타임머신이 가능한 것은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 )이라는 현상에 기인한 것이다. 미시세계에서는 떨어져 있는 두 개의 부분계(system)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호간에 연결되어 있어 영향을 주기도 한다. 측정하기 전까지는 2개의 시스템의 상태는 알 수 없지만 한 개의 system을 확인하면 나머지 하나도 결정이 되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순간이동 처럼 느겨질 수도 있다. 미시의 세계는 이처럼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거시의 세계에서 보면 텔레파시, 초능력 등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운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좋은 운을 통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운을 빼앗기는 기분이 드는 사람도 있고, 어느 사물이나 물건, 풍수에 따른 좋은 곳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운이 통하게 된다. 기존 물리학에서는 오로지 인과관계에 따른 설명만 하려고 하였기에 발생한 결과에 대한 원인 부분을 찾지못하면 인정하지 않거나 비과학적이라고 말하곤 했다. 무조건 과학적인 논리로 접근했기에 발생하는 오류이다. 하지만 역학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논리적 접근이 아닌 존재하는 상황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원인을 찾기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양자역학이 발달하고 다양한 이론이 나오면서 기존에 설명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조금씩 이해되거나 설명이 되고 있다.


  운이라는 것도 인과관계의 한 부분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힘 또는 에너지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데 이를 '운'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시크릿, 꿈구는 다락방, 해빙, 그릿 등에서 보면 꿈을 상상하고, 꿈을 쓰고, 외침으로써 하늘에 주문하고면 된다고 말한다. 결국 이러한 행동은 보이지는 않지만 미시의 세계에 있는 운 또는 잘되는 에너지나 양자에 내가 영향을 끼치는 운동을 함으로써 하늘을 통해 주변을 통해 영향을 끼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은 창조가가 아니라 관찰자다"

 "너희는 물질계로 들어오면서 자신에 관한 기억을 지웠다. 덕분에 너희는 말하자면 성안에서 그냥 깨어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되는 쪽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너희가 완전한 선택권을 가진 존재, 즉 규정상 신인 존재로서 자신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너희가 신의 일부라는 얘기를 듣는데서가 아니라 신의 일부가 되고자 선택하는 행동 속에서다 ... 신에게로 돌아가는 행동을 기억(remembrance)이라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 신과 나눈 이야기 1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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