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심판하다.
같은 책이라도 어느 순간에,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달라진다. 어릴 때, 성인이 되어서 볼 때 다른 느낌을 주는 것과 같다. <심판>이라는 베르나르의 단편 희곡은 예전에 봤다면 삶의 과정이 이렇게도 그려질 수 있구나라고 상상력이 대단하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학과 많은 책을 통해 배움이 커지다보니 달리 보였다. "이건 동양 철학적인 관점이 보이는데!" 라는 생각이 읽는 내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이책은 베르나르의 두 번째 단편 희곡이자 실제로 연극으로 만들어지는 대본이라고도 한다. 폐암으로 죽은 아나톨은 판사인 가브리엘 앞에서 삶에 대한 재판을 받게된다. 변호사인 카롤린과 검사 측 베르트랑과 전생을 평가하여 천국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다시 환생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우리네 삶에서 생각수준과 다른 재판의 기준을 제시한다. 착하게 살았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 재판의 포인트이다. 그리고 기준에 미달하면 다시 태어나는 형벌(?)을 받게된다. 저승에서 10명의 대왕앞에서 재판을 받고 지옥에 가는 형벌을 받거나 환생하는 상을 받는다는 '신과함께' 영화 속 세계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 상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책에서는 아예 형벌이라고 단정짓고 얘기가 펼쳐진다. 자기 삶에 충실히 살았다고는 하지만 주어진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것도 죄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과연 우리는 내가 주어진 능력과 달란트를 얼마나 찾았고 사용하고 있을까 되새기게 만든다. 또한 깨달은 자가 그 경험을 알려주고 있을때 우리는 얼마나 받아들일까? 본인의 편견이나 우월성을 내세우며 받아들이지 않거나 무시하기 일쑤다. 이러한 사람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가브리엘 그러니까 삶을 요리로 치자면 유전 25퍼센트, 카르마 25퍼센트, 자유의지 50퍼센트가 재료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 모두는 태어나는 순간 그 세 가지의 영향하에 놓이다는 뜻이죠. 유전이라하면 부모, 그리고 당신의 성장 환경을 말해요. 말하자면 자유 의지 50퍼센트를 가지고 다른 요소들을 새롭게 분배할 수 있다는 거죠.
베르트랑 어릴 때 아버지가 나한테 이러셨어. "살아보면 알게 될 게다. 아들아. 세상에는 멍청이가 가득하단다. 상처도 쉽게 받아 면전에서 멍청이라는 얘기도 해줄 수 없지."
베르트랑 진실을 들려주면 못 견디는 거, 이게 바로 멍청이들의 근본 특성이지.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면 오죽하겠어. -중략 - 칭찬, 멍청이들은 칭찬이라면 죽고 못 살아. 이게 그들의 두 번째 특성이지. 칭찬을 듣는 순간 상대를 좋아하게 돼.
베르트랑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그걸 여기서는 아주 좋지 않게 보죠.
다시 태어나는 것이 형벌이다.
어떻게 살아왔고, 낭비하지 않았는지, 얼마나 덕을 베풀었는지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것은 공통적일 수 있으나 형벙의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신과 나눈 이야기'를 보면 지옥은 없다라고 신은 말했다. 다시 깨닫고 넘어서기위해 다시 태어나 물질세계를 경험하고 본인의 능력을 발휘하여 무언가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진정한 절대자 이자 신이 바라는 모습이라고 했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을 탓하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탓하고, 남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탓하면서 인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극복하기위해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들도 있다. 타고난 것은 다르지만 상황을 인지하는 방식은 다르다. 결국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이라는 말을 먼저 듣는다. 물론 유전적인 능력은 부가적으로 본다면 말이다.
육체안에 본성이자 에고(또는 본신, 영혼)라 불리우는 존재가 육체를 갈아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깨우침을 얻었을때만 천국(또는 저승)에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윤회의 굴레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 수련을 거쳐야 한다. 그러한 과정은 무수히 반복되기 때문에 육체를 가진 사람이 중요한게 아니라 고유한 영혼이 중요하고 사람에 이름이 아닌 영혼의 이름(또는 관리번호)이 중요하여 그 목록을 관리하고 있다. 얼마나 달성했는지 여부를 판단하여 남을지 다시 태어날지를 정하는 것이 동양의 윤회사상과 같다. 단지 형벌이냐, 축복이냐만 다를 뿐이다.
완벽한 세상에 남아서 고통없이 사는 것이 천국의 삶이라면 고통과 고난이 이어지는 인간의 삶은 지옥이자 변화무쌍한 세상이다. 그래서 아나톨은 그래왔듯이 평이하고 안정적인 삶을 갈구하며 천국에 남기를 바랬지만 형벌를 받아야만했다. 반대로 변화없는 시간속을 보내야 했던 가브리엘은 무언가 변화를 갈망했기에 재판에 성의를 다하기보다 최대한 간단하고 편하게 처리하려 한다. 결국 천국이라고 마냥 좋은것만은 아닌듯 하다. 결국 천국과 지옥은 내가 인생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베르트랑 병원에서야 그럴 수 있지. 여기선 안돼. 기적이 절대 통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 여기야. 다른 멍청이들한테 그랬듯 그에겐 무-관용 원칙에 따라 형이 선고될거야. 태어나는 형벌을 받겠지. 무-조건.
가브리엘 "그가 옳은 배우자를 찾았는가?" 에 대한 답은 아니다, 에요. "그는 좋은 판사였는가?"에 대한 답은 그렇다, 예요. 마지막으로 "피고인은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날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다, 예요.
아나톨 사랑은 모든 법 위에 존재하는 법 중의 법이죠.
베르나르가 역학을 배웠을까?
이 소설은 동양철학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특히 역학과 결이 닿는 부분이 많다. 우주의 규칙을 압축하고 압축하여 사주라는 것에 담아 놓았다. 사주는 부모와 전생의 공덕에 따라 다시 배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전생에 공덕을 많이 쌓으면 좋은 사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만, 부족하면 활인하는 삶을 통해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남을 가르치거나, 치료하고 인생에 도움을 주는 모든것이 활인의 업이다. 그만큼 고달퍼하는 사람도 많고 부족한 덕을 쌓기위해 내려온 사람도 많다. 심판에서는 환생시키기위 앞서 인생을 선택할 카드를 준다. 어디서 태어나고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어떠한 단점을 담아서 어떤 인생의 목적을 달성할 건지 시나리오의 큐시트처럼 제공한다. 그에 따라 환생한 사람은 타고난 능력과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억을 지움으로해서 순수한 본인의 선택과 의지를 통해 이루어나가게 한다는 점이다. 모든 종교는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인류 교화를 하던가 자신의 깨달음을 통해 신의 자식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근간이다. 역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역'을 배움으로써 사람들의 사주팔자를 맞춰주고 돈받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역학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도와주며 하늘의 이치를 깨닫기위함이다. 역학은 수단이 아니라 도구이다.
가브리엘 괜찮아요. 지금부터 당신의 내생을 위한 이상적인 여정을 우리가 함께 고를 거니까요.
베르트랑 이런 부모 밑에서 성인이 나올 확률이 훨씬 높죠. 노자님 말씀처럼 고생할수록 덕이 쌓이는 법이에요.
가브리엘 우리가 지금 정하고 있는 건 당신의 카르마에 해당하는 25퍼센트라는 사실을 알아둬요. 당신이 무의식의 소리에 계속 귀 기울일 때 펼쳐지게 될 인생 경로인 거죠.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징표들이 끊임없이 이 삶의 여정을 당신에게 일깨워 줄거에요.
소설을 읽다보니 각 주인공들의 일간이 궁금했다. 베르트랑은 판단력이 뛰어나고 정이없이 메말라 보이며 자기의 생각을 굽힐줄 모른다. 그래서 경금의 성격으로 보이며, 재판장 가브리엘은 지혜는 뛰어나며 재판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성향을 모두 맞추어 주려는 큰 마음이 있어 임수로 보여지며, 아나톨은 자기고집이 세고 재판장으로 앞에 나서서 주목을 받기를 좋아하니 병화로 보여지고 , 카롤린은 정이 많고 어디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지만 우유부단에 보이기에 기토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