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21세기 명리학 -앞으로 12년,안수정등(岸樹井騰)

앞으로 12년 - 안수정등(岸樹井騰)

  지난 역학 수업 시간에 현재의 상황이 처해있는 모습을 안수정등이라는 불교의 이야기와 60갑자의 물상으로 보여주셨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데 어느 순간 익숙함이 베이면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중국인의 생활도 잠시 멈추면서 미세먼지와 황사가 없었던 봄날을 맞이하기도 했고, 뉴스에서는 인간이 멈춘 자리에 자연생태가 복구되고 있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접하기도 했다. 사람의 활동이 멈추자 지구는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이 계속 지금처럼 활동한다면 자연 생태는 파괴되고 환경이 무너질 수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인류는 자연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경제발전이라는 자본주의 성향으로 인해 자연을 활용한다고 하면서 망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이 누적되어 지금에 코로나19가 퍼져있는 상황을 만든것일지도 모른다. 재미있게도 불교의 '안수정등'이라는 비유가 지금에 모습과 다르지 않고 역학에서 60갑자의 일주로 비유했을때도 현재의 상황이 긍정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2가지의 비유를 보자!



‘안수정등(岸樹井騰)’이란...


불교에서 인생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안수정등(岸樹井騰)’이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사나운 동물에 쫓기는 상황을 표현한 것인데 내용을 보면 이렇다.

▲ 단양 구인사 설법보전 외벽에 있는 '안수정등' 벽화.



 광야를 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무서운 코끼리가 나타나 쫓아옵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 속에는 나무넝쿨이 늘어져 있었고, 그 사람은 넝쿨을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이제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채 내쉬기도 전에 밑을 보니 사나운 용이 입을 벌리고 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둘레에는 네 마리의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밖에는 코끼리가 지키고 있으니 나갈 수도 없고 오직 나무넝쿨만 움켜쥐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어디선가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나타나서 나무넝쿨을 갉아대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위에서 꿀이 떨어져 입술에 닿자 그는 달콤한 꿀맛에 취해 자신의 처지를 잊고 맙니다.

  여기서 광야를 가는 사람은 중생의 모습이고, 고독한 모습이지요. 광야는 중생이 윤회하는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 육도를 뜻 합니다. 무서운 코끼리는 목숨을 앗아가는  살귀이고, 우물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며, 네 마리의 뱀은 인간의 몸인 사대(四大)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말합니다. 나무넝쿨은 중생의 생명줄을 말하고,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의 시간을 말하며, 꿀은 중생들의 앞에 펼쳐진 오욕락(五欲樂)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잠시의 오욕락이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는〔常〕 즐거움의 착각〔樂〕, 존재의 착각〔我〕, 깨끗함의 착각〔淨〕이 더 있습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 바로 이것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생자필멸(生者必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고,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이렇듯 인생은 무상(無常)하고 제행(諸行)은 무상인 것이며 제법(諸法)은 무아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처음 설하셨던 것이 고(苦), 집(集), 멸(滅), 도(道) 사성제인데 그 가운데 고성제는 인생은 고(苦)라는 것입니다. 생, 노, 병, 사의 근본 사고(四苦)를 이야기하고 여기에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득불고, 오온성고의 네 가지를 더해 인생이 팔고(八苦)임을 설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해 고(苦)라고 결론지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면 인생에 행복이란 것이 없고 고만 있다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하는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이해하면 저절로 의문이 풀릴 것입니다. 고성제가 인생의 현실에 대한 진단이라면, 집성제는 그것의 원인 분석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渴愛)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갈애의 근본 원인은 바로 무명, 즉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기 때문에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을 겪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출처 : 금강신문 원문 발췌


 사람들은 항상 사는게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젊을때는 쾌락을 찾아 술과 클럽을 전전한다. 나이들어서는 역시나 술과 돈을 벌려는 것에 혈안이 되어 가족은 어떤지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 얻었다 싶을때 자신의 건강은 나락으로 떨어져 또다시 고통에 몸부림 친다. 물론 이러한 모습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다른 형태로 고통을 말하기도 한다. 근본적인 해결적은 잊은채 현재의 달콤함에 빠지던가 그걸 찾아 위로하려 한다. 이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종교이자 마음을 내려놓기라는 명제일 것이다. 역학을 배우면서 60갑자 일주가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나름에 의미를 내포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2020년은 경자년인데 흰쥐에 해당한다.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역학 60갑자로 보는 우리가 맞이할 모습은...


 각각의 일주는 나름에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100% 다 맞다라고 할 수 없으나 함축된 일주에서 무언가 찾아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庚子년 

  지난 2020년은 경자년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지구상에 모든 국가가 힘들어하고 변혁이 일어났던 해이다. 경자(庚子)년은 오행으로 보면 흰색이자 지지로는 쥐를 의미하여 흰쥐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얘기한 쥐가 줄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 흰쥐가 작년의 모습으로 위기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때마침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辛丑년

 2021년은 신축년으로 하얀소가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의미에서 보면 뾰쬭한 신금의 물상과 신금을 담고 있는 축토의 모습이 흡사 주사기와 약병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 올해는 코로나가 완치될 수 있는 해라고 볼 수도 있다. 흰소는 불교의 심우에서 나오기는 하는데 흉폭한 소가 깨닫고 목동에 손에 이끌려 오면서 하얗게 변하여 나름에 깨달음을 얻은 상태를 보여준다. 어찌보면 우리는 이번 상황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1회용품 줄이기 등 운동을 하는 것도 지금 할 수 있는 캠페인이라 본다.


壬寅년

 2022년은 임인년으로 검은호랑이로 표현될 수 있다. 호랑이는 무섭다. 게다가 어두운 저녁에 눈에 빛을 내며 나에게 다가온다면 더 무서울 것이다. 그리고 검은색의 모습을 한 무서운것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 상상속에 저승사자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임인년은 어찌보면 다시 경고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변종이 생겨 퍼지기 시작한것도 무관하지 않을듯 싶다.


癸卯년

 십천간에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계수이며, 묘목은 계수의 천을귀인이자 육친으로 식신에 해당한다. 묘목은 꽃나무를 의미하기도 하고 내가 낳은 것이니 자식이자 내 후손 또는 여성이 될 수도 있다. 꽃이 피어야 인류는 번성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꽃이 피지 않으면 과실이나 곡식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귀인인 꽃나무를 가꾸고 아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화랑(郞)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나라 곳곳에 들판을 달리며 호연지기를 키우고 나라에 충성하련 청년 단체가 화랑인데 한문으로 보면 꽃 화(花)에  남자,사내 랑()으로 쓰여 있다. 화랑의 시작은 원화()에서 유래했는데 초창기에는 여성들의 모임이였다고 한다. 여성은 엄마이자 아내이기에 자식들에게 중요한 존재이다. 이들이 바로서야 후대가 번성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게 아닐까?


甲辰년

 갑진은 큰나무가 진토위에 서있는 모습인데 진토는 특이하게도 여러 성격을 지니고 있다. 지장간을 보면 을목, 계수, 무토가 함께 있는데 산중에 옹달샘 또는 덩쿨에 쌓인 우물이 있는 물상을 가지고 있다. 안수정등이라는 그림을 보면 쫓기던 남자가 우물에 들어가는데 덩쿨을 타고 내려간다. 그 덩쿨은 큰 나무에 메여있는데 여기서는 덩쿨이 갑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비유를 한다면 애국가 2절에 나오는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렇게 생긴 표현이 땅위에 우뚝 솟아있는 갑목의 모습이다. 어찌보면 위험에 빠져 있는 지금에 모습일 수 있다.


乙巳년

 을사는 덩쿨위에 뱀, 또는 녹색의 풀뱀을 의미한다. 안수정등 그림을 보면 사람이 덩쿨을 타고 올라가려는데 뱀이 덩쿨위에 있다고 했다. 을사년은 그러한 상태이다. 을목은 관목이자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따라 흔들리니 주변상황이 어떠냐에 따라 순응하려 한다. 사화는 독이 있는 뱀으로 그 독을 활용하여 자신의 우위와 능력을 표출한다. 변화의 시기이기도 하다. 옛 역사에도 을사년엔 민비시해가 있었고 '을씨년스럽다'라는 말도 이때 생겼다.


丙午년

  병화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을 의미하지만 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뜻하기도 한다. 오화는 병화의 양인으로 겁재의 성격을 띄우고 있어 자신의 성향을 끝까지 내세우려 한다. 다시 풀어보면 병오는 꽃이 만발하여 자신의 모습을 최대로 발휘하는데 그 안에 꿀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벌과 새가 다가와 자신의 능력을 표출할 수 있다. 병오는 꿀을 가득 가지고 있는 아름답게 활짝 핀 꼿이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움에 빠져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다. 또한 병오는 천복지재(天覆地載)의 일주이기도 하다.


丁未년

  정화는 병화 태양과 비교하여 달이자 모닥불이며,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불이다. 미토는 잡목이 가득한 땅을 의미한다. 들판에 잡목에 불이 붙어있는 불바다이자 그 모습이 가히 사람들에 시선을 끌어 모을 것이다. 들판에 불이 올라오는 해이며, 사람이 꿀 빠는(?) 사이에 주변(자연생태)의 상황은 악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戊申년

 무토는 큰 산이자 신금은 바위와 같은 모습이다. 신금의 지장간을 보면 무토, 임수, 경금이 있다. 산과 바다와 바위가 어울려 있는 모습인데 이러한 곳을 떠올리라면 아마도 낙산사 홍련암같은 절벽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무신은 높은 곳 절벽과 같은 가파른 형태의 모습이다. 안수정등이라는 그림에서 보면 절벽에 메달린 사람의 모습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메달려 있음에도 달달함을 잊지못하고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닐까? 지속적인 위험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게 아닐까 싶다.


己酉년

 기토는 습토이자 농토여서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으며 유금은 무언가 담가놓은 항아리나 그릇, 우물 등의 물상을 가지고 있어 저장의 의미가 있다. 결국 농토는 옆에 물줄기 또는 우물이 있어야 물을 공급하며 농토를 관리하고 운영할 수 있다. 기유는 안수정등 그림에서 보면 사람이 위험으로 부터 피하기위해 안전한 장소로 선택한 것이 우물이다. 사람의 안전한 대피처이지만 그 위에는 앞에서 보아왔던 녹색뱀과 흰쥐과 덩쿨에 올라와 있다. 


庚戌년

 경술은  흰 개를 의미한다. 개는 예전부터 하늘의 법과 뜻을 전달하는 메신저이자 전령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역학에서 보면 술토와 해수는 천문성으로 하늘의 일을 해야하거나 하늘의 감시를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하늘에 뜻에 따라야 하는 시기인데 이때를 잡지못하면 어떻게 될까? 술토는 경금의 입장에서보면 편인이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어떻게든 결정하여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辛亥년

  신해는 글자자체로 보면 흰 돼지이다. 돼지는 거의 살구색 또는 허옇게 보이며, 하늘에 제사를 지낼때 재물로 받치던 동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돼지 또한 하늘의 뜻을 전달하고 연결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동물들이다. 그래서 무언가 만들어지게 하는데 돼지라는 말의 어원이 '되어지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 해의 마지막 지지이자 새로운 양기를 품고 있는 것이 해수이다. 결국 신금 또한 귀한 보석이자, 결실, 판단을 의미하는데 그 판단이 무엇이냐에 따라 어떻게 되어질 것이다.  하늘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의 해인 셈이다.


壬子년

  임자는 검은 쥐이다. 다시 안수정등 그림에 보면 검은쥐가 보인다. 흰쥐와 검은쥐가 계속 밧줄을 갉아 먹고 있는 검은 쥐이다. 임수는 바다를 의미하지만 하늘에 떠있는 큰 구름이자 땅위에 생명수를 떨구어주는 비이기도 하다. 자수는 한 해의 시작이자 새로운 기운이 올라오는 시기로 생명의 잉태, 새로움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도 있다. 자연 속 생명의 시작은 바다였다. 거기서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왔고 도태하고 발전해 왔다.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 아니면 발전된 모습으로 이어질지 결정되는 해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서 말했듯이 사람들의 행도에 따라 자연환경이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 서양의 사상은 자연과 인간은 구별되고 다른 존재이자 자연을 활용하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한 반면, 동양의 사상은 자연과 사람은 동일한 관계이자 연관된 관계라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느게 더 맞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우리가 잘 살 수 있을지 판단을 해야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저 밧줄에 달린 사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탄소세, 전기차의 확대, 화석연료로 가는 차량은 줄어들고 있고, 자연친화적인 발전을 위해 원자력도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행동이 결코 우연은 아닐것이다. 사람들이 일찌감치 위험을 알아챈 선각자들이 활동하면서 쌓이고 쌓인 지혜가 표출되는 모습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21세기 명리학 -육친으로보는 오행의 관계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