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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파주까지 통일걷기 10일차

길위에 여행 in DMZ


출발 : 고대리 자연휴양림 야영장

도착 : 두루미마을 그린빌리지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티브장소,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


  조금 오래된 2004년에 개봉했던 영화가 있다. 당시 천만영 이상 동원하며 국뽕영화로 등극한 '태극기휘날리며'라는 영화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옛 전투지역에서 유해발굴을 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만년필을 통해 어떤 군인이였는지 특정하는데 이 장면은 실제 유해발굴당시 첫번째로 발굴된 시신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단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이 영화이며  그 발굴지가 화살머리고지발굴지였다고 한다.  게다가 지난 2019년 철원, 파주, 고성에 OP를 폐쇄하고 탐방로로 개장하면서 KTV를 통해 이를 소개하는 생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나름 인연이 있는 지역이 백마고지가 있는 철원이다. 백마고지 전적비까지는 여러 번 왔었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예약외에는 방법이 없어 한동안 갈 수 없었다. 결국 이렇게 오게 되었으니 기다렸던 기간이 아깝지 않았다. 백마고지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안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것에 아침부터 가벼운 설레임에 한껏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연천의 휴양림에서 숙박을 하고 버스를 타고나와 백마고지전적비앞에서 내렸다. 다시 조별로 나누어서서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짧은 인삿말과 일정에 대한 설명이 있고나서 조별로 나누어 출발했다. 전적비위에 올라 산과 들판으로만 이루어진 북녘을 내려다보니 새롭기만 했다. 건물이 하나도 없는 벌판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자연모습 그대로라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TV에서나 보아온 푸른 초원이 펼쳐진 곳이 이곳이다.



사진을 남길 수 없는 남방한계선따라 승리전망대까지  


  백마고지전적비부터 걷기시작하여 30분 정도 걸어 백마고지가 눈앞에 보이는 전망대앞에 섰다. 여기서부터는 주변에 군인들이 가득하고 전방과 철책선이 보이는 쪽은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는 안내멘트를 수시로 한다. 전망대에 정면으로 보이는 낮은 야산이 백마고지이고 왼편에 있는 낮은 산이 화살머리고지라고 한다. 이곳은 지금 한창 유해수습이 이루어 지는 곳이기도 하다. 백마고지의 치열한 전투는 '고지전'이라는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얼마나 치열했던 곳이였는지 영화만봐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철책선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찍으려면 한정적이다. 우리가 걸어왔던 방향쪽만 가능했다. 그외에는 찍을 수 없는 곳이다. 어떤 사람은 눈으로 보고 남기면 되는데 무슨 사진이 필요하냐고 말하지만 난 기억이 약하고 꾸준히 생생하게 남기고 싶기도 하거니와 글을 쓰다보니 생생한 모습의 사진을 올리고 싶은 욕심이 한몫 거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눈으로 남겨야만 했다. 아니면 철책선이 보이지 않게 줌인하여 촬영하는 방법뿐인데 이렇게 하니 어디인지 알 수 없고 사진의 의미가 없다. 


  이곳은 탐방 예약을 하면 올 수는 있지만 걸어서 갈 수는 없는 곳이다. 탐방로는 전망대까지만 걸을 수 있고 나머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곳인데 우리는 오른쪽에 철책선을 마주하며 걸었다. 운이 좋은 시기에 왔으니 특별한 호강을 누린것이다. 그게 무슨 호강이냐고 하겠지만, 남들이 갈 수 없는 곳, 걷지 못하는 곳을 나는 걸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경험이다. 그것도 한강옆 철책선이 아닌 북녘이 바로 보이는 이곳을 한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한테는 커다란 축복이자 감동의 시간이다.


  역시나 빠른 걷는 속도 때문에 충분히 느끼고 체험하기에는 부족했다. 그저 앞만보고 걷는 경주마가 따로 없다. 승리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콘크리트 차폐벽이 있는 곳을 따라가기도 하고, 철책선을 따라 가디고 한다. 그리고 2개의 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오르막에 올라서면 보통 중간에 숨고르기위해서 잠깐씩 쉬기도 하는데 그런것 없이 오로지 전진만 한다. 숨이 턱턱막히는데도 올라간다. 누가 보면 걷기대회 하는줄 알 것이다. 너무 떨어지는것도 후미 스탭들이 고생할것이 보이니 최대한 빨리 가려고 애쓴다. 그렇게 두 개의 언덕을 넘어 승리 전망대 옆 팔각정에 올라섰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한다고 한다. 모두 신발을 벗고 절뚝거리는 발로 발열도시락을 받으러 움직인다. 천천히 걸었으면 저렇게 절둑거리지 않을텐데 왜 그리 걸을까?


  잠시 다른 생각에 머물다가 팔각정 아래 남방한계선 넘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려다본 저 푸른 초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파트 하나 없는 넓디넓은 곳에 펼쳐진 녹색의 지대... 너무나 아름다웠다. 건물하나 아파트 하나없는 순수한 맨땅의 자연이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녹색이 가득한 벌판이 너무나 생경맞다고 할까? 어색하기만했다. 하지만 이것이 본래의 모습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이것만 보아도 충분했다. 

사진을 찍지 못하였어도, 발바닥 물집이 생기도록 빨리 걸었어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이 장면을 DMZ의 맨살을 보았기 때문에...  

철책을 따라 2개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온 보람이  있다. 

힘들었으나 충분했다.  잊을 수 없는 감동스러운 풍경을 보았기 때문에...



끝이 보이니 아쉬움은 쌓여가네.

 

 오늘로써 열흘째 일정을 마무리했다. 발바닥 물집이 번지기 시작했다. 양쪽 발에 생겨서 휴식이 필요했다. 순례길을 걸을때도 생기지 않았던 물집이 이곳에서 열흘만에 생기다니 어의가 없었다. 뜨거운 날,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과 급하게 걷는 속도가 화근이였다. 그래서 오후 남은 거리는 포기하고 쉬기로했다. 내일도 걸어야 하니까.. 다행인건 오후에 걸어야할 구간이 어딘지 알고 있다. 예전부터 짬짬히 걸었던 구간이라 빼먹었다 하더라도 아쉬울게 없다. 차라리 쉬고 내일을 잘 걷는게 중요했다. 드디어 철원을 벗어나 연천에 들어섰다.  익숙한 길, 짧게나마 걸었던 그곳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전에 왔을때는 철원까지 어떻게 걸어야 할까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이제 3일 남았다. 연천군을 지나 파주 임진각에 들어서면 끝이다. 그렇게 고성에서 시작한 통일의길 행사가 끝이 보임을 실감하고 있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오래 걷다보면 남은 날이 점점 늦게 오기를 기도하곤했다. 지금도 그러한 마음이 간절하다. "조금만 더 걷게 해주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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