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고성에서 파주까지 통일걷기 12일차

길위에 여행 in DMZ


출발 : 산머루농원 캠핑장

도착 : 학교안풍경캠핑장     



숙소에서 몰래한 마지막 만찬 저녁 


  개인적인 텐트에서 각자 생활이 익숙해졌지만 조별로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또한 익숙해졌다. 숙소내에서는 음주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아마도 과한 음주로 인한 사고 또는 큰소리로 인한 분위기 저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내린 조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항상 틈새를 이용하여 무언가 일을 벌이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한다. 첫날 부터 한 두명의 남자가 모여서 물통을 물을(?) 나눠먹는 모습을 보았다. 직감적으로 성인용 물(?)임을 알았다. 이렇게라도 가져오다니 대단하다 싶었다. 몇 몇의 조는 정해진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내가 속한 조를 포함하여 금주를 진행하는 조도 있었다. 일정이 거듭내면서 피곤함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더니 몰래 어디서 구해 온 술을 마시는 조가 늘었다. 심지어 연천군 권내로 들어오니 배달이 가능한 식당이 많아지자 몰래 배달음식을 통해 저녁에 마무리 여흥을 즐기기도 했다. 우리조도 빠질세라 처음에는 프라이드치킨을 시작으로 어제는 족발과 막국수를 배달하여 저녁식사를 겸하여 나름에 만찬을 즐겼다. 밥차의 식사로는 충분히 즐겁게 식사할 수 없는 것도 이유가 되지만 그보다 한국사람한테는 함께 모여 술 한잔 기울이며 나누는 정을 무시할 수 없는 정서이다. 잘만 조절하면 인간관계가 돈독해지는 결과가 나오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감정을 자제하지 못해 싸우거나 추태를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조원들을 이끄는 조장들은 이러한 부분을 잘 알고 있어 나름 조율을 한다. 적당한 선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도 저녁식사를 겸하여 텐트 뒤편 구석진 자리를 잡고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다가오는  행사의 끝과 다음에 어떻게 할건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에는 여행을 통해 자주 보자는 말로 결론을 내며 깊어가는 밤에 여유로운 만찬 회식을 즐겼다.




연천에서 고구려의 기상을 느끼며...


 산머루 캠핑장은 외부인들도 함께하는 캠핑장이다 보니 평소때보다 훨씬 더 조심히 다녔고 일정도 빨리 시작을 했다. 민폐를 끼치면 안되기 때문에... 간단하게 물비빔짜장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버스에 올랐다. 숙소에서 걸어야 할 장소까지는 제법 먼 거리에 있어서 걸어야할 구간은 아니였다. 연천군 장남면 도로변 작은 공원에 차를 세우고 모두 내려섰다. 그앞에는 개성과 서울의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개성까지 직선거리로 25km, 서울까지는 46km로 오히려 개성이 더 가까웠다.  너무나 가까운 곳인데 실제로 개성까지 가기에는 50여년이 넘게 걸렸었고 다시 막혀있는 상황으로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자리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나중에 보면서 회상할 것이다.


 "전에는 개성시로 가자고하면 다들 말도 안된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는 개성에 선죽교 보러 가고 있네." 라고...


 버스에서 내려 우리는 걷기 시작한다. 충분한 휴식 덕분에 물집은 모두 아물었고 굳은사처럼 딱딱해졌다. 오늘 만큼은 잘 걸을 수 있겠다 싶은데 역시나 2조를 선두에 세운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두 스탭이 말한다.


"너무 빨리 걷지 말아주세요. 적당히.. 부탁해요. 저도 발바닥이 너무 아파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두에 섰던 자칭 넘버2 스탭은 발바닥이 물집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런한 상황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선두를 이끌었었다. 소수의 빨리걷자주의를 부르짖는 사람들 덕택에 생긴 상처일 것이다. 오늘은 익숙한 장소로 간다. 연천지역 일대를 가로질러 평화나루길 일부와 승전OP전망대를 거쳐 실제로 군인들이 경계설때 다니는 참호 길을 걷는다고 한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처음 만난 곳은 호로고루가 있는 유적지이다. 고구려시대 만들어진 작은 방어용 성이 임진강 앞에 있다. 토성의 터가 남아 있고 그 앞에 광개통대왕왕릉비가 모형으로 세워져 있다. 하지만 실물과 똑같이 글이 새겨져 있어 한문을 읽을줄 안다면 꽤 재미가 있을 기념비이다. 이 광개토왕비 때문에 압록강 넘어 만주 일대를 다스렸던 고구려의 역사가 여러 갈래의 가설로 분리되어 연구되고 있고 일본에 의해 비문이 변조 왜곡되는 일이 벌어져 임나일본부서의 이유를 만들기도 했다.  6m가 넘은 커다란 왕릉비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화끈 거린다. 이렇게 거대한 것을 만들 수 있었던 한민족이라는 자존감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잠깐에 휴식과 호로고루성을 둘러보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마냥 걷기보다 길 위에있는 유적지나 문화재를 같이 둘러보는 것은 길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자 체험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냥 땀나게 걷는것과는 사뭇 다른 경험을 준다. 


  연천군 구간은 이외에도 다양한 역사 유적의 장소가 있다.  당시 청와대 습격을 위해 김신조일당 부대가 침투하였던 장소도 연천군 고랑포가 있는 곳을 넘어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북악산의 김신조루트 숲길을 따라 갔다고 한다. 또한 고랑포는 고려시대에 가장 상업과 물류가 활발하게 번성했던 포구로 임진강 사이에 놓인 나루였으며 장단도(長湍渡)또는 두기진(頭耆津), 고랑진(高浪津)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지금은 고랑포역사박물관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저 쉬어가는 장소정로 주차장에서 대기해야 했다. 고랑포공원이후부터 민통선 구간이라 인원 점검과 확인을 하기위해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여기서 부터는 파주시 권역입니다. 우리가 인계받겠습니다.


 민통선을 통과할때 기다리고 신원확인하는 것은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군인이 와서 직접 인원수를 세고 인솔 장교가 디사 앞서서 안내했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전에도 왔었던 승전OP전망대로 향하고 있다. 위에 올라서면 남방한계선 뿐만 아니라 군사분계선인 DMZ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일정에도 이인영 통일부장관님이 어제(11일차)부터 동행했다. 또다시 쉬지않고 올라가는 언덕길, 그러나 승리전망대 가는 길에 비하면 쉬운 길이다. 전망대에 올라서서 군부대 장교의 휴전선일대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여기저기 시선을 옮겼다. 역시나 집같은 건물은 보이지 않고 적과 아군의 OP 건물만 있고 나머지는 초록의 숲이다.  OP에서 조망하는 시간보다 더 값진것은 남방한계선따라 참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위해 다니는 길이라서 왠지 더 삼엄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어느 누구도 소리내어 걷는게 아니라 조용히 앞사람을 따라 걸었다. 저 멀리 고라니 가족이 힐끔 돌아보며 우리 일행과 눈이 맞았다. 그리고는 철책선 옆으로 뛰어갔다. 


"저 고라니는 어디서 왔을까? 여긴 죄다 철책선과 높은 방벽으로 쌓여있어 통로가 없을테데."라는 걱정이 살짝 올라왔다.  약 3km 정도의 참호따라 가는 길은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자 가슴 저리게 만들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눈으로만 담아야하고 분단의 모습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곳, 철책선만이 상처를 꿰멘 자국처럼 땅위에 새겨져 있는 것이 가슴 아프게 했다. 모두가 조용하게 엄숙하게 걸은 것은 아마도 비슷한 공감을 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참호길을 벗어나 다시와보길 소망하며 민통선내 마을길로 접어 들었다. 비 내리는 날 전투식량으로 밥을 먹는것도 나름 운치가 있고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마을 도로를 따라 무념무상의 상태로 길을 걸었다. 도로에는 잔뜩 흙을 실은 덤프트럭만이 수시로 다녔다.  그리고 걷는 중간에 다시 한 번 인원을 확인하는 군인이 보였다. 좀더 가보니 인솔 장교가 교대하고 있다. 


"여기서 부터는 파주시 권역이라 OO부대에서 책임을 맡고 인솔하게 되었습니다."


 걷는 중간에 연천군에서 파주시로 바뀌면서 사단 작전구역까지 변경되면서 인수인계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화물도 아니고 사람 하나하나에 이렇게 신경을 쓰다니 역시나 군사작전 지역이라는 것을 다시금 새기게 만든다. 앞서가던 인솔장교도 바뀌었다. 순식간에 연천군에서 파주시로 넘어갔다. 이렇게 우리는 마지막 행정구역에 다다랐다. 고성부터 시작하여 인제, 양구, 화천, 철원, 연천에 이어 7번째 이다. 이제 끝이구나라는 것이 실감하는 순간이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왠지 낯설지 않았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왔던 길이였나라는 생각이 머리르 스쳐갈때 허준묘역을 알리는 입간판을 보자마자 전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가을과 겨울에 왔었던 그 길... 이렇게 이어지는 길이 마냥 반갑기만 하다. 


"허준묘역에 들러 쉬어갔어야 했는데... 할 얘기도 많은데... " 혼잣말을 되새기며 사람들을 따라 지나쳐왔다. 이러한 장소를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닌데, 민통선안에서 보아야할 장소인데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어느새 선두을 지키던 스탭이 한 시간만 걸으면 끝난다고 한다. 그말에 마지막 기운을 내어 언덕을 넘어가니 다시 임진강과 마주하였고 그 앞에 다리가 보였다. 전진교라는 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리이다. 여기를 먼너면  민통선을 벗어나게 된다. 같은 나라인데 왠지 국경을 넘는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을 여기서는 맛 보게 된다. 이게 현실이라고 말해주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고성에서 파주까지 통일걷기 11일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