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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명리학
과거와의 인연으로 이어지는 사주

 사주 역학을 배우다보면 인연법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내 사주에 부모자리와 조상의 자리가 존재하는데 이를 통해 부모와의 관계 조부모 또는 조상으로 부터 어떠한 성향, 기질을 받았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사주는 과거의 인과응보에 따른 결과론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도 한다. 돌고도는 사주는 전생의 인연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전생의 업과 공덕으로 현재의 삶을 살게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전생의 기억을 알 수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워진 것일까? 망각은 신의 배려이다 라는 말이 있고, 사람이 잊어버리는것 없이 모든것을 기억한다면 슬프거나 힘든 기억을 안고 사는것도 고역이 될것이다.  '신과나눈이야기' 라는 책에서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선택의 자유를 주기위해 전생의 기억을 지웠다고 한다. 전생의 기억이 남아 있다면 삶에 있어서 제대로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회 또는 환생에 대한 부분을 우선 과학적인 입장에서 먼저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한데 이부분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면 허황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라는 시스템에서 질량 보존의 법칙


  과학 시간에 배우는것중 하나가 질량보존의 법칙이다. 

" 화학반응의 전후에서 반응물질의 전질량()과 생성물질의 전질량은 같다" 고 하는 법칙. 즉, 화학반응의 전후에서 원물질()을 구성하는 성분은 모두 생성물질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변할 뿐이며, 물질이 소멸하거나 또는 무()에서 물질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질량은 없어지거나 사라지지않고 변하기만 한다.  예를 들어, 자연에 존재하는 나무가 있다고 치자. 나무 한 그루를 베어서 식탁을 만들고, 가구를 만들고 톱밥은 버려지거나 불로 태운다고 할때 과연 질량이 변할까? 톱밥을 불로 태우면 연기가 나고 재만 남는다. 연기는 날라가다보니 무게를 인지하지 못하고 남은 재의 무게만 생각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형태만 바뀌었을뿐 무게는 바뀌지 않는다. 재 또는 연기를 구성한 분자 또는 원자단위로 보며 더욱 확실하게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좀더 확대하여 '지구'라는 행성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 땅, 바닷물, 동물 들의 무게는 유한할 것이다. 죽고 사라지고 건물을 짓고, 땅을 메우고, 인류가 늘어난다 해도 외부에서 운석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질량의 변화는 없고 그 안에서 돌고 돈다. 사람이 죽어서 땅에 묻던 화장을 했다 하더라도 그 구성하였던 성분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나무가 흡수할 수 있고, 멀리 날아가 땅으로 떨어질수도 있다. 나무가 흡수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동물이나 사람이 다시 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지구라는 폐쇄된 환경에서 모든 것은 돌고 도는 순환을 겪는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이나 동물은 이 안에서 순환의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닐까? 사주역학에서 말하는 인연, 인과응보, 회생 등의 말이 아무런 근거없는 말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부분일 것이다. 과학이 발달했어도 아직까지 알지 못하는것이 너무나 많다. 과학적 증명이라는  낮은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발달하면서 예전에는 이해못했던 부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거나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멀티버스(다차원우주), 죽음의 부분을 지나 다른 세계도 있을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점점 많은 부분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의 인연이라든가 윤회에 대한 부분도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할 때가 올 것이라 본다. 수많은 영화에서 죽음과 부활, 인류의 기원, 인류와 닮은 존재의 개발, 폐망 등에 관한 영화가 많다. 그냥 공상과학영화라고 치부하여 볼 수도 있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 인류를 창조하는 과정, 전생, 환생, 기억의 부재이유 등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 확 와닿았던 영화가 "익스팅션(Extinction)-종의구원자" 라는 영화다.


기억은 나를위해 지운것인가? 타인을 위해 지운 것인가? 


  이 영화는 100분 정도의 짧은 영화이다.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지만 보는 순간 묵직한 인상을 던져준다. 어느날 한 사람이 반복되는 꿈을 꾸면서 고민한다. 사실인것인지, 그냥 꿈인것인지, 고민이 반복되던 어느 날에 외계문명으로 추측되는 우주선이 지구로 내려와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한다.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로 지하로 숨어들어가는 인류, 그러나 잡힌 외계인의 마스크를 벗기는 순간 동일한 인간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인간인줄 알았던 자신들은 합성된 AI였음을 알게된다. 인류가 능력이 뛰어난 AI를 탄압하자 자아를 갖게된 AI가 인간을 지구밖으로 몰아내 버렸다. 그리고 AI는 그 고통속에서 몸부림 치다가 기억을 삭제하는 선택을 한다. 지구에 남아있던 모든 AI는 그렇게 기억을 지우고 가족을 꾸리고 살아갔던 것이다.

 

  우리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좋앗던 기억에 안주한다면 다시 태어난 보람없이 만족해하거나 나태하게 보낼 것이고 고통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그 고통을 헤어나지 못한채 다시 살아가지 않을까? 그래서 망각한채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역학에서는 전생에 업보에 따라 사주에 특별한 능력(외모, 기술, 영적감성, 부모의 재복 등)을 타고 나거나 아니면 부족한 부분(고아, 안좋은 지역, 등등)을 받는다고 한다. 거기서 부터 동일하게 출발하여 깨달음을 얻게 한다. 물론 어느정도 깨달음을 얻었다면 다시 태어나지 않고  다른 세상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 역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러한 연계성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인연이 현재로 이어어져 부모, 친구, 부부, 선생과 제자와 같은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렇기 때문에 사주를 보다보면 부모와의 인연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 기억은 없지만 사주를 보면 어떤 모습과 인연이 있었는지가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믿지 않는 것은 숨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기가 있다는걸 알면서 보이지 않으니 안믿으려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사주역학을 배우다 보면 단순히 음양오행과 육친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속에 이어지는 인연과 상황 나의 처신 등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업그레이드 되던가 다운그레이드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주는 전생에 비춰보면 내가 풀어야할 숙제이자 길이다. 그걸 따라서 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에는 다음에 태어날때 어떻게 나오게 될지 결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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