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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Resurrections
운명의 환생고리 열다

 매트릭스 시리즈가 돌아왔다. 감독도 바뀌었다. 아니 원래 그대로인데 외형의 모습(?)이 바뀌어 돌아왔다. 시리즈를 어떻게 이어서 갈것인가라는 궁금증이 늘어만 갈때 영화관에서 직접 확인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배우들이 나이도 제법 많아졌고 외모도 바뀌었는데 어떻게 표현해 낼지가 관건이었다. 역시나 걱정은 기우였을 뿐이다. 같으면서도 다른 모습의 네오을 보여주고 트리니티의 존재가 더욱 강해졌다. 영화와 실사를 넘나드는 이 상황은 또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어보려 한다.



Resurrections의 뜻


 돌아온 매트릭스 시리즈의 제목을 보면 리저렉션(Resurrection)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부활, 재림의 뜻이다. 그런데 왜 이 단어를 사용했을까? 유사한 단어를 찾아보니 제법 많다. 부활(rebirth), 재림(reincarnation)이라고 해도 무방했을 텐데 리저렉션이라고 한데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영화 장르에서 다시 시작할때 사용하는 단어가 리부트(Reboot)이다. 기존의 줄거리에 배우, 설정 등을 바꿔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배우는 다르지만 영화의 캐릭터와 주변인물, 빌런 관계는 정해져 있어 변화가 없다. 부활(rebirth)은 복원의 의미가 강하다면, 재림(reincarnation)의 의미를 살펴보면 영적인 부활 내지 불교의 윤회사상에 더 가까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떠한 존재 또는 캐릭터가 바뀐 상태로 다시 태어나 살아가거나 어떤 활동을 영위에 간다는 것이 기독교적인 부활과 다르다.  달라이라마 처럼 환생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재림(reincarnation)에 의미가 더 가까울듯 하고, 예전의 속성은 잃어버린 채 새로운 존재이자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중점 요인이다. 재림 또는 환생은 타인의 도움없이 스스로 다시 태어나거나 자연과 신적인 존재에 의해 순서대로 태어난다는 점이다. 

 기독교의 예수그리스도 부활이 Resurrection이라는 의미에 가장 대표적인 경우일 것이다. 사전적으로 봐도 역시나 예수의 부활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보다 확장된 뜻은 타인에 의해 되살아난, 부활시킨 의지가 반영된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속성이나 캐릭터의 성향은 그대로 간직한 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신의 의지에 의해서 살아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매트릭스 리저렉션' 영화상에서는 새로운 모피어스에 의해 다시 네오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러한 의미를 바탕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부활, 그리고 다시 시작


  '매트릭스 리저렉션'의 시작은 매트릭스 1편의 시작과 같다. '트리니티가 이렇게 다시 출연하는 건가?' 라는 식상한 설정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개는 달랐다. 우리가 아는 트리니티 대신 다른 캐릭터의 트리니티가 존재하고 요원에 쫓기다가 결국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를 관찰하던 매트릭스속 가상 존재가 아닌 리얼(Real) 사람이 관찰하며 상황을 파악한다. 그리고 네오의 존재를 찾는다. 매트리스속 존재인 토마스앤더슨은 실제인지 가짜인지 애매한 상황속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경험은 매트릭스속 가상의 게임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회사의 개발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의 모습은 보여지는 모습과 매트릭스속 모습은 다른다. 그래서 네오를 찾으려는 벅스와 모피어스는 고생끝에 네오를 찾는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 오라며 빨간약과 파란약을 내민다. 그리고 뒷 배경은 매트릭스 1편의 모습을 오마주하고 있다. 그렇게 빨간약을 선택하여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 네오는 트리니티를 실제의 찾아 나선다.


  기존 매트릭스의 줄거리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다. 녹색빛 배경이 깔렸던 1편과는 달리 천연색의 리저렉션과 대비된다. 더이상 현실과 가상세계의 구분은 색감이 아닌 캐릭터의 특성을 통해 나타난다. 벅스의 푸른머리, 애널리스트의 푸른색 안경테와 푸른색 알약, 모피어스의 붉은 계역의 옷과 대비된다. 매트릭스로 진입할때도 더이상 유선전화기가 아닌 현관문을 통해 넘나든다. 실제의 세계에도 변화가 있어 인간과 동맹을 맺는 기계무리가 있고 그 중 하나가 '리로디드'에 나왔던 사티의 존재이다. 인간을 도와주는 기계무리와 이와 대결하는 기계무리, 이들의 빛깔도 푸른색과 빨간색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처럼 매트릭스 1편의 줄거리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듯 하지만 실제로 보여지는 장면은 매우 다르다. 단순히 부활이었다면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어 동일하게 진행했을 법한데 말그대로 리저렉션(재림, 부활)이라 다른 상황과 행동으로 동일한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제목의 깊이를 더 해주고 있다.


  또 다른 점은 그저 네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기희생을 보여줬던 트리니티의 부각이다. 단순 조언자에서 벗어나 또 다른 네오의 성향을 갖춘 절대자로써 태어난다. 하늘을 날지 못하는 네오를 도와 하늘을 날고 애널리스트를 찾아가 협박을 도와주기도 한다. 삼위일체가 완성이 되었다.


  매트릭스 1편은 화려한 액션신과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 많았다면, 매트릭스 4편은 서사적이고 나래이션에 중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매트릭스라는 존재와 상황을 모두 알고 있으니 여기서 어떻게 벗어나고 왜 다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액션신이 중요한게 아니라 이 상황을 이해시키는게 우선이다. 이해가 되었다면 다음 편은 보다 화려한 액션신이 많은 영화가 될 여지가 크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영화속 현실(Real)상황에 영화 밖 상황을 고스란히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까지 영화이고 어디가 다큐인지 헷갈리게 한다. 헷갈림속에 워너브러더스 영화사를 까는 대사도 쏠쏠한 재미거리이다. 결국 현실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준다.




사람의 인생도 환생을 하고 다르게 살아간다 ?


 사람에게는 자아, 초자아라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 역학을 배우다보면 본신이라하고 불교에서는 내재된 부처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여지는 외형의 모습은 모두가 다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나름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영화속에서 새로운 스미스요원은 이렇게 말한다. 수억명의 사람들은 아무이유없이 그냥 살아간다라고... 그저 사는 것이 급급할 뿐이지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잊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속 토마스 앤더슨은 무언가 모를 기시감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다시 깨어내어 구원의 절대자로 돌아온다.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목적을 위해 태어났고 그 목적을 이루기위해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이 일깨우기 위해 인간에게 다가오기도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왜 다시 태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살면서 데자뷰 또는 기시감을 경험해본적은 있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봤을 것이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꿈을 꾸기도 한다. 그 상황을 만족할 만큼 설명한 이론은 없다. 내재된 기억일지 전생의 기억일지 알 수 없다. 앤더슨도 이러한 상황속에서 모피어스라는 존재를 통해 각성하듯이 인간도 종교를 통해 내재된 성향을 깨울 필요가 있다. 꼭 종교가 아니어도 스스로 성찰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는데 이번 매트릭스의 영화는 다시 태어나 달라진 상황속에서도 원래의 목적을 찾아 가듯이 인간도 이렇게 원래의 목적을 찾아 가길 바랬던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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