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미친척하고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곤 한다. 이번에 꽂힌 주제는 관우의 관왕묘였었다. 서울에마 있을 줄 알았던 관왕묘는 지방의 주요 4개 도시에 있다는 말에 찾아나서 보기로 했다. 전에 올린 남원을 비롯하여 전주 남고산의 관왕묘는 예전에 다녀왔던 적이 있다보니 남은 곳은 성주와 안동이였다. 이중에 안동을 선택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불교 매니아(?)는 아니지만 마음 편하게 찾아가서 길에 대한 물음을 물어보던 곳이 사찰이다보니 역사책에서나 보아왔던 봉정사가 안동에 있기에 이곳으로 찾아가는 것으로 낙점하였다.
오랜만에 청량리역에서 무궁화로 열차를 타고 안동으로 출발했다. ITX-이음이 달리고 있지만 옛 여행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 일단 무궁화호를 먼저 타보기로 했다. 너른 자리에 천천히 달려 3시간이 넘어서야 안동에 도착했다. 역시나 안동역은 고풍스러운 역사의 분위기를 뽐내고 있다. 한옥의 들보와 석가래를 엮은 듯 보이는 외벽이 꽤나 독특했다. 문창살 모양의 벽면도 보기 좋았다. 나름에 역사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지었다면 이또한 볼만한 문화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동역을 나와 길건너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표를 들여다보며 오늘의 일정을 짜본다. 봉정사를 먼저 다녀오는것이 좋겠다 싶어 시간표를 보니 한참 기다려야 했다. 시간 절약할 겸 택스를 타고 봉정사로 향했다.
봉정사앞 주차장에서 내려 계단을 밟고 올라가 대웅전 앞으로 갔다. 누각앞에 돌계단은 힘들어 보이지만 그만큼 고생이 있어야 부처의 품안에 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리고 마음에 힘든것을 내려놓고 겸손함을 보이라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뿐 아니라 부석사도, 상원사도 그렇고 몇몇 산사의 사찰은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절대로 힘들게 올라오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고풍스런 모습에 단청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둥은 나무라기 보다 석화된 돌기둥처럼 두드리면 쇳소리를 낸다. 시간이 오래 지났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니다. 기둥의 깊이 패인 나뭇결은 나이든 어르신의 인생이 녹아든 주름처럼 보였다. 그리고 찬찬히 대웅전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산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기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을 보유하고 있다는 봉정사이다. 사찰 어디나 오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색바랜 단청과 지금과 다른 목조건축의 양식, 녹색이 강조된 단청의 색상도 독특하다.
종교적인 이유로 사찰을 찾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사찰을 찾는대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산속에 있어 산책하듯 걷다보면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경치좋은 산속에 있기 때문에 짧게는 몇 백 미터를 걸어서 가야하고, 길면 1km 정도 걸어들어가야 하는데 찾아 올라가는 길이 꽤나 운치가 있다. 두 번째는 산사의 건축물을 보는 것이다. 오래된 건축물은 그나름에 시간을 담고있어 보는것만으로도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새롭게 단청을 칠하는 사찰도 있지만 봉정사는 옛 모습 그대로 색바랜 단청 그대로이다. 덧칠하지 않은 모습이 훨씬더 고급스럽고 세련되 보인다. 세번째는 목조건축물이 보여주는 건축학적 아름다움과 형태이다. 단순히 여행에만 그치지 않고 문화역사해설을 곁들여 하다보니 봉정사의 역사만을 보는게 아니라 건축미를 보기도 한다. 그래야 어느 지점에서 사진이 잘 나올지도 알게되니 말이다. 게다가 한옥 건축에 대한 기본 개념을 알면 어떠한 공통점이 있고 차이점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차이를 이해하다보면 사찰의 가람배치의 이유를 알 수 있기도 한다. 봉정사는 본당 두 개가 두 개의 권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산자락 아래에 있다보니 세로축이 아닌 가로축으로 펼쳐져 있다. 누각을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른것도 나름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각이나 대웅전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장 멋지다는 것이 공통점일 것이다. 아마도 부처님이 내려다보는 시야를 생각한게 아닐까 싶다. 봉정사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찾아오게 하는 곳이다. 그 오래된 건축물을 내손으로 어루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천년이 넘는 시공간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을 맛볼 수 있다.
꼭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다니느 곳이니만큼 멋드러닌 한옥건축물을 본다는 편안 마음으로 다녀보면 어떨까 싶다. 유럽에 가면 성당은 꼭 들리는것과 비슷한 거니...
극락전의 건축물은 보다 더 단순하다. 단청도 그렇고 주심포건물의 특징이 도드라져 보이는 단아하게 내려앉아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대부분 정면은 창호문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가운데에만 출입할 수 있는 문이 있다. 덧칠한듯 대웅전보다 색감이 진하다. 그렇다고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찬찬히 둘러보며 여기저기 보다보면 정면에 작은 석탑이 앙증스러운 모습으로 서있다. 너무 크지도 않은 이곳에 적합한 모습으로... 찬찬히 둘러보고 툇마루에 앉아 쉬기도 하면 한 두 시간은 훌쩍 흘러간다. 산사의 좋은 점은 역시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에서만 보아왔던 봉정사를 이제서야 직접 보았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게 느껴졌다. 진작에 왔어야 했는데...
산신각을 끝으로 봉정사를 둘러본 후 일주문을 따라 내려왔다. 그리고 안동시내에 있는 관왕묘를 찾아갔다. 태화동에 위치한 관왕묘의 첫 인상은 봉정사에서 올라섰던 누각을 대하는 모습과 같았다. 이또한 대자뷰인 것일까? 조금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야 마주할 수 있는 관우의 사당은 올라오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아쉽게도 관왕묘는 코로나19 때문에 사당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실내의 관우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그저 건물만 바라보다 그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안동시내의 안락한 풍경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태화동 일대는 유독 붉은색과 흰색의 깃발이 어우러진 무당의 집이 많았다. 여타 지역에 비해 기가 센(?) 지역인듯 싶다. 기가 센곳은 일반인들은 지내기 어려워 무당이나 종교시설이 보통 많이 들어선다. 이곳이 그러한 곳이다. 게다가 태화(太和)라는 지명은 신라 진덕여왕때 사용하던 연호이기도 했다. 아마도 삼국시대 확장하던 시기였을때 그 기상을 살리기위해 쓰였던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아직은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안동은 구시가지를 걷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곳곳에 있는 재래시장에 들르면 수도권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생선들도 보인다. 상어고기라던가 하는... 이것만 봐도 재미가 있다. 그리고 안동은 찜닭이 유명하니 찜닭골목이 따로 있다. 여럿이 왔다면 이곳에서 찜닭의 맛도 보고 그랬을 터인데 혼자다니다보면 먹는것이 한정적일수 밖에 없다. 맛여행이 빠지는건 여행에 있어서 큰 즐거움을 놓치는 것이다. 어쨌던 하루를 이렇게 안동시내와 봉정사를 둘러보며 다님으로써 도심 속 골목여행의 기분으로 안동여행을 마무리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ITX-이음을 이용했다. 고속철이기 때문에 빠르기도 하지만 KTX에서와 다른 기차이자 국내에서 제작한 고속철이기 때문에 신기함에 타본 것이다. 실내는 큰 차이가 없으나 충전과 같은 부가서비스가 설치되어 있고 좌석간 넓이도 좀 넓은 편이라 KTX보다 훨씬 편하다. 이젠 외국산 TGV짝퉁보다는 이음이라는 이름에 열차가 더 많이 다녔으면 하는 바램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