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기억되는 길
2010년 겨울의 끝이 보일 무렵...
갑작스런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에 많은 눈이 내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겨울이 끝날 즈음이라 눈에 대한 기대가 없었었는데 저녁까지 내리는 눈을 보며 내일 출근을 걱정해야만 했었다.
저녁 무렵 같은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지킴이로 부터 연락이 왔다.
" 형 ! 내일 가평 축령산 갈래요? 거기 눈내리면 정말 멋있는곳이야 !!"
이 말을 듣고 잠시 고민을 했다. 겨울에 눈이 쌓인 숲길을 경험하지 못한터라 준비해야할 장비가 없어서 걱정도 되었고, 솔직히 눈쌓인 숲이 어떨지도 궁금하였다.
결굴 지킴이의 말을 듣고 숲길 강행을 결정하였다.
"어차피 눈이 내려야 얼마나 왔겠어... 함 가보지 뭐 !!"
그리고 내일 떠나기 전에 기본적인 장비를 구입해야만 했다. 종로 6가 아웃도어 용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많은 곳을 찾아가 난생 처음으로 스패츠와 아이젠, 그리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32리터급 배낭을 구매했다.
그전까지는 걷기한다는 것이 도심걷기 코스와 야밤에 운동삼아 걷는게 전부였던 나에게는 별다른 장비가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저 15리터급 작은 허리색겸용 배낭이 전부였었다.
기본적인 장비만 챙긴 채, 다음날 지킴이와 만나 축령산 잣나무숲길을 찾아 나섰다.
잠실에서 지킴이와 만나, 직행버스를 타고 마석역앞에 내려 가평군 현리행 버스로 갈아 타고 30여 분을 더 이동해야 했다. 다행이 새벽부터 눈이 그쳐 버스는 정상적으로 운행을 하고 있었다.
행현리 정류장에서 내려 마을로 접어 들었다. 인적이 없어 쌓였던 눈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 도로에만 눈이 치워져 있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줄 뿐이였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축령산 동쪽편 백련사 앞에서 시작하는 임도를 따라 올라가 잣나무숲 임도를 한바퀴 돌아 나오는 코스이다. 지금은 '잣향기푸른숲 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임도 주변에 공사하였던 전시관과 체험관은 모두 완공이 되어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내가 찾아가던 시기에는 축령산 잣나무숲길은 거의 소개가 되어 있지 않은 미지의 숲이였다.
3km 마을길만 걸어도 가슴이 설레였다. 하얗게 쌓인 눈때문에 모든 세상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조용하고 처음 보는 풍경에 연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댈 뿐이였다.
여기만 봐도 이렇게 좋은것을... 눈쌓인 숲과 길에대한 행복한 조우였다.
백련사입구 옆 오르막임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겨울의 숲길여행을 맞이할 시간이 되었다. 처음 나서는 겨울 트레킹이다 보니 연식 걱정이 앞선다. 내가 과연 다 돌아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여기도 사람과 차량의 흔적이 없다보니 20여 센티미터로 쌓인 눈에 발이 푹푹 빠져 들었다. 생각보다 눈쌓인 길이 힘들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경험을 하였다.
1km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숨이 턱턱 차오른다. 지금이야 어렵지 않게 올라갔겠지만, 걷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체력이 그닥 좋지 못한것도 사실이다. 1년에 1,000km 내외를 걷다보니 지금의 단단한 허벅지와 체력을 얻게되었지만...
잣나무 가지마다 두텁게 눈이 쌓여 있다. 크리스마스 연하장에 보면 전나무 또는 가문비나무에 눈이 쌓인 그림이나 사진을 종종보게 되는데 현실에서 연하장의 풍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눈이 쌓인 임도를 걷는다는 것은 힘들었지만, 커다란 잣나무와 눈쌓인 하얀 풍경이 힘든줄 모르게 걷게 만든다. 때로는 가지위에 쌓인 눈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모습도 간간히 보였다.
왠지 다른 나라에 온 느낌이다. 어느 나라에 가면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넓은 잣나무숲에 사람이라고는 나와 지킴이 뿐이였다. 오로지 우리 둘이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설국의 풍경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눈이 내리고 바로 찾아왔기에 더욱 신선하고 살아있는 풍경을 접하게 된것이다. 만약 눈이 내린 후, 며칠이 지나서 찾아 왔다면, 풍성하게 쌓인 눈에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휴양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자리앞에 간단하게 식사를 하였다. 버너를 사용할 수 없으니 뜨거운 물에 컵라면이 전부였다. 이것도 겨울 초행길인 나는 준비도 못하고 김밥만 사들고 왔다. 따스한 국물이 이렇게 맛깔스럽게 느껴진 것도 이날이 처음인듯 싶다.
여유롭게, 눈이 가득 쌓인 잣나무숲을 둘러본다. 사진을 찍어도 무언가 부족하다. 기술이 부족하니 환상적인 숲을 제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었다.
그냥 눈에만 담아 두자. 그리고 다음에 다시 찾아올 기회가 생기면 그때 좀더 정성을 다해 이 풍경을 담아보자는 생각을 머릿속에 새겨둔다.
축령산 잣나무숲은 이렇게 인연을 맺은 숲길이 되었다. 이후에 계절에 상관없이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 봄에는 푸른 잣나무의 색감을 보기위해, 가을에는 임도 사이에 떨어진 잣송이를 줍는 재미를 경험하기 위해, 겨울에는 하얀색깔로 갈아입은 축령산의 모습과 비닐포대 눈썰매를 타는 재미를 경험하기 위해 지금도 찾아오는 곳이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축령산 겨울숲길여행은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겨울 눈길여행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가고 답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토록 천인상을 강렬하게 만들어준 겨울의 잣나무숲길은 아직까지 내인생에 꼭 찾아가야할 겨울의 숲길 1위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