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첫발을 내딛다. 사려니숲길과 올레길14-1코스

내 삶에 기억되는 길

길을 찾아 답사를 다니기 시작한것이 2009년 부터 였다. 처음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공원길과 도심문화길 주제에 맞는 골목길을 찾아다녔다면 2010년 부터는 서울으 벗어나 지방으로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강원도 선자령을 비롯하여, 팸투어라는 지역의 관광지와 둘레길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으며 경상도와 충청도 지역을 두루두루 다녀볼 기회가 얻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또다시 주변에 새로운 둘레길의 흔적이 보이면 다음에 우선 답사할 장소로 머릿속에 담아두게 되었다.


하지만, 제주와는 인연이 없었는지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 진다고 했던가... 쉽게 갈 수 없을것 같았던 제주도를 우연찮게 찾아왔다. 계획적으로 가려던 것이 아니라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이였다.


동호회 모임에서 만난 여친이 동호회회원들과 제주여행을 간다고 하길래 잘 다녀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동행하는 회원들이 거의 남자였었다. 내심 불안한 마음에 뒤따라 나선길이 제주행이였다.


제주행 비행기표도 미리 예약하지 않고 떠나다 보니 왕복 비행기 삯이 20만원 가까이 들었다. 지금이야 저가항공사라는것이 있으니 얼마든지 저렴하게 제주도를 갈 수 있지만, 예전에는 오로지 KAL과 아시아나 뿐이였다.


비행기 티켓을 손에쥐고 제주도로 향하는 기분은 묘하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길이여서 인지 외국여행을 떠날때 가볍게 흥분감과 기대감이 넘치는 듯한 기분과 흡사했다.


이러한 느낌이 제주도에 대한 동경, 아니면 매력으로 다가오는게 아닐까 싶다.


7월에 찾아간 제주는 무척이나 덥고 습했다. 시원한 공항을 빠져나온 순간부터 찜질방에 들어선것처럼 숨이 막히고 온몸에 습기가 감겨 떠날줄 모른다.


시원한 공기가 가득찬 공항버스를 타고 서귀포시에 마련한 숙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숙소에서 짐을 풀자마자 서귀포시내를 나와 찾아간 곳은 제주올레길 6코스이다. 서귀포 부근 천지연폭포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외돌개 공원까지 걸어간 것이 제주에서의 첫 걷기여행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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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덥지근한 오후를 걷는것은 쉬운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첫발을 내디딘 제주에서 무엇하나 대충 보고 넘길 수가 없었다. 열심히 걸으며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나름에 길에대한 탐닉은 계속되었다.


독특한 제주의 마을 풍경과 바다와 절벽이 어우러진 풍경은 제주를 계속 찾아와야할 장소로 각인시키게 만들었고 이후에 매년 2,3차례 계절마다 제주의 숲길과 올레길을 찾아 왔었다.


첫 제주에서 맞이한 둘쨋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다행인것은 덥지 않고 시원한 공기가 펼쳐져 있다는 것이고 안좋은 점은 카메라를 꺼낼 수 없다는 것이다. 습한 기운때문에 카메라를 물속에 넣어둔 것처럼 축축하게 렌즈사이에 습기가 베어있었다.


둘쨋날에는 제주올레길 무릉곶자왈이 있는 14-1코스를 걸었고,둘쨋날에는 절물오름과 사려니숲길을 찾아갔고, 넷쨋날에는 비오는 거문오름 용암길을 찾아갔다.


절물오름과 사려니오름을 찾았던 셋쨋날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둘레길 1순위로 올려놓은 계기가 되었다.


거문오름의 용암길은 아무때나 찾아갈 수 있는 길은 아니였고 세계트레킹대회가 열리는 시기에만 개방되는 구간이였다. 아무나 갈 수 없고 시기가 맞아야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곶자왈의 풍경은 비슷하다 보니 새로움보다는 깊숙한 숲이라는 인상만 강하게 남았다.


하지만 사려니 숲길은 커다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줄지어 있고 붉은색 화산석이 깔려 있는 길은 녹음이 짙었던 숲의 색깔과 대비를 이루었고, 내 머리속에 강하게 기억되었을 만큼 충격적인 풍경이였다.

그리고 사려니 숲길은 월든숲 삼거리에서 붉은오름으로 가야하고, 사려니오름 방향은 차단막이 있어 갈 수 없는 길이였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사려니숲길 끝까지 가보았다는 일탈(?)의 기쁨이 더 커서 기억에 오래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셋쨋날 숙소에서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절물오름휴양림으로 향했다. 전날에 내린 비때문에 물안개가 삼나무숲아래 가득 메우고 있어 신비함과 등골 오싹한 음습함이 동시에 전해져 온다.


삼나무가로수길을 가로질러 작은 사찰을 지나가니 양옆으로 산수국 가득한 숲길이 앞에 나타난다. 절물휴양림 반대쪽 문앞까지 이어진 산수국길은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다. 이른 봄이나 가을에 가면 꽃은 보이지 않고 나뭇잎가 가득할테니까....


절물오름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그래야 다음에 찾아와야 한다는 명분을 남길테니까...


절물 휴양림 산책길따라 계속 직진하여 철책선과 뒷문을 만났다. 철문 건너편 도로가 사려니 숲으로 갈 수있는 1112번 도로이다. 그런데 철문은 사람을 반기지 않는지 굳게 잠겨 있다. 되돌아 걸어가 사려니 숲으로 가려면 몇 시간이 걸린텐데 하며 고민하며 자리르 멤돌고 있었다.


다행히도 후문을 지키던 관리인이 나타났기에 사정 얘기를 늘어놓고 잠깐 후문좀 열어 달라고 애원해 보았다. 처음부터 안된다는 강력한 댓꾸에 기죽어 있는데 여친은 끝까지 말을 걸어보면서 도움을 청한다.


결국 우리가 불쌍했던지 아니면 여자의 말에(?) 넘어간건지 관리인은 후문을 열어주신다.


"우와... 감사합니다. !!"


고맙다는 말을 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5분 정도 걸었을까. 순식간에 우리는 사려니숲길 입구에 다다랐다. 이렇게 가까운 사려니숲길인데 후문을 상시 개방하면 얼마나 좋을까 넋두리 처럼 되내어 본다.

어느덧 점심 때, 작은 배낭에 싸가지고 온 빵과 우유로 점심식사를 대신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가득한 사려니숲길 입구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려니숲길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내 삶에 있어 아름다운 숲길 1순위가 될 것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게 첫 인상은 일반적인 숲길의 모습이였다.


지금 사려니숲을 가면 표시판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는 숲길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사려니오름까지도 갈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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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에 휴식을 마치고 사려니숲길을 찾아 걸어 들어갔다. 키가 큰 삼나무숲과 붉은돌이 깔려진 길이 독특한 풍경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커다란 감흥이 오지 않았었다.


어제 내린 비때문에 물이 고여 웅덩이가된 건천의 모습은 너무나 이국적이였다. 검은색돌에 비친 물속의 나무 그림자가 그러하고 여러 개의 종기를 이어붙인듯 물이고인 하천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절말 좋은 날에 찾아온것 같았다. 건천이라 비가와도 금새 물이 바닥아래로 빠져나가는 곳이라는데 깨끗한 물이 고여 실개천을 만들고 있으니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 모습들을 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점점 사려니 숲길에 대한 매력이 내 가슴에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물찻오름 앞을 지나면서 부터 사람의 말소리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와 사려니숲 자연에서 나오는 소리가 전부였다.


숲속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보니 제주 고라니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왜 여기에 왔니?'라고 물어 보는듯 한 모습으로...



여기에도 산수국이 가득하다. 제주는 7월에 오면 원없이 보라빛 가득한 산수국 길을 걸을 수 있을 듯 하다.


월든 숲길 삼거리에 다다르니 너른 임도길과 숲사이에 깔아놓은 데크길이 공존한다. 우리는 넓은길 보다 숲에 기운을 더 가까이 받을 수 있는 데크길로 걸어 간다.


월든 숲길이 끝나는 곳에 삼거리가 나타난다. 왼쪽으로 가면 붉은오름으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은 사려니오름을 거쳐 난대림연구소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는 길에는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철조망도 없기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그냥 갈 수 있는 상황이다. 출입할 시기가 아니라은 안내판이 보이기는 하지만, 이를 거부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의 사려니 숲길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사려니숲 초입에서 볼 수 없었던 무척이나 키가 큰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이 빗으로 머리칼을 정리하듯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반대쪽은 빗질하지 않는 자연스런 머리칼처럼 숲도 여러 종류의 나무가 얽기설기 서 있어 자연그대로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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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바닥에 깔릭 박석의 길이나 통나무를 나이테가 보이는 면으로 얇게 잘라 깔아놓아 정돈된 숲의 모습이였다. 하지만 인위적이거나 인공적인 느낌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워낙 인적이 없는 숲이고 더이상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점차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시기여서 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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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삼거리부터 난대림연구소까지의 숲길도 정해지 시기외에는 개방하지 않는 곳이다. 그만큼 자연을 보호할 가치가 큰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장소에 편법으로 접어든 숲길인데다가,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을것 같은 곳이라는 절박함이 더욱 특별한 숲길로 보이게 한듯하다.

물론, 커다란 삼나무숲이 인상적이며, 절물오름의 삼나무숲길은 동네 공원 수준의 짧은 산책길이라면 사려니숲의 삼나무길은 국립공원처럼 너른 곳에서 하염없이 걸을 수 있는 장거리 숲길이다.


걷다가 식상할 때 즈음, 길의 모습은 바뀐다. 깔린 화산석의 색깔이 검은색으로 바뀌던가 박석이 촘촘히 깔린 길이 나오던가, 아니면 하늘이 훤히 보이는 너른 숲길의 모습으로 변화를 준다. 17km 가까이 길고긴 숲길인데도 지루함이 없다.


편하게, 땅만보고 걷지 않아도 되고, 자연의 상쾌함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길....


결굴 사려니숲길 끝자락에 다다랗을때 내 스스로 여기가 가장 최고의 길이라고 각인되게 되었다. 다른 지역의 숲길을 가도 제주의 이곳만큼 아름답고 평온한 길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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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난대림연구소에 다다르니 거의 오후 5시가 넘어섰다. 여기서부터 숙소를 어떻게 가야할지 물어보려 해도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연구소라고 하지만 다들 어디갔는지 보이지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난대림연구소 바깥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거의 1시간 넘게 걸어 나온 후에 2차선의 산간도로를 만났다.


점점 날은 어두워 지는데 버스 정류장을 찾아 도로 주변을 찾아보아도 정류장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절망한 순간이다.


택시라도 불러보려고 고민하고 있을때 지나가던 suv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그리고 자기는 제주 주민인데 제주시로 가는 길이란다. 방향이 맞으면 태워주겠다고 한다.


"오!! 이런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숙소는 리조트에요. 여기 입구까지 부탁드릴게요."


그 주민은 흔쾌히 우리를 숙소입구까지 데려다 주셨다.


이렇게 운이 좋았던 날이 있을까?

절물휴양림 후문을 열어준 분이 계셨고, 사려니 숲길도 무사히 걸어나왔고, 주민의 도움으로 숙소까지 편하게 왔으니...


이러한 짧은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 오늘은 진정 제주에서의 특별한 날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제주의 숲길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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