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기억되는 길
2009년 가을...
이전까지 내가 걷는 길의 관심은 주로 도심속을 걸으며 이야기를 엮어내는 '도심걷기여행' 이었다.
나름 걷는 재미가 쏠쏠하고 볼거리와 이야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며, 동행하는 회원이나 사람들도 즐거워하는 모습을 계속 보았기 때문이다.
도심걷기는 자연이 겹치는 숲과 골목 사이에 숨어있는 문화유적, 그리고 아기자기한 옛 골목길의 모습을 찾아걸으며 도란도란 얘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도심에서 만난 풍경은 모두가 신기한 볼거리이자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기억의 대상이다.
그리고 숲은 그저 산에 있는 나무들의 무리이며, 숲길이라는 건 등산로의 다른말이라는 생각이 선입관처럼 굳어있었던 나였다. 힘들게 능선을 타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어서 등산하는것을 일치감치 포기하였었다.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 인라인스케이트탈때나 MTB를 탈때도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즐기듯 운동하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은 그저 속도에 미치거나 기록에 얽메여 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나한테는 기록이 중요한게 아니라 MTB던 인라인이던 타면서 즐기는 그 순간이 즐거워야만 했다.
걷기를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는데, 숲은 즐거움을 줄 수 없다고 단정하듯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소한 기회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이런 나에게도 또다른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내가 속해 있던 동호회 소모임중에 '임도매니아'라는 소모임이 있었다. 절친 인듯한 몇 명이서 전국에 퍼져있는 임도길을 답사하고 모임을 진행하는 소모임이였다. 나는 '도심걷기'를 주제로 모임을 진행하고 있을때이기도 하였다.
임도(林道)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접하기도 하였고, 등산로가 아닌 산 언저리를 따라 길고 넓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계기가 되었다. 힘들게 올라가지 않아도 숲을 즐길 수 있는, 내가 원하는 즐길 수 있는 숲길이였던 것이다.
2009년 가을이 시작될 무렵, '임도매니아' 회원들과 함께 양평 소리산에 있는 임도를 처음으로 답사하고 걷는 기회가 찾아왔다.
양평군 단월면 산음리 산음휴양림 뒤편에 펼쳐져 있는 임도 중, 비솔고개부터 휴양림까지 이어진 14km의 거리 구간을 첫 답사하게 되었다.
임도가 조성된지 30~40년 가까이 되다보니 길모양만 남은 채 다양한 나무가 자라서 숲터널처럼 연이어 펼쳐져 있었다. 게다가 가을이 시작되는 계절이여서 인지 곳곳에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숲터널이 살짝 끊어진 곳에서 산 주변을 둘러보니 노랗고, 붉게 물든 나무가 점점히 찍힌듯 보였다.
임도위에는 단풍잎과 참나무잎이 떨어져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보인다.
임도를 처음 마주한 나에게는 또다른 새로운 세상의 길이였다.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숲길, 힘든 오르막을 올라가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은 주변을 계속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마음이 가라앉듯 편안해짐을 경험한다.
가을에 피는 꽃과 나무, 자연이 보여주는 파스텔톤의 보드라운 색감이 가득히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숲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산을 다닌다고 했을때는 경험하지 못하였었는데...
산음리의 임도길은 약 300km 정도 사방에 이어져 있다고 한다. 이날 내가 걸었던 구간은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되돌아와서 임도길에대해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산림청 홈페이지에는 '전국에 아름다운 임도 100선'을 소개하는 정보가 있었다. 바로 내려받기하여 찬찬히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산음휴양림을 가로질러가는 산음임도길도 아름다운임도 100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수없이 펼쳐진 임도 정보를 보면서 또다른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찾아가봐야할 길은 여기이구나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이를 통해 한국의 랑도네를 꿈꾸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아름다운 숲길을 찾아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만들겠다는 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이기도 하다.
숲길을 걷기시작하면서 한가지를 더하게 되었다.
휴양림에는 잣나무 또는 소나무숲, 남도 지방에 내려가면 편백나무숲 군락지가 곳곳에 있다. 그냥 숲길을 따라 지나칠수도 있지만, 멋드러진 숲이 나타나면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돗자리를 펴들고 낮잠을 자던가, 옆사람과 담소를 나누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걷기동호회가 상당히 많지만 이렇게 둘레길이나 숲길에서 쉬어가는 동호회는 내가 속해 있던 동호회에서 처음으로 시작하였고, 현재 '숲을찾는사람들' 카페에서는 이렇게 쉬어가는 숲길걷기여행이 기본 프로그램처럼 되어 있다.
요즘에는 힐링과 피톤치드를 받아들이는 산림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난 이러한 '쉼'이 대세가 되기 이전부터 회원들에게 얘기해주고 실제로 숲에서 쉬어갔었다.
2009년~2010년 숲길을 걸을때 쉬어가자하면 왜 쉬냐고 따지던 회원들은 지금은 좀더 쉬어가자고 한다. 땀내며 걷는것보다 숲을 즐기며 여유를 가지는 힐링숲여행으로 변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