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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용 Jan 14. 2021

'운 좋게도' 미국에서 살아보게 되었다

[별일 있는 미국] 연재를 시작하며

"거기 가봤는데 별거 없더라."

"그거 해봤더니 별거 없더라."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으레 얘기 사람들이 있었다. 들을 때마다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가봤던 사람, 해봤던 사람 입에서만 내뱉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경험이 있는 사람만 저 말들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렇군요"라고 답했지만, 실상 마음속에서는 '부럽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한번 가볼까?', '나도 언제 해볼까?'라는 도전 의식도 생겼다. 경험은 인생에 있어서 실로 귀중하다. 포드 회사 설립자 헨리 포드가 말했듯, "삶은 경험의 묶음"이기 때문이다. 낱낱의 경험이 쌓여 우리 인생살이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다. 각 개인에게 주어진 여건도 판이하다. 다행히 우리는 사유(思惟)가 가능한 호모 사피엔스이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호모 파베르다. 그리고 놀고 즐길 수 있는 호모 루덴스이기도 하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여러 가지 매개체를 만들어 전달한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생각 속에서 즐길 수 있다. 단순하게 '별것 없다'라고 말 한마디로 경험을 함축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소상하게 말해줄 수 있다. 이것이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이 지구를 정복한 성공비결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살아봤더니 별거 없었다' 기이하게도 요사이 부쩍 많이 들었던 말이다. 소싯적부터 '미국'이라는 단어는 파다히 들어왔다. 날마다 뉴스에서도 미국 소식은 빠지지 않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관련된 책을 적잖이 읽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지내다 온 사람들이 있으면 요것조것 물어봤다. 그 사람들에게 얘기를 들으며 나름 '간접 경험'을 열성껏 했다. 하지만 '별거 없다'라는 그 별것이 무엇인지는 당최 알 수 없었다.


하필 회사에서 업무를 하면서 여러 미국 생활 경험자를 만났다. 으레 미국으로 얘기 주제가 수렴된다. 정치나 사회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 대화에 동참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활'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 세워 듣는다. '미국 전화금융사기 전화 내용은 가히 할리우드 수준급이다', '미국인들은 하루에 2번만 양치하더라' 등등의 생활 방면의 얘기는 흥미로웠다.


하루는 정숙한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미국 사람이었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힘겹게 응대했다. 공허한 사무실이 내 육성으로 가득 채워졌다. 태평양 한가운데 뗏목을 타고 있는 듯 뱃속이 울렁거렸다. 혹여나 미국에서 짧게 살다 오면 뗏목에서 통통배로 갈아탈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통통배가 뗏목보다는 흔들림이 덜 할 테니 말이다. (미국에서 살다 온 나는 되레 낡고 조각난 뗏목을 타고 있다)


그래서 결심했다. 미국에서 2년 살기로 말이다. 나의 버킷리스트에 1순위로 올려놨다. 살아보고 별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별것이 무엇인지 기록해보기로 했다. 인생을 얼마 살진 않았지만 한 가지 진리는 알고 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몇 년간 절실히 생각하니 행동하게 되었다. 그러니 여러 가지 길이 보였다. 그리고 운 좋게도 살아보게 되었다. 미국을 말이다.


* 출처: Pixabay


미국은 말 그대로 아메리카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간단히 말하면 50개 국가의 연합이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헌법과 의회를 가지고 있는 주(State)가 필요 때문에 결합한 것이다. 물론 연방으로 묶여있으니 공통점도 있지만, 주마다 고유한 색채를 갖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각기 고유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호 침해할 수 없다. 외교와 국방 등에서는 연방정부에 전권이 있다. 그러나 교육, 주세법 등은 주 정부에 권한이 있다. 또 필요에 따라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부분도 있다.


미국은 매우 크다. 땅덩어리만 한국의 얼추 100배에 달한다. 따라서 한 개의 주에서만 생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이 이렇다'라고 얘기할 수 없다. 마치 조그만 개미가 큼지막한 코끼리 다리만 올라타고 마을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코끼리 전체를 묘사해주는 것과 같겠다. 코끼리 다리만 갔다 온 개미는 다리만 얘기하면 된다. 코끼리 코에 갔다 온 개미가 코를 설명해줄 것이다. 단편적인 조각들이 한데 모이면 우리는 코끼리 전부를 볼 수 있다.


내가 2년간 생활했던 지역은 애리조나(Arizona)이다. 애리조나도 매우 광활하다. 크기는 한국의 3배 정도 된다. 미국에서는 6번째로 큰 주이다. 황량한 사막도 있고 푸르른 산줄기도 있다. 그 유명한 그랜드캐니언이 애리조나에 있다. 내가 살던 지역은 선인장으로 덮인 사막 지역이었다. 집만 나서면 건식 사우나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애리조나도 '뜨겁다'로 일반화할 수 없듯이, 미국 전체를 한 어휘로 묘사할 순 없다.


텍사스(Texas)에 가면 이런 보험 광고 글귀가 있다. '텍사스 크기만큼 절약할 수 있습니다. (Texas-sized Saving)' 그만큼 거대하다는 것이다. 텍사스주 끝에서 끝까지 운전해본 적이 있다. 10시간 걸렸다. 그제야 그 보험에 가입하면 내 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 절감했다. 50개 주가 모인 미국은 이보다 더 크다.


'별일 있는 미국' 책은 2018년 7월부터 2020년 8월까지 2년이라는 짧은 시간, 애리조나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경험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애리조나도 미국의 한 부분이니 여기서는 미국이라고 일반화하여 칭하겠다. 생활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미국에 대한 사회, 경제, 문화 등 궁금한 것을 알아봤다. 그리고 이제야 말한다. "미국 살아보니 별일은 있었다."


*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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