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 면회

영사관 해외안전팀 사건수첩

by 윤랑

우리 팀은 1년에 2번 필리핀 전역의 교도소, 구치소에 수감자 정기면회를 간다.

비쿠탄 이민청 수용소같이 수시로 면회를 가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 거기는 수감시설은 아니고

구치소 jail에서 재판을 기다리거나 1심이 끝나고 유죄판결을 받아 감옥 prison에 수감되어 있는

한국인 수감자들 숫자만 백 명에 육박한다.


담당영사 별로 나누어서 일주일에 걸쳐 영사 한 명 당 수감자 20~30명을 면담한다.

면회기간 동안 기결수들이 모여있는 NBP 같은 곳에 위문품을 가지고 매일같이 방문한다.

예전에는 라면뿐만 아니라 비누, 치약, 초콜릿 같이 다양하게 위문품을 구성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검색이 엄격해져서 수감기관에서 포장된 것도 다 뜯어보기 때문에

거의 봉지라면 위주로 박스에 포장해서 전달한다.


우리를 환영하는 수감자들도 있고 만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동료 수감자의 비리를 제보하는 사람도 있고 출소가 멀지 않은 사람들은

귀국 절차나 한국의 가족에게 연락을 하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하기도 한다.


H는 살인죄로 종신형을 받아 수감 중인데 면회를 가도 몇 년을 뚱한 표정으로 별 말도 없었는데

현지인 수감자들에게 살해협박을 당한다고 해서 교도소 측에 수감동을 즉시 바꿔달라고 요청해서

허가가 난 이후로는 태도가 바뀌어서 우리에게 입을 열게 되었다.


필리핀 교도소의 상황은 정말로 매우 열악하다.

식사는 물론이고 간수의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수감자들이 자치적으로 운영의 일부를 담당하며

위생상태나 의료지원도 턱없이 수준 미달이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그 긴 시간 동안을 본인이 저지른 범죄를 반성하고 참회하는 태도를 가졌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실제로 교화가 된 사람은 보기가 쉽지 않고 계속 누굴 원망하고 단지 재수가 없어서 잡혔다고

생각한다.


H는 그런 생지옥 같은 곳에 이미 20년이나 수감되어 있었는데도 출소를 하면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묻자

본인을 신고한 사람을 찾아가서 복수하겠다는 말을 담담히 해서 겉으로 표를 내진 않았지만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또한, 그 범죄의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걸 어떻게 참냐'며 시간을 되돌려도 똑같이 했을 거라고 했다.

교화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개념인지 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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