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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Mar 30. 2020

과잉된 이미지와 주제의 충돌

<온다> 2019,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 중인 한 남자가 자신을 부르는 미스터리한 '그것’의 전화를 받는다. 초현실적이고 의문스러운 사건들이 이어지던 와중에 그의 아내와 딸 또한 그 표적이 된다. 보이지 않지만 도망칠 수 없도록 만드는 공포 속에서, ‘그것’이 부른 그들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준비됐습니까? 맞이합시다!


<온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그것'을 맞이하는 것. 영화 속 인물들은 준비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저마다 '그것'을 맞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죽음을 맞이하고, 일부는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는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그것'이 가지는 미스터리함을 풀어나가는 형식보다도 각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형식을 취해 영화를 찍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그것'의 특성은 일부 밝혀질지언정 그 정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밝혀지는 것이 없다. 극이 진행될수록 '그것'의 존재감은 점점 관객을 압도해가지만, 영화는 사실상 '그것'의 정체를 밝히는 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관심을 두고자 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바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즉, 인간이다.


극의 형식 자체를 의도적으로 나누어 놓지는 않았지만, <온다>는 각 인물의 시점에 따른 3부 구성의 형식을 취한다. 각 부분의 중심은 각각 '히데키', '카나', '노자키'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선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위선적인 면 또한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점은 '그것'이 그들에게 접근해 위협을 가하는 계기가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얽혀 영화의 후반부에 조명되는 인물, '츠사'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1부, 히데키


'히데키'는 '카나'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 '치사'를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는 딸이 아내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육아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하고, 단숨에 파워블로거가 된다. 육아 관련 서적을 사 읽고, 아빠 모임에 들어가 다른 아이 아빠들과 소통하는 등의 노력을 하며 회사 업무와 가사, 육아노동을 병행하는 그는 '모범적인 아빠'의 모습으로 느껴진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그의 앞에 나타났던 정체불명의 존재가 그의 주변을 다시 맴돌기 시작하고, 그의 가족 또한 위협한다. 그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친구인 민속학 교수 '츠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츠다'는 자신의 지인 '노자키'를 그에게 소개한다. 그는 '노자키'와 영매 '마코토'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그것'을 피하지 못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2부, 카나


1부가 끝나고 2부인 '카나'의 이야기로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히데키'는 사실 좋은 남편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이점은 중간중간 플래시 백으로 삽입되는 '히데키'의 어린 시절 장면들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장면에서 그는 숲 속에서 한 소녀와 함께 있는데, 그 소녀는 그에게 그가 "거짓말쟁이니까" '그것'이 그에게 올 것이라고 말한다. '히데키'는 성장한 후에도 여전히 거짓말쟁이다. 그는 그의 친구들이 묘사하는 것과 같이 '빈 깡통과도 같은 사람'이다. 외적으로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의 모습을 자처하던 그는 아내와 딸을 챙기기보다는 현실을 과장시킨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의 육아 블로그를 꾸미는 것에 더 열중했다. 2부는 그런 '히데키'의 이중적인 모습에 염증을 느끼던 카나가 그의 죽음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홀로 '치사'를 키우게 된 그는 일과 가사, 육아를 병행하며 치사를 돌보려 노력하지만 주위에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상황은 여의치 않다. 자신을 방치했던 엄마와 다르고자 했던 그는 결국 자신의 엄마처럼 '치사'를 방치하며 기르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그것'이 찾아오고야 만다. 카나는 '그것'에 죽임을 당하고, '치사'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3부, 노자키


'히데키'와 '카나'의 죽음 이후, 영화는 급작스럽게 사건의 주변 인물 혹은 조력자처럼 보이던 '노자키'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노자키'는 과거에 아이를 원치 않아 임신했던 전 연인에게 아이를 지우기를 강요했던 사람으로, 뒤늦게 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는 겉으로만 모범적인 아빠이자 남편인 척하는 '히데키'를 보며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는 반면, 신체적 이유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현 연인 '마코토'와의 관계에 대해서 갈등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던 중, '그것'이 '치사'를 데리고 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마코토와 그의 언니이자 일본 최고의 무당 코토코와 함께 '그것'에 맞선다. '코토코'는 대규모의 굿을 치러 '그것'을 달래 떠나게 만들려고 한다.
 
영화의 끝에 다다를수록 관객은 '그것'의 몸집을 키운 것은 사실 '츠사'였음을 알 수 있다. 부모에게 방치된 아이의 외로움이 '그것'을 친구 삼아 놀게 만든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노자키'와 '마코토'는 '츠사'를 차마 '그것'에게 보낼 수 없어 아이를 데리고 가려는 '그것'에 대항해 아이를 되찾는다. '츠사'는 자신의 부모의 품은 아니지만 '노자키'와 '마코토'의 품 안에서 살게 되고, 영화는 나름의 해피엔딩에 다다른다.



<온다>는 '그것'이라는 존재를 내세운 공포, 오컬트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드라마 장르에 가까운 영화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자신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화면과 독특한 편집점을 통해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도 중심이 되는 세 인물 각자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극의 무게감을 잡는 데 힘썼다. 그런데 이런 시도가 온전히 들어맞았는가 하는 것은 그 의도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장르적 재미와 주제의식,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어느 정도 존재하긴 하지만, 영화는 주제와 장르적 재미 사이에서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각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히데키'의 이야기에만 1시간가량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히데키의 이야기는 비교적 잘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나'와 '노자키'의 경우, 인물 설정은 다소 매력적 일지 모르나, 인물의 배경 이야기가 온전하게 구축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인물에게 들이는 시간부터 상당히 차이가 날뿐더러, 온전히 이입될만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의 시점이 계속 바뀌며 급변되는 전개는 다소 생뚱맞게 느껴지게 된다.


이것은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된다. 영화는 '그것'의 정체를 파헤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보다 드라마적 서사에 힘을 실었다. 이러한 방식이 제대로 적용되려면 드라마적인 서사가 그만큼 매력적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그것'이 가지고 있던 미스터리함의 해소가 필요 없어질 만큼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나 '오므라이스 나라'에 대한 꿈을 꾸는 '치사'의 곁에 '노자키'와 '마코토'가 웃으며 앉아있는 영화의 마지막은 괜찮은 해피엔딩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전 장면들의 밀도를 생각한다면 다소 힘이 빠지는 결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며 장르적 재미와 드라마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만큼, 이 둘이 겉도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래 링크의 글과 동일합니다.

https://m.cafe.naver.com/ca-fe/web/cafes/25494727/articles/7599?menuid=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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