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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Jul 30. 2020

2020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기록

6편의 영화에 대한 단상/짧은 리뷰

2020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필자가 관람한 영화 중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영화들에 대한 단상.



<세인트 모드>(Saint Maud, 2019)


이번 BIFAN 최대 기대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였다. 'A24 호러물'이라는 수식어 만으로도 익히 기대한 영화였고, Film4와 BFI의 제작지원 사실 또한 기대감을 더했다. 한 사람이 '신의 목소리'를 들은 후 그것에 광적으로 빠져드는 내용을 담은 영화는, 광신적인 종교관의 모순을 드러냄과 동시에 사실과 상상의 혼재를 인물의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 녹여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극을 완성시킨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끓고 있는 수프, 간호사라는 직업 등 평범하고 일상적인, 친숙한 소재들에서 공포의 심리를 조성해내는 방식이었다. 아마도 무척이나 외로웠기 때문에 더욱 광적으로 종교에 빠졌을 주인공 '모드'를 연기하는 모르피드 클락의 연기는 단연 인상적이었으며, 로즈 글라스 감독의 연출과 각본 또한 첫 장편 영화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대담하고 인상적이었다. 적어도 이 영화에 구원이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해내며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장면이 여전히 생생하다.



<유물의 저주>(Relic, 2020)


사실 이 영화는 한국 제목을 잘못 지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그래서 저주를 내리는 유물은 어딨다는 거야?'하면서 유물이 어딨나 한참 찾았다. 유물의 저주라는 제목 보다도 원제 그대로 '유물'이라는 제목이 더 잘 어울리는 영화다. 저주내리는 유물 같은 건 없었다. '치매'가 가족에게 끼치는 영향을 노화, 치매에 대한 공포감, 흉가의 으스스한 분위기와 잘 버무린 호러 영화였다. 결국 우리는 모두 노화라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썩어가는 유물이 되고야 만다는 다소 직접적인 주제를 담아내는데, 이를 가시적으로 나타낸 사진을 씹어 삼키는 장면이나 묘지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치매에 걸려 모든 걸 잃어 가는 '에드나'를 연기한 로빈 네빈의 연기는 역시나 인상적이었으며, 군더더기 없이 심리적으로 조여오는 연출이 좋았다. 아마도 극장에서 본다면 훨씬 몰입하며 볼 영화.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을 꼽자면 치매라는 질병을 공포감 있게 표현해낸 것 외에는 큰 인상이 남지 않는다는 건데, 때문에 <유전>이 왜 이 영화와 함께 언급되는 지는 알겠으나 <유전>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호러 영화였다



<끝없음에 관하여>(About Endlessness, 2019)


로이 안데르손 감독의 영화는 처음이다. 건조한 잿빛 톤과 무표정하고 무기력한 인물들, 에피소드 배열 방식의 전개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이내 이 영화가 좋아졌다. 회화를 옮겨 놓은 것 같은 장면들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는데, 인물들의 움직임이 정적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감이 있다. 연결될 듯 연결되지 않는 에피소드의 겹침 속에서 인간의 굴레에 대한 감독의 탄식과 연민의 감정을 보았다. 자동차를 고치는 마지막 장면에서 일종의 희망을 엿보긴 했지만, 영화가 상당히 건조하고 차가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의 전작들은 더 그런 편이라는 사실을 듣고 놀랐다. 포스터 속 장면 때문에라도 극장에서 봤다면 더 좋았을 영화.



<펠리컨 블러드>(Pelican Blood, 2019)


펠리컨이 서양 고대 전설에서 아픈 새끼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주는 희생과 모성의 상징이라는 소개에 모성 신화를 풀어낸 영화겠구나 했는데, 호러 영화에서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상당히 흥미로웠던 영화. 상영 시간이 조정되어서 GV 회차를 예매했다가 온라인으로 보게 됐는데 GV를 듣지 못한 게 아쉽다. 의외로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영화는 <야생마와 죄수>였다. 그 영화가 '교화'에 대한 영화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의지'에 대한 영화다. 둘째 딸 라야를 입양하고 아이의 폭력적이고 기이한 행동에 힘이 들지만, 비프케는 끝까지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비프케를 연기하는 니나 호스의 연기가 압도적으로 좋았고,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앞서감 없이 섬세하게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이 좋았다. 다만 악령의 아이 서사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비교는 힘들겠지만, 후반부가 아쉽게 느껴졌다. 조금은 불편하게까지 느껴질 만했던(아마 이게 청불 등급의 이유겠지) 라야의 행동의 원인 해결이 큰 인상을 주지 못한 게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주던 복잡미묘한 감정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배드 테일즈>(Bad Tales, 2020)


영화를 보면서 Bad Tales 보다도 'Bad Fairy Tales'가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했는데 이탈리아어 원제 'Favolacce'가 동화라는 의미였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인 만큼 더 기대했는데, 마치 한 편의 나쁜 내용 가득한 동화를 듣는 듯한 인상을 주는 영화였다.  아이의 일기를 주워 그 내용을 읽는 낯선 중년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진행되는 영화는 그 속에 숨겨진 온갖 나쁜 것들을 카메라에 드러내기 시작한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집단을 그려내는 영화는, 인물들의 숨겨진 뒷편의 얼굴을 통해 인간사회의 민낯 자체를 드러내며 독특한 블랙코미디적 세계를 구축한다. 이 영화에서 특히나 재밌었던 부분은 보이스오버와 영상이 묘하게 다르게 표현된다는 점이었는데, 이것이 영화라는 매체에서만 가능한 형식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도 메타 영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나 가장 마지막에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해버리는 부분도 그렇고. 감정을 이입할만한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특이점 중 하나인데,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한 문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담하는데 이 영화는 국내 개봉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정서가 안 맞는다.



<괴짜들의 로맨스>(I Weirdo, 2020)


강박증을 가진 포칭은 우연히 세균공포, 대인접촉공포 강박증을 가진 칭을 만나게 되고, 공통점이 많은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포칭의 강박증이 사라지면서 두 사람의 삶은 변화를 맞는다. 인스타 화면을 연상시키는 정사각형 화면비 연출이 궁금했는데, 젊은 감독이 만들어내는 통통 튀는 분위기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두 사람 중 한 명이 정상인의 범주로 들어가면서 정사각형 화면비가 좌우로 확장되고, 영화도 이때부터 다른 분위기를 띤다. 그리고 그때부터 '괴짜'들의 이야기가 '우리'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올해 봤던 <사랑이 뭘까>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 영화에 비해선 살짝 아쉬운 영화였지만 개봉하면 인기 있을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박증 걸릴 권리를 왜 박탈해요?" 이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공통점은 참 쉽게도 '우리'의 차이점이 된다.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식어갈수록 장점은 단점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람 마음이란 게 언제나 변화무쌍한 걸. 한 사람이 정상이 되기 보단, 두 사람 다 괴짜일 때가 낫지. 화면비율 바뀌는 건 인상적이었지만 그 기점이 비둘기(로 추정되는 새 떼)인건 조금 유감이다. 여러모로 아쉬운 장면. 그래도 개봉하면 인기 있을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0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관람작


[장편]
부천 초이스: <유물의 저주>, <배드 테일즈>, <세인트 모드>, <펠리컨 블러드>
판타스틱 블루: <비밀의 잠>, <야만의 땅>, <RK>, <사랑스러운 파트릭>, <괴짜들의 로맨스>, <끝없음에 관하여>, <라스트 앤 퍼스트 맨>

[단편]
부천 초이스: <세 번째 인물>, <나의 일부>
단편 걸작선: <야성>, <과거에서 온 그것>, <니믹>, <벽>, <물이 사라진 세계>, <신의 딸은 춤을 춘다>, <오페라>, <종이 인형>, <배드 헤어>, <형이상학적 계단>, <프리랜서>, <늦가을 습격사건>, <레플리카>, <시스터즈>, <나무 아이와 숨겨진 어머니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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