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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Jun 18. 2020

전망 있는 방의 전망

<전망 좋은 방> 1985,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루시(헬레나 본햄 카터)와그의 사촌 샬롯(매기 스미스)은 여행지 피렌체에 도착한다. 이들은 호텔 주인과의 약속과 다르게 전망 좋은 방을 제공받지 못하는데, 이때한 부자(父子)가 선뜻 자신들의 방을 양보한다. 루시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그들이 궁금하고 신경 쓰인다. 그러던 중, 루시의 삶을 바꿔버릴 사건이 일어난다.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장된 인물들


<전망 좋은 방>의 인물들은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물들의 대사톤이 과장되어 있다. 영화가 만들어진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어쩌면 이 영화를 보던 일부 관객은 몇 장면에서 이질감을 느끼고 실소를 터뜨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물 묘사에는 단순히 인물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려는 의도 또한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나, 그럼으로써 1900년대 당시 영국의 계층 갈등과 가치관 충돌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의도가 더 커 보인다. 이 점은 영화의 동명 원작 《전망 좋은 방》특징이자 장점으로 꼽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 또한 그런 점들을 날카롭게 포착해 담아냈다. 주요 인물에서부터 잠시 등장하고 사라지는 다소 부수적인 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물들이 날카롭고도 유쾌하게 묘사된다. 특히나 당시의 영국 상류층에 대한 묘사는 신랄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당시 영국의 상류층이 다른 계층을 어떻게 보고 대했는지 자세히 묘사하며, 영화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진지한 분위기를 조화롭게 끌고 간다. 그렇기 때문에 <전망 좋은 방>은 한 남녀 루시(헬레나 본햄 카터)와 조지(줄리안 샌즈)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로맨스 영화이면서 동시에 당시 영국 상류층에 대한 유쾌한 풍자극이 된다.


상류층 사람들에게 에머슨 부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그들의 태도는 영화의 초반부터 분명히 드러난다. 호텔에 도착한 루시와 샬롯이 주인과의 약속과 다르게 전망 좋은 방을 받지 못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서로에게 그나마 더 나은 방을 양보하는 것을 보고, 에머슨 부자는 선뜻 자신들의 방과 바꾸자고 말한다. 자신들은 전망이 필요 없다면서. 이때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이들은 일제히 그들을 쳐다본다. 일부는 그들의 태도에 경악하고, 또 일부는 루시와 샬롯을 동정의 눈길로 쳐다본다. 그들의 눈에 에머슨 부자는 '교양 없는' 부류의 사람일 뿐이다. 선한 의도보다도 다소 무례하고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태도를 못마땅해 하며 그들을 적대적으로 여기고 깔본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은 세실(다니엘 데이 루이스)이다. 세실은 루시가 청혼을 승낙한 후 그녀와 약혼하지만, 그녀의 가족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루시의 남동생 프레디(루퍼트 그레이브스)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할 때 그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며 그것을 당연시한다. 특히나 그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루시의 "허니처치 때"가 벗겨지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나 루시에게 "여러 방법으로 계급이 섞여야 하기 때문"에 에머슨 씨(덴홈 엘리어트)에게 집을 추천해줬다고 하는 장면은 오만한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전망 좋은 방, 전망 있는 방


루시는 상류층과 에머슨 부자 사이에서 중간 정도에 위치한 성격의 인물이다. 자신이 교육 받아온 관습에 따라야 한다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자신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에머슨 부자에게 호기심을 가지며 그들을 지켜본다. 베토벤의 음악을 즐겨 치는 그의 모습과 자유분방한 남동생 프레디의 모습, 처음과 달리 점점 세실을 못마땅해하는 듯한 루시 어머니의 모습은 루시 또한 원래는 조지 에머슨 같은 유형의 사람이었을 것이라 추측하게 만든다. 관습과 권위를 학습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던 루시가 조지 에머슨에게 끌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변화하는 인물은 루시만이 아니다. 조지 에머슨 또한 마찬가지로 변화한다. 식당에서의 첫 만남에서 음식으로 물음표를 만들어 보이는 상징적인 장면처럼 조지는 세상에 대해 회의적인 인물이며, 비관적이고 우울한 인물이다. 그는 루시와 사랑에 빠지면서 점차 웃음과 생기를 되찾고, "끝없는 의문 옆에는 '긍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에머슨 씨가 내셔널 갤러리에서 루시에게 "모든 건 운명"이라 말한 것처럼 두 사람의 사랑을 운명론에 가깝게 그려낸다. 조지와 루시가 가까워지는 동안 세실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점이나 루시가 세실에게 파혼을 선언할 때, 세실이 자신을 받아달라 애원하지 않고, 악수를 한 뒤 깨끗하게 물러난 것은 결국 세실은 루시의 동반자가 될 운명이 아니었음을 암시했던 셈이다.


끝내 이루어지는 진정한 사랑, 그리고 가지는 두 사람만의 자유. <전망 좋은 방>이 지금에와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고전 로맨스 영화 중 하나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전망 없는 방에서 시작해 전망 있는 방에서 끝이 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을 이어준 바로 그 방이 있던 피렌체 호텔의 전망 좋은 방 창문에 걸터앉아 진한 키스를 나눈다. 이 영화의 "전망(View)"을 단순히 이 장면에서 배경으로 보여지는 피렌체의 풍경이라 볼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포괄적인 의미로 확장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어떠한 시각, 가치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게 볼 때, 그들의 "전망 '좋은' 방"은 "전망 '있는' 방"이 된다. 이 때의 가치관, "전망"은 영화 전반에 걸쳐 강조되던 것들의 총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습과 권위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와 선택, 신념에 따르며 사는 것, 그리고 조지가 나무 위에서 큰 소리로 외치던 '아름다움'과 '신뢰', '기쁨', '진실'에 가까운 것들을 영원히 긍정하고 따르며 사는 것. <전망 좋은 방>이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말하려 한 것은 그러한 가치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샬롯의 편지를 읽던 루시가 "봄이 오면 우리가 떠날 건 모두가 알았는데"라고 말하는 것처럼, 영화는 누구나 알지만 모른 척 부정하는 세상의 보편적 진리에 대한 직시와 애정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글은 아래 링크의 글과 동일합니다.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7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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