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시코기 Oct 29. 2020

예정된 결말을 맞이하는 법

<베이비티스> 2019, 섀넌 머피 감독





몸이 아파 제약된 삶을 살고 있던 '밀라'(엘리자 스캔런)는 승강장에서 우연히 '모지스'(토비 월레스)를 만나고, 그에게 푹 빠지게 된다. 아픈 밀라를 걱정하는 밀라의 부모는 불량한 모지스가 밀라의 곁에 있는 게 탐탁지 않지만, 밀라의 생각을 존중하려 한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베이비티스>의 기본적인 설정은 우리가 익히 봐온 범주에 해당한다.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는 어린(혹은 젊은) 주인공에게 사랑하는 상대가 나타나고, 주인공과 그 상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 언급한 것과 반대로 상대방이 시한부인 경우도 있다. 지금은 청춘 로맨스물의 고전 격이 된 <워크 투 리멤버>(2002)부터 시작해 <나우 이즈 굿>(2012), <안녕, 헤이즐>(2014), <파이브 피트>(2019)와 같은 최근작에서도 이런 설정은 자주 보이곤 한다. 그만큼 많이 회자된, 어쩌면 나올만한 이야기는 이미 다 나왔다고 해도 무방한 설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설정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참신하게 다가오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자못 독특하게 다가온다. 다소 분절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부드럽게 이어지는 챕터식 구성과 서로에게 모질게 행동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의 아픈 구석을 보듬어내는 네 중심인물 고유의 서사, 그리고 감각적인 미장센과 연출은 영화의 독특한 인상을 더욱 짙게 만든다.



영화는 치아 하나가 물속으로 낙하하는 숏으로 시작한다. 나중에 알게 되듯, 이 치아는 밀라의 입 안에 남아있던 마지막 유치다. 유치가 뭘까, 어린 시절에 사용되다가 영구치가 날 때가 되면 제 몫을 다하고 탈락되는 치아다. 보통의 경우라면 밀라의 나이대에는 유치는 다 빠지고 영구치가 자라나야 한다. 그런데 밀라의 유치는 단 한 개만이 계속해서 남아있다. 이 유치는 밀라의 부탁으로 모지스가 그녀의 숨을 끊어주기 위해 베개로 그녀의 얼굴을 압박한 밤에, 발버둥 치던 밀라가 자릴 박차고 일어나 둘이 키스를 나눈 후에야 비로소 빠진다. 마지막 유치는 그렇게 때가 됐다는 듯 빠진다. 그리고 이때 밀라가 흔들리는 이를 빼 옆의 물컵에 넣고 그것이 낙하하는 순간을 클로즈 업으로 잡은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첫 씬이다. 플래시 포워드인 셈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이 영화는 플래시백 씬으로 끝난다. 두 씬은 같은 날에 일어난 사건이다. 바로 밀라가 죽는 날. 밀라의 죽음에 모지스와 애나, 헨리 세 사람이 슬퍼하는 챕터에 바로 이어서 "해변" 챕터가 펼쳐진다. 파티를 갖기 전 모두가 해변으로 놀러 간 때다. 분만이 임박했던 토비의 배가 불러있는 걸로도 추측해볼 수 있다.




<베이비티스>는 정해진 결말에서 시작해 다시 그곳으로 종착하는 영화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왜 유치의 낙하라는 오프닝 숏을 통해 결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뒤에 다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걸까. 시한부 주인공을 다루는 영화 중 상당수는 시한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 주인공의 삶과 주변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오는 슬픈 정서에 집중한다. 그에 비해 이 영화는 주인공이 아프다는 것을 첫 씬에서부터 알리고 시작한다. 밀라의 코피를 통해서. 밀라의 병이 심해질수록 밀라의 부모와 모지스는 힘들어하지만, 그러면서도 밀라와 함께하는 순간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잘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슬픈 상황이지만, 모두가 슬퍼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보내는 것에, 밀라가 행복한 삶을 보내는 것에 집중한다. 영화의 결말을 시작과 끝에 배치한 이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결말에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결말까지 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가 하는데 초점을 둔다. "아름다운 아침""오늘도 빛나는 날"이라는 어느 챕터의 제목처럼, 이들의 시간은 슬프기보다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난다.


상처주기 싫어.
그럼 주지 마.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밀라와 모지스 관계의 시작은 사실 조금은 계산적이었다. 밀라가 모지스에게 빠지는 건 둘째 문제다. 4번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밀라에게 모지스가 강제퇴거 때문에 50달러를 달라고 하고, 밀라가 50달러를 줄 테니 부탁을 들어달라고 하면서 둘의 거래는 성사된다. 밀라의 부탁은 머리를 밀어 달라는 것이었고, 둘은 이를 계기로 조금씩 친해진다. 약물 중독에 수시로 물건을 훔치는 모지스는 밀라 집의 음식과 약을 훔치길 시도하고 결국 걸리지만, 밀라는 그런 그에게 화를 내거나 관계를 끊어내려 하기보다 그를 감싸고 그녀의 부모로부터 방어한다. 밀라의 전적인 사랑에 비해 모지스의 마음 행방은 불분명하다. 밀라를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약을 훔치거나 헨리에게 약을 받는 모습을 보면 상황에서 오는 장점을 취하기 위해 밀라의 곁에 붙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시작은 정말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 지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로맨스(1, 2부)" 챕터다. 파티장에서 다른 여자와 입을 맞추는 모지스를 보고 혼란스러워진 밀라는 모지스에게 자신을 정말 좋아하느냐고 묻는다. 이때 모지스는 "당연하지."라고 답한다. 진짜로 좋아하느냐는 밀라의 재질문에 모지스는 복잡하다며, 상처 주기 싫다고 답한다. 그리고 이에 밀라는 "그럼 주지 마."라고 답한다.




이때부터 모지스가 밀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밀라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다. 분명한 것은 모지스가 밀라를 각별하게 여긴다는 것이고, 밀라 또한 모지스에게 그렇다는 것이다. "상황이 달라졌다" 챕터 전후에 모지스의 마음 행방이 분명해지긴 하지만, 그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이 대화를 나눈 시점부터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관계는 밀라와 애비, 헨리의 관계에서도 같게 나타난다. 애비와 헨리는 처음부터 모지스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밀라가 제지하기 전까지는 그를 약쟁이라 불렀으며, 헨리는 모지스에게 밀라 근처에도 오지 말라 협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밀라의 모지스를 향한 마음이 꺾일 생각을 않자 둘은 어쩔 수 없이 밀라의 소원대로 이루어져 밀라가 행복해하길 바라게 된다. 결국 둘은 모지스를 집으로 들인다. 이들에게는 밀라의 행복이 최우선이며, 다른 것은 차순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그러하는 과정이 모두 정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나 헨리는 조금 선을 넘는 인물로 보인다. 그는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든 애나가 약물을 과다 복용하도록 만들고, 모지스가 한눈팔지 못하도록 약을 주는 등의 행동을 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헨리와 애나, 모지스 세 사람 각자의 이야기를 볼수록 분명 해지는 것은 이들이 모두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헨리는 딸이 언젠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고, 약에 손을 대기도 하며, 애나는 피아노 연주를 하느라 밀라를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피아노 연주를 그만뒀고, 약물에 의존하게 됐다. 모지스는 약물 중독이 되면서 엄마와 남동생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고, 혼자 외로이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척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들이 아무리 기쁘게, 미련 없이 이별을 받아들이려 해도 감당하기 벅찬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각자의 과정을 담아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챕터 "해변"에 가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별을 준비한 것은 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밀라 또한 그들과의 이별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하늘의 일부가 되면 즐거울 거야.



헨리가 밀라의 모습을 계속해서 카메라에 담던 것처럼 밀라는 눈으로 그들을 담았고, 언젠가 올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조금씩 준비했다. 해변을 배경으로 밀라의 사진을 찍어주려던 헨리가 준비됐냐고 말하자 밀라는 피곤하다고 말하며 자신이 사진을 찍겠다고 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잠시 하늘을 렌즈에 담는다. "이런 하늘의 일부가 되면 즐거울 거야."라고 밀라가 말한다. 그리고 이젠 정말 준비됐다는 듯한 담담한 말투와 표정으로 밀라는 자신의 부모를 카메라에 담는다. 이윽고 보이는 파도, 잔잔한 파도 소리는 그런 밀라의 심정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렇게 이 영화는 인물들을 카메라를 든 사람과 카메라에 찍히는 사람을 담아내며 끝낸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지금까지 보내온 순간들을 후회하기보다, 언젠가 다가올 마지막을 걱정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자는 것을.




*이 글은 아래 링크의 글과 동일합니다.


https://cafe.naver.com/minitheaterartnine/7854




매거진의 이전글 넘을 수 없는 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