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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시코기 Oct 25. 2020

넘을 수 없는 벽

<마틴 에덴> 2019,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나폴리, 선박 노동자 '마틴 에덴'(루카 마리넬리)은 상류층 여자 '엘레나(제시카 크레시)'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마틴은 엘레나처럼 말하고 생각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독학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작가가 되길 꿈꾼다. 마틴은 엘레나와 함께하기 위해 펜 하나로 세상에 맞서기 시작한다.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마틴의 독백 장면으로 시작된다. 무전기 앞에 앉아 말을 뱉고 있는 마틴은 무기력하고 지쳐 보인다. 곧장 영화의 타이틀이 뜨고 조금 지나서야 관객은 이내 영화의 첫 장면이 마틴의 인생 후반부의 어느 순간일 것이라 추측하게 된다. 이후의 장면들은 어쩌면 첫 장면 속 마틴의 기억들, 그 플래시백으로 구성된 것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관객은 그 순간이 마틴의 인생에 있어 어느 정도의 위치에서 일어난 사건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작가의 성장 서사를 다루는 여느 영화들과 다르게 이 영화에는 '마틴 에덴'이라는 작가의 전성기와 몰락에 대한 묘사가 다소 생략되어 있다.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은 <마틴 에덴>을 통해 창작가로서 픽션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잭 런던의 동명 소설 [마틴 에덴]을 각색해 각본을 쓰면서도, 원작과의 일정 부분 차별점을 . 그는 원작의 시대를 단순히 각색하기만 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성찰적이고 분석적인 문학의 근본 차원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소설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캘리포니아 배경을 1950년대 현대, 나폴리로 옮기며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은 가상의 도시를 영화의 배경으로 삼았. 그러면서도 잭 런던의 작품 구절들을 주인공 삶의 결정적 순간이나 미학, 정치적인 생각을 부각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 이끄는 시퀀스들에 녹이고, 소설의 뒤얽혀있던 삶과 서술을 영화 속 필름 아카이브 푸티지 삽입을 통해 가상의 장면과 실제 장면의 연결로 풀어내며, 이야기들을 서로 잇는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방식을 통해 원작과의 연결고리 또한 남겨두었다.




잭 런던의 소설 [마틴 에덴]에는 중심 테마가 있었다. 바로 '문화를 매개로 한 계급 간의 충돌'로, 19세기 후반 프롤레타리아에게 대중 교육이 확산되며 발생 가능한 현상이었다. 이는 영화 <마틴 에덴>에도 적용된다. 이 영화는 한 노동자가 상류 사회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교육을 계급 상승의 도구로 이용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야기다. 또한 영화의 후반부를 놓고 보자면 성공적이었던 작가가 후기에 예술혼을 잃는 과정을 담아낸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


마틴은 엘레나를 만나면서 엘레나처럼 되고 싶어 한다. 부르주아인 그녀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런 그에게 엘레나는 그가 그렇게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말한다. 마틴은 엘레나의 곁에 당당히 서기 위해, 그녀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학교에 원서를 내보지만,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그를 학교가 받아줄 리는 만무하다. 결국 그는 책을 읽으며 독학하기 시작한다.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 서로에게 편지를 보내며 마음을 키워가던 중에, 마틴은 엘레나에게 창작욕이 끓는다며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엘레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요건들이 있다며 수련과정이 없다면 재능이 있어도 어려울 것이라 조언한다. 마틴은 이에 굴하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하고 원고를 여러 곳에 제출하지만, 원고는 계속해서 반송되기만  뿐이다.




그러던 중에 마틴은 우연히 누군가의 연설을 듣게 된다. 연설자는 '진화의 법칙'은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에도 일어난다며, 지금의 사회주의는 노동자 개인보다도 조합을 우선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주인만 바뀌는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라 열렬히 외친다. 그의 연설은 관중의 냉소적 야유를 받지만, 마틴은 연설에 감명받고, 이를 통해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계급 상승에 대한 욕망은 사회주의와 사회로의 관심으로 발전된다.


그러면서 마틴은 부르주아인 엘레나와 자신 사이의 벽을 느끼게 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둘이 서로 다른 감상을 이야기하다 다투는 장면에서 세상을 희망적으로 보라는 엘레나의 말에 "부자는 굶주림을 모르지."라며 엘레나를 비난하는 마틴의 모습은 바뀐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엘레나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만나게 된 루스를 통해 마틴은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에 입문하게 되고, 그의 사회 현실, 고발적인 메시지를 담은 글이 점점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는 드디어 작가가 된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그의 글을 읽을 정도로 유명 작가가 된 그지만, 그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무기력하고 불안정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자신의 곁에 있어주던 마리게리타를 그녀의 사랑이 고통스럽다며 밀어내고, 뒤늦게 자신을 찾아온 엘레나를 뻔뻔하다고 화를 내며 내쫓는다. 그의 삶은 성공했을지 모르나, 교육을 계급 해방의 도구로 삼으며 계급 상승을 꿈꾸던 그의 꿈은 결국 좌절된다. 영화 초반 선박에서 그의 동료가 한 말 "노예보단 떠돌이 생활이 나아."처럼 어쩌면 그는 세상을 떠돌며, 떠돌이처럼 표류하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그가 꾸는 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몽롱하고 신비롭게 다가온다. 그에게 거절당하고 어머니의 차를 타는 엘레나를 보던 마틴은 그 곁을 지나가는 자신의 환영을 보게 된다. 아마도  과거의 자신을 본 것일 테다. 마틴은 그 환영을 따라가다 이내 멈추어 그것을 바라본다. 이때 배가 침몰하는 흑백 필름 푸티지가 연이어 삽입되고, 더욱 몽롱한 씬이 펼쳐진다. 전쟁이 시작되는, 어딘지 모를 바닷가에서 눈을 뜬 그는 석양을 향해 헤엄쳐간다. 가상의 인물'마틴 에덴'은 그렇게 사라져 간다.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그가 영원히 떠돌이 생활을 지속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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