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발전과 다시 정체된 사회, 더 나은 사회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부자들의 천국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 나오는 말이 가장 적절하게 떠오르는 나라가 이 곳, 태국이다
세계은행의 자료에 의하면
태국의 1인당 소득(GNI per capita)는 7,000달러 수준으로 한국의 1/5 정도이다.
그런데, 사회는 극단적으로 이분화되어있다. 방콕의 시암파라곤, 아이콘시암, 엠커티어 등 대형 쇼핑몰에는 밥값이나 옷값이 한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고, 큰 규모의 샤넬,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가 즐비하며 포시즌, 리츠칼튼 등 최고급 호스피탈리티 브랜드들이 겨루는 부동산 시장도 서울 정도의 비싼 상품이 많다. 방콕 중심에 새로 지어진 마하나콘 건물의 리츠칼튼 레지던스는 기본 가격이 20억원대부터 시작하여 서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새로 지은 쇼핑몰의 주차장에는 포르쉐와 벤츠같은 좋은 차들이 넘쳐난다.
GNI가 7,000불 수준인데 이런 상황이란 것은 대부분 한 달에 70만원을 쓴다는 게 아니라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판자집에 살거나 신발도 없이 한달 소득 30만원도 안 되는 벌이로 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태국은 일본과 함께 아시아에서 드물게 스스로 근대화를 이룬 나라이다. 동남아 국가에서 드물게 다른 나라의 식민지를 겪지 않고, 20세기에는 독보적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다. 도요타 등 각종 기업이 투자를 하며 공장을 지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영화에서 다뤄졌을 정도로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태국의 발전은 싱가폴이나 한국보다 많이 뒤쳐졌다.
왜 그럴까?
소위 ‘하이소’라 불리는 상위 계층- 왕족과 고위 관료들과 군부, 자산가들이 대부분의 부를 차지하고 부의 대물림, 즉 그들만의 리그가 이어져 신분간의 이동이 어려운 사회다. 예로 하이소가 아닌 블랙핑크의 '리사'가 성공한 것이 태국에선 화제가 된 적이 있고, 넷플릭스에서 잠깐 본 태국 영화는 복권을 팔다가 당첨된 복권을 폭력배에게 뺏긴 걸 다시 찾는 설정의 코메디 영화인데, 앞부분에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세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담 스미스가 국가의 부는 모든 구성원의 부를 합친 것이라고 지적했듯, 당연히 부가 한쪽에만 몰려있고 독차지 한다면 나라 전체의 부는 커지기 어렵다. 사회의 부유함은 사회구성원들간이 만들어낸 가치, 일과 상품, 거래가 순환하면서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고인 물처럼 국가 경제의 발전 속도는 더뎌지고 종국에는 마이너스 성장까지도 이뤄질 것이다. 역설이지만, 가진 자들이 더 가지고 싶다면 없는 자들이 더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 전체의 부도 커지고 더 큰 부자들이 나올 수 있는 방법인데, 태국이나 발전이 더딘 여러 국가들의 현실을 보면 일부 계층이 부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사회나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동굴에 살 때는 끊임 없이 서열을 정하고 경쟁하는 침팬지의 무리와 큰 다름 없던 사피엔스들이 조금 더 큰 무리를 만들고, 신화를 만들고, 협업하고 분업하면서 조금 더 안전하고 조금 더 풍족해졌다. 그런데 언제부터 권력과 신화를 차지한 이들이 자기들의 가진 것과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더 가지고 더 뺏기 시작한다.
그렇게 오랫 동안 유지되던 세상과 사회가 근대 철학과 근대 과학의 힘을 얻어 사회 구성원들은 소위 ‘봉건적인 사회’- 신분계급과 낡은 행정, 사회 제도, 재래식 기술-에 반감을 가지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바꾸기 시작한다.
‘혁명’의 발견이다.
그러나, 스파르타쿠스 때부터 프랑스 혁명, 마오쩌둥 혁명 때까지도 혁명은 그 자체로만은 성공적인 적이 없었다. 기득권에 밀려 실패하거나, 혁명 후의 혼란으로 어지럽거나, 기득권을 밀어내고 공산당이란 새로운 기득권으로 자리바꿈할 뿐이었다.
이번 방콕에 왔을 때 벽에는 선거 포스터에, 술집에선 선거로 술을 안 판다고 하길래 간단히 알아보니 5월엔 국회의원 등을 뽑는 일반 선거가 있다. 태국에서 새로운 정치 바람이 분다고 한다. 왕정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젊은 정치인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 세계의 여러 나라와 사회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사회는 항상 여러 문제를 안고 키워나가기 때문에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19세기말 스스로 근대화하지 못하고 식민지가 된 많은 나라들처럼 무너질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기존의 채계를 무너뜨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존 기업과 상품이 맘에 안 들면 불매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더 좋은 상품을 만들고 팔 수 있는 스타트업을 만들어야하고 거기에는 투자와 좋은 팀이 필요하듯
세상을 바꾸려면 새 정치가 필요하지만, 그것 역시 기존에 대한 비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상품, 즉 더 나은 체계와 추진력과 좋은 팀이 필요하다.
더 나은 사회를 원하는가?
기성 체계에 대한 비판과 함께 그 이상으로 중요한 새로운 틀에 대한 고민과 좋은 팀을 꾸리자. 세계와 과거, 현재, 미래로 시각을 넓히면 우리는 겪지 않은 일도 미리 예측해 볼 수 있고, 사람을 휘두르는 정치가 아닌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