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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한중 수교 전 처음으로 중국 갔을때 썰

황딱TV 마이스토리 #013


우리나라는 중국과 1992년에 수교를 시작했습니다.

수교 전에 우리는 중국을 적으로 여기는 나라라는 뜻인 

'적성국가'로 불렀드랬죠!


지금의 중국...

30년 전과 비교하면 정말 ‘천지개벽’, ‘상전벽해’ 수준입니다!


이번 영상은 대우그룹에 근무하던 황갑선 박사가 

한중수교 전 1990년에 첫 중국 방문하여 

30년전에 보고 느꼈던 경험담을 소개합니다.


30년 전의 황딱님, 정말 잘생겼쥬? ^^


당시 우리나라에서 중국에 방문하려면 

엄청나게 까다로운 절차들이 필요했습니다. 

특정국가 여행 허가서를 받기 위해서는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안기부’에서 특별교육을 받았어야 했어요.



“일과가 끝나면 호텔 밖으로 나가지 말 것,

업무 이외에 중국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말 것,

안전 사고에 유의할 것,

정치와 관련된 사항은 언급하지 말것,

귀국 후 보고서를 쓸 것......”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재미있는(?) 조항들이었죠! ㅎㅎ;


사실 허가서를 받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교통편이었습니다.

그 당시 중국과 항공편이 개통되지 않아서 황딱님은

파나마 국적선인 배를 타고 인천에서 16시간을 달려야 했다고 합니다.


랴오닝성 잉커우(营口)시에 가기 위해서는 

산동성 웨이하이(威海)에서 국내선 배로 갈아타고 

8시간 동안 달려 다렌(大連) 도착한 후 

다시 승합차로 갈아타 6시간을 달렸다고 하더군요!

당시 도로는 정말 휑휑했고, 중간에 주유소도 없어서

드럼통에 휘발유를 가득 싣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상상이 안갑니다. ^^;;)


두번째 방문했을 때에는 상황이 좀 나아지긴 했다고 해요.

그래도 직항기는 없어서 션양(瀋陽)에 가기 위해서

홍콩(Hongkong)을 거쳐 중국민항기로 베이징(北京)으로 도착후 

다시 기차로 까지 무려 18시간 만주벌판을 달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외국인은 인민폐(人民弊)가 아닌 

태환권(兌換券,FEC)이라는 화폐를 사용해야했는데 

달러 암거래가 성행하는 풍경이 보였다고 하네요.

황혼무렵 집집마다 석탄 떼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거리의 사람들은 대부분 인민복을 입었는데, 

그 중에는 별 달린 모자와 완장을 찬 사람들이 보였다고 합니다.

아마 낯설면서도 두렵고 신기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겠지요!



그. 러. 나!

중국 땅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친절했다고 합니다.

그 때에도 중국사람들에게는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는지

굉장히 우호적이었대요.


황딱님은 중국파트너들에게 식탁 위에 접시가 겹칠 정도로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해요! ^^

황딱님은 당시 중국의 음식과 고량주에 매료에 되어 

지금까지 쭈욱 중국에서 30년을 일하 게 되었습니다. ㅎ


30년 전 중국의 풍경을 옛사진과 함께 생생한 얘기를 듣고싶다면,

지금 바로 황딱 TV로 놀러오세요~ GoGo!


https://youtu.be/Jowlx-oqeeE

#옛날중국 #한중수교 #30년전중국


황갑선 박사 / 인재개발 전문가

현, 코리나교연 대표

서울대학교 졸업, 중국 푸단대학 석,박사 (응용언어학)

대우그룹 15년 근무, 홀로서기 20년


** 저 서 **

대학이 변하면 국민이 행복해진다 (2004)

바닥을 치고 일어서라 (2015)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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