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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사람 박코리 Nov 19. 2017

내성적인 사람

혼자여도, 여럿이어도 불편하다.

해바라기도 여릴 때가 있다.

해바라기 봉우리는 솜털 난 병아리 같다. 여리다.

해바라기는 언제나 큰 꽂일 줄만 알았다. 학교 가는 길에 피어있던 해바라기는 내 키보다 훨씬 커서 올려다 봐야만 했다. 꽃이 양손을 합친 것보다 더 컸다. 오늘 처음으로 덜 핀 해바라기 봉우리를 봤다. 솜털인지 가시 같은 걸로 잔뜩 덮인 초록 꽃받침 가운데에 샛노란 봉오리가 파묻혀있다. 운동회날마다 집에 데리고 가고 싶어서 앓았던 병아리를 닮았다. 옆에서 남편이 어울리는 꽃병이 없다면서 말렸지만, 기어이 한 묶음 사들고 집에 왔다. 세숫대야에라도 담가두면 어떤가. 구겨져 있지만, 매일 조금씩 피다가 결국엔 활짝 필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크고 질긴 줄만 알았던 해바라기도 여릴 때가 있다는 걸 몰랐다. 그 모습이 생소하지만 반갑다. 나만 여린 게 아니구나, 다들 이렇게 조금씩 크는 거구나 싶어서-



혼자여도, 여럿이어도 불편하다.

곧 추수감사절이다. 토요장에서 터키를 구울 때 쓸 허브들을 사왔다.

내성적이다. 혼자서도 잘 노는 방법들을 안다. 덜 핀 해바라기 봉오리나 시장서 사온 허브 같은 걸로도 즐겁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책을 읽을 때면, 누구와도 만날 수 있고 어디에나 갈 수 있었다. 책 밖에선 낯가림이 심한 조용한 아이였다. 초등학생 때였나, 선생님이 발표를 시키면, 대답을 안 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답을 말하면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데도 수업이 끝날 때까지 버티고 서있었다. 답도 알았던 것 같은데 그 한 마디가 입에서 안 떨어졌다. 아빠가 억지로 보낸 웅변학원은 한 달 다니다 말았다. 웅변대회를 나갔을 때의 사진을 보면, 작은 여자아이가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선 고개를 한쪽으로 떨구고 있다. 많이 불편했구나, 싶어서 안쓰럽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노력을 해서 활발하게 지냈다. 대외 활동을 하고 교환학생도 다녀오면서 내가 외향적인 사람인 알았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미국에 왔다. 잠깐 놀러 온 게 아니고 살러 왔더니 내향성이 극점을 찍었다. 혼자서 잘 놀다가도 얼마 지나면 외로워진다. 가만히 있자니 외롭고, 나가서 친구를 만나자니 불편하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이 영 버겁다.  서울에서야 마음을 푹 놓고 떠들 친구들이 있지만, 여기선 다 낯선 사람들이니깐 어려웠다. 영어로 대화가 된다 쳐도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나오질 않으니 입이 더 안 떨어졌다. 사람을 사귀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낯을 가려도 너무 가리는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다. 남편의 친구들을 만나거나 부부 모임에 나가면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행복하긴 그른 걸까?

혼자여도 외롭고, 여럿이 있는 것도 불편하면 어쩌자는 건가. 행복하긴 그른건가? 어쩌면 행복은 늘 흔들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같이 잘 놀다가도 혼자서 휑 하니 나가버리는 변덕쟁이 고양이 같다. 통장에 찍힌 잔고나 바라던 만큼 오른 연봉 같은 걸로도 잡히지 않는다. 잠깐 우울하거나 슬프더라도 절망하지 않는 게 관건이다. 불쑥 시작된 우울이 그렇듯 금세 기쁜 순간도 다시 찾아온다는 걸 기억하기로 했다.


 

불편하긴 해도 좋아해요, 당신들을-

LA에 살면서 가장 좋아하던 일과, 토요장 가기- 토론토에서는 어디로 장을 보러 다니려나?

어른의 우정은 어린이의 우정과는 다르다.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서도 금방 흙을 묻히며 소꿉놀이를 하던 어린이의 우정은 더 이상 없다. LA에서 만난 사람들과 지내는 게 불편하다고 해서 그들을 좋아하지 않은 건 아니다. 더디고 느려서 잘 몰랐지만, 천천히 내 마음을 열고 있었다. 나만 불편한 줄 알았지만, 불편해하는 나를 대하는 상대도 내가 조심스러웠을 거다.


요즘은 하루 걸러 사람들을 만난다. 불편한 마음보다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남편의 학교 선배 부부, 처음 LA에 왔을 때 일부러 모여서 환영해준 동생의 친구들, 교회 모임 등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못 알아듣는 말들 모른 척 지나쳤었는데 이제는 몇 번이고 다시 물어본다. 늘 듣기만 했었는데 내 이야기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혼자가 된다.

캐나다는 처음이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온타리오주에서 평생을 산 작가의 단편집을 읽기 시작했다.

2주 뒤면 가족도, 선배도 없는 곳, 토론토로 간다. 아무도 없지만, 그곳에 적응하는 건 LA에서보다 쉬울 것 같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똑같이 낯설고 힘들겠지만, 그 시간들이 지나간다는 걸 아니깐 이번엔 더 나을 거다. 한 번 해봤으니깐. 내가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무지 더딘 사람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으니깐.


이사는 번거롭다. 바쁘고 정신없지만, 짬짬이 토론토를 알아가고 있다. 하루는 토론토대학교의 토론토 분석 리포트를 읽다가, 다른 날은 토론토가 있는 온타리오주에서 평생을 산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는다. 영어로 된 문장들이 주는 이물감이 불편하지만, 느리게라도 낯선 그 곳, 토론토를 알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인스타그램에서 #토론토, #torontolife, #torontoeats 같은 해쉬태그들을 검색해보기도 한다.


LA에는 차가 없음 꼼짝을 못 하지만, 토론토는 서울처럼 걷기 좋은 도시다. 대중교통도 잘 되어 있다. 날씨가 허락하는 한 도시 구석구석을 걸어 다닐 거다. 내 방식대로 읽고, 걸으면서 찬찬히 알아갈 거다. 그러다 좋은 사람들도 만나게 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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