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를 깨운 건 무료함과 추위였다. 시골에서 보낸 세 번의 겨울,해마다 할 일이 줄고 게으름이 진득해졌다. 겨우내 웅크린 다리는 가늘어졌고, 등과 어깨는 더 시렸으며, 난방비는 물 새듯 빠져나갔고, 마침내 그 틈으로요정이 소환됐다.코로나19로 막혔던 '따뜻한 겨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요?" 요정이 물었다. "내 말이. 기후와 비용, 치안과 거리를 감안해서 알려줘." 어쩌면 해마다 겨울을 보낼지도 모를 따뜻한 곳, 따로 여행 적금을 들지 않아도 되는 곳, 위험하지 않고 너무 멀지 않은 곳. 그러니까 현실적이면서도 낙천적인 변화가 기대되는곳을 찾았다. 램프의 지니가 말했다. "주인님, 다낭입니다."
여름부터 ‘따뜻한 크리스마스’ 점등식이 있었다. 은퇴자의 '백수 프리미엄'으로 평일의 저렴한 항공권을 예매하고, 인터넷(evisa.xuatnhapcanh.gov.vn)으로 장기체류를 위한 e-비자를 발급받았다. 처음 가는 곳이니 만큼 <다낭 셀프트래블(2023~2024), 김정숙> 같은 여행 서적도 탐독하고,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최신 정보를 두루 뒤졌다.
조금씩 다낭 지역의 기후와 지리, 문화에 대한 기본 상식과 여행 정보가 쌓이면서 예상치 못한 우려도 생겼다. 예를 들면 12월, 1월은 우기라든지, 음력설 기간엔 교통편이 여의치 않을 거란 얘기들 말이다. 게다가 나보다 훨씬 젊은이들 위주의 단기 여행정보가 대부분이어서 우리 여행에 맞게 마름질해야 했다.
무릇 여행자는 행진하는 병사와 같아서 어딘가를 향한 모습이 연상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는 허송세월, 유명 맛집이나 관광지 사진을 SNS에 올려야 그 여행이 인증되는 것 같다. 두 달, 시간만 길었지 나도 매일 노병의 하루를 이어갈 것 같다. 초행길부터 개척자나 현지인을 꿈꾼다면 언감생심이다.
우선 잘 먹고 잘 자야 한다. 그에 맞는 숙소를 찾아 아고다와 에어비앤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너무 많은 정보 때문에, 나중엔 평점 속에 숨겨진 진의를 파악하느라 혼란스러웠다. 신중을 기했지만, 실수란 것이 클릭하기 전엔 드러나질 않으니, 그렇게 취소와 예약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야 일정표가 완성됐다.
다낭과 호이안, 후예에 두루 거처를 정했다. 같은 지역이라도 편의시설에 강점을 가진 곳, 한적함을 누릴 수 있는 곳, 지리적 특색을 뽐내는 곳으로 나뉜다. 주로 원룸형 숙박시설 중에서 신축 건물, 리뷰가 좋은 곳을 골랐는데 가성비의 확인은 현장에서만 가능하니행운이 꽃잎처럼 겹치길 바랄 뿐이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정교한 일정이 즐거움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의외성이 여행의 묘미라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여행은 어떤 시간을 상상하며 계획 짜기에 몰입하던 밤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계획과 현실이 만날 순간이 가깝다. 여름부터 문질러댄 램프가 들썩인다. "지니야, 낯선 여행이지만 좀 더 건강해져 돌아오면 좋겠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