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가이버를 아시나요?

Handy man, James Taylor

by 잼스

맥가이버를 아시나요

며칠 동안 도시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오후 네시. 잔디 위에 낙엽이 뒹굴고, 전지 후에 미처 치우지 못한 소나무 가지가 측은하다. 현관문을 열자 텁텁한 공기가 느껴진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가져온 물건을 정리한다. 우선 김치와 무생채, 마트에 들러 사온 달걀 등을 냉장고에 넣고, 도시로 가기 전 쟁여둔 빨래를 세탁기에 돌린다. 건조한 실내 습도를 맞추기엔 빨래가 그만이다. 책과 겨울옷을 제자리에 정리한 후 청소기를 들고 거실을 청소한다. 안방은 로봇에게 맡긴다. 무와 배추에 물을 주고, 퇴비장의 퇴비를 한번 뒤집어 준다. 이제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튼다. 그새 어두워지고 마당에 정원등이 하나둘 노랗다.


If your broken heart should need repair

Then I'm the man to see

1977년에 James Taylor가 리메이크한 'Handy Man'은 능글맞은 사랑의 수선공이지만 정원 생활자의 현실이 로맨틱하지만은 않다.


집이 나를 부른다. 벽돌집이지만 지은 지 30년이 다되어가니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곤 한다. 발생 초기에 조치를 해야 하지만 저 노랫말처럼 발견하는 것도 능력이다. 80년대 국내에 방영된 미국 드라마 중에 '맥가이버'가 있었다. 첩보원 맥가이버가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이용하거나 결합하는 등 임기응변으로 척척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기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 입어 주인공의 이름이 만능 해결사 특히 도구를 잘 다루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시골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맥가이버다. 남의 손을 빌리는 일이 드물다. 특히 이장을 하려면 목공, 미장, 페인트, 방수 등은 기본이고 전기, 수도에 용접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어야 한다.


초창기 뒤뜰에 커다란 정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와보니 납작하게 쓰러져 있었다. 담장 너머 이웃집으로 무너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잘 살펴보니 기둥 밑을 개미들이 쏠아 썩어 있었다. 그 자그마한 개미의 생활력이 이쯤 되면 폭력으로 느껴진다. 쓰러진 정자를 분리해 재처리하는데만 1년이 걸렸다. 널빤지는 창고 선반과 퇴비장 설치에 활용하고, 텃밭 틀도 세 개 만들었다. 지붕 일부는 수돗가 퍼걸러에 얹어 비가림으로 썼고, 통나무 기둥은 전기톱으로 잘라 여기저기 앉을 수 있게 그루터기처럼 놓아두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도 직접 해나가는 방법을 익혔다. 틈이 생기면 때워 주고, 물이 고이면 빨리 뚫어 주고, 갈라지면 미리미리 덧발라 주었다. 옥상에 방수액을 바르고, 갈라진 벽과 기둥에 실리콘과 시멘트를 바르고, 바랜 벽에 페인트칠, 깨진 바닥을 시멘트로 메꾸는 등 이젠 집이 부르기 전에 알아보기도 한다. 잔디 깎기 날과 체인톱날도 줄칼로 갈아서 쓴다. 이제 수도꼭지나 호미, 삽자루 교체하는 정도는 일도 아니다.


사서 고생도 했다. 퍼걸러, 울타리, 수돗가 비가림, 플랜트박스 여섯 개. 모두 방부목으로 직접 만든 것들이다. 퍼걸러와 비가림은 시내 철물점에서 빌린 해머드릴로 시멘트 바닥에 구멍을 뚫고, 각재용 FBP55 철물을 앙카볼트로 고정시킨 다음, 각도절단기로 자른 기둥용 목재를 세워 육각 머리 피스로 고정하고, 지붕엔 2by4 방부목을 얹어 피스나 브래킷으로 고정한 후, 래티스로 덮어 후일 덩굴식물이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


울타리도 비슷한 방법으로 설치했다. 또 플랜트박스엔 바퀴를 달아 맘에 드는 곳으로 옮길 수 있게 했다. 어떤가? 어딘지 우쭐해하는 듯한 말투가 느껴지지 않는가? 사실을 밝히자면 아들이 많이 도와줬다. 그렇다 해도 이곳에 오기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다.


생전 처음 해본 일이라 투박하지만 완성되자 자신감이 부쩍 커졌다


맥가이버 라이프 스타일에는 재활용도 큰 몫을 차지한다. 퍼걸러 등을 만들고 남은 자재는 주방에서 뒤뜰로 나가는 계단과 이동식 공구 보관통을 만들고, 잔디밭 경계목 등으로 쓰고 있다. 주로 수선해서 쓰거나 보수해서 수명을 늘리는 작업이 많지만, 때로는 모두 해체하여 새로운 물건으로 만들기도 한다. 쓰고 남은 것을 용도 변경하여 쓸모 있는 다른 물건으로 탈바꿈시키는 것.


빈 페트병을 예로 들어 본다. 액비 제조와 보관통으로, 막걸리 등을 넣고 창을 뚫어 해충 트랩으로, 크레졸 비누액을 담아 고라니 퇴치용으로, 뚜껑에 구멍을 뚫고 뒤집어 꽂아 관수용으로, 물을 계량할 때도 쓴다. 그 밖에도 버려진 드럼통으로 야외 소각로를 만들고, 망가진 파이프로 포도덩굴 지지대와 플랜트박스 덮개를, 플라스틱 우유병으로 흙삽을 만들어 쓰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을 겪으면서 자연친화적인 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 물건을 새로 사는 것을 줄이고 주변의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하는 것. 이미 시골에 계신 우리 이웃 분들이 실천하고 계셨다. 직접 수선하고 재활용 물품을 만드는 이러한 궁리들이 사람의 뇌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경제적인 도움도 되는 것은 덤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오늘 저녁은 나주식 곰탕이다. 파만 넉넉히 추가하면 된다. 밥도 안쳐야 한다. 역시 해봐야 그분(아내)의 노고를 알게 된다. 조금 전에는 세탁기에 식초 한 컵을 넣고 헹굼 버튼을 눌러놓았다. 세탁물 천에 남은 세제를 중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맥가이버도 이 정도까지는 못했겠지. 요즘 K 문화가 대세다. K-가이버라고나 할까? 지금 K-가이버는 빨래를 널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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