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만드는 가미 레시피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빈 두 손 느린 걸음에
마음은 느슨해져만 가네~~ ♬♪
일렉트로니카 그룹인 캐스커(Casker)의 보컬 <융진>이 부른 <걷는 마음>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엔딩곡이다. 영화 포스터에는 쉼, 시도, 선택이라는 단어가 계절별로 들어가 있다. 여름 포스터에는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라고 적혀 있다. 아름다운 사계절 배경과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도 좋았지만 꽃 튀김, 배추전, 수제비, 콩국수 등 소박한 음식을 만들고 먹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인 영화였다. 얻어먹고 싶을 만큼.
주말에 가족과 함께 올 때도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서 혼밥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매 끼니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처음엔 아내에게 전화해 묻는 일이 잦았지만 이젠 거의 그럴 일이 없다. 오히려 같이 내려올 때면 내가 차려 주고 입맛에 맞는지 안색을 살핀다. "내가 차리지 않는 밥은 다 맛있어."
"또 싸웠어." 윗집 사장님의 푸념이다. "내려와서 밥 좀 해주라는데 싫다네..." 아내와 같이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 맘인걸 알지만 밥에 대한 것도 진심이다. "혼자 차려먹는 것이 텃밭농사보다 어렵다고요?" 혼밥은 자급보다 자족에 대한 얘기다. 주말 밥상 정도는 직접/ 즐거운 마음으로/ 뚝딱/ 혼자/ 차려서/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혼밥은 혼자 먹는 밥이자 혼자 차려 먹는 밥이다.
요즘은 간편식이 마트에 즐비하다. 1인 가구나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허술한 한 끼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정성을 좀 넣어주면 된다. 냉장고에 간 마늘 얼린 것, 씻지 않은 대파(뿌리 부분은 잘라 화분에 심어 키워 먹는다), 양파, 햄과 계란, 치즈, 버터 등의 식재료를 준비해 둔다. 각종 통조림과 참깨, 소금, 후추, 간장, 고추장과 쌈장, 고추냉이 등 각종 양념류와 장류도 챙겨야 한다. 사실 나는 요리를 할 줄 모른다. 가미할 뿐이다.
간편식 중에 부대찌개, 김치찌개를 추천한다. 간 마늘과 얇게 썬 햄 그리고 대파를 넉넉하게 추가해서 끓이면 2인분(봉지엔 애매하게 1~2인분으로 표기되어 있다)이 된다. 버섯이나 두부는 취향에 따라. 바글바글 끓으면 슬라이스 치즈를 한 장 얹는다. 덜어서 한 끼 먹고 한소끔 더 푹 끓여 다음 끼니에 먹는다.
간편식 우거지탕이나 설렁탕, 도가니탕 등은 흰 대파를 숭덩숭덩 큼직하게 잘라 추가하면 된다. 파국이라고 생각될 만큼 넉넉히 넣는다. 후추 뿌린 국물에 밥을 말아 잘 익은 김치를 얹어 먹거나 김치 국물을 부어(우거지탕은 제외) 새콤 칼칼하게 먹는다.
3분 간짜장은 참 간편하고 맛도 있다. 입맛이 없거나 음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을 때 따끈한 밥에 얹어 2분 정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뚝딱 한 끼를 마련할 수 있다. 계란 프라이를 튀기듯 익혀 얹어 먹으면 맛도 영양도 모두 챙길 수 있다. 3분 사천짜장은 좀 매콤하니 참고하길...
① 혼밥엔 혼술. 혼술엔 지역 막걸리 ② 마트 피자 너무 짜 ③ 생존 키트
화목난로가 있다면 군고구마를 빼놓을 수 없다. 흙 묻은 채 보관해 둔 것을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제거한 후 포일에 싸서 직접 불에 닿지 않도록 구워야 타지 않는다. 맛도 좋지만 익어가는 내내 입안에 군침 돌게 하는 노오란 냄새. 젓가락으로 찔러보아 쑤욱 들어가면 잘 익은 것이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가끔 귤을 구워 먹기도 한다.
여름엔 국수다. 마트에서 파는 500ml 콩국수 국물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네댓 번 먹을 수 있다. 국수를 삶는 방법. 끓어오르면 찬물을 조금 부어 가라앉히기를 3번 정도 하면 면이 찰져진다. 꺼내서 찬물에 북북 씻어 사리를 만든 후 콩국물을 적당히 붓고 채 썬 오이와 참깨를 갈아 넣으면 시원하고 고소한 냉콩국수를 먹을 수 있다. 취향에 따라 동치미 냉면 육수에 말아먹어도 좋다.
비빔국수 양념장 만들기. 고추장, 식초, 설탕, 매실청(없으면 사이다) 각 2숟가락, 다진 마늘과 진간장 0.5숟가락을 넣고 휘휘 젓는다. 국수에 떠 넣고 오이와 상추를 채 썰어 얹으면 끝. 채를 넉넉히 썰어 드레싱을 뿌리면 디저트 샐러드를 만들어 입 안을 개운하게 정리한다. 양념장은 군만두와도 잘 어울린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냉동만두를 튀기듯 굽는데 팬이 뜨거울 때 물을 조금 넣고 뚜껑을 덮어주면 바닥은 바삭하고 위는 촉촉하게 구워진다. 요란한 소리에 주의.
간편식으로 라면 만한 게 또 있을까? 라면이 끓으면 미리 풀어놓은 달걀을 붓고 깻잎을 몇 장 잘라 넣거나 슬라이스 치즈를 얹어 녹이면 풍미가 진해진다. 칼국수도 있다. 1인분씩 2개가 들어있고 설명서대로 물이 끓으면 면과 프레이크와 액상스프를 넣으면 끝. 정성이 빠졌다. 썰기 쉬운 양파와 대파 흰 부분 또는 버섯 등을 넣고 마지막에 후추를 뿌리면 젓가락질 바빠지는 칼국수 완성.
무, 당근, 버섯이 들어간 곤드레 나물밥은 아예 조리과정이 없다. 깨끗이 씻은 1~2인분의 건나물을 밥을 안칠 때 얹기만 하면 된다. 보약이 따로 없을 만큼 좋은 건나물. 버터 위에 나물밥을 얹어 녹인 후 간장, 깨소금을 뿌려 먹거나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는다.
식은 밥이 생기면 달걀에 밥을 말아 볶음밥을 해 먹는다. 센 불에 기름을 두르고 잘게 썬 파를 볶다가 말아놓은 달걀밥을 넣고 밥알이 따로 놀 때까지 계속 주걱으로 저어준다. 중간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꺼내기 전에 참기름을 반 스푼 정도 넣어주면 중화요릿집 볶음밥이 딱!
혼자 구워 먹는 고기는 어떨까? 계란을 서너 개 풀어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육전용 홍두깨살을 적셔 프라이팬에 굽는다. 준비도 간단하고 같이 구운 파를 말아서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기름지지 않아 담백해서 와인이나 막걸리를 곁들이기도 좋다.
설거지는 혼밥의 완성이다. 아니 음식물 쓰레기 처리까지. 가급적 설거지거리를 줄이자. 밥도, 반찬도 먹을 만큼만 만들고 그릇에 담아, 남기지 않는다. 과일 깎은 칼, 쟁반, 커피잔, 밥솥 등 기름이 묻지 않은 것들은 사용하고 난 후 바로 씻어 말린다. 이렇게 하면 설거지통이 빨리 채워지지 않을뿐더러 음식물쓰레기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티백, 과일과 달걀 껍데기, 개수대에서 물 뺀 음식물 찌꺼기는 모아서 퇴비장에 투척. 일정 기간 동안 풀, 재, 낙엽 등과 함께 부숙 되어 훌륭한 거름으로 돌아올 것이다. 설거지를 끝내고 물을 탈탈 턴 뒤 행주에 손을 닦고, 걷었던 소매를 툭툭 내릴 때 홀가분함이란. 이제 커피 향기를 맡을 시간이다.
추기 : 지인들이 놀러 오면 밖에 나가 불을 피우는 것이 간편하다. 미리 마트에 들러 소시지, 버섯, 대파 등과 본인들이 원하는 고기를 사 오도록 권한다. 고기를 굽는 것도 손님들에게 맡기자. 평소에 못해 본 일이라 기꺼이 집게를 잡는다. 철망을 A자로 구부리면 기름이 떨어져도 고기가 타거나 그을음이 붙지 않는다. 쌈채소가 텃밭에서 자라는 계절이 최적기다. 불이 사그라들면 고등어구이를 하는데 약한 숯불에 천천히 구워 마이야르 반응의 끝판왕을 맛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