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pping through my fingers, ABBA
꾸기 쉬운 정원 2
I try to capture every minute
The feeling in it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난 모든 순간을 잡으려고 노력해요
그 순간 속의 느낌도
(하지만) 항상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요
<Slipping through my fingers>는 1981년에 발표한 스웨덴 혼성 그룹 ABBA의 노래다. 영화 <Mamma Mia!>에서 <Meryl Streep>이 결혼을 앞둔 딸 뒤에 앉아 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부르는 모습은 많은 이들 특히 부모들에게 공감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어디 모성애뿐이겠는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의 이별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아쉽게 느껴지곤 한다.
‘방아쇠 수지 증후군’은 손가락 힘줄에 염증이 생겨, 손가락을 펼 때 ‘딸깍’ 하는 느낌과 통증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작년 말부터 조짐이 이상하더니 어느 날부턴가 아침에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 증세가 나타났다. 일머리도 없고 처음 사용하는 장비도 많다 보니 손가락에 무리가 온 것이다. 참다가 결국 병원에 갔다. “재발률도 높고 주삿바늘이 굵고 아픕니다.” 심각한 상태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후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손가락의 상태가 완전치 않다.
가장 치명적 원인은 가지치기였다. 전지가위와 톱으로 많은 가지를 잘라내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 것이다. 한동안은 정원 생활자의 훈장처럼 생각했는데 내가 얼마나 미련했는지 깨우쳐 준 것이 충전 전동가위였다. 이것은 신세계였다. 버튼만 누르면 나뭇가지가 숭덩 잘리는 이 기계의 손쉬움은 사용해 본 분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좀 더 오래 그리고 쉽게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 돈이 좀 들더라도 꼭 구비해야 하는 장비들이 있다.
전원생활에 어떤 공구와 자재들이 필요할까? 처음엔 사용법도, 용어도 너무 생소해서 유튜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장비와 관련해선 그분들의 도움 영상에 감사드린다. 그래도 손쉽게 꺼내 볼 수 있는 사용설명서는 반드시 필요하므로 잘 챙겨두어야 한다. 그럭저럭 선무당처럼 구입한 각종 장비가 이젠 꽤 많다. 기본공구 및 부자재, 농기구, 농자재, 각종 수선 도구 등 창고 하나가 부족할 정도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우리 집 창고를 열어 보여드린다.
1. 원예용 : 잔디 깎기, 예초기, 릴 호스, 스프링클러, 분사기, 분무기, 삽, 호미, 모종삽, 갈퀴, 레기, 호퍼, 가위
2. 보수용 : 임팩 드릴, 전동드라이버, 톱, 망치, 펜치, 니퍼
3. 대형 공구 : 컴프레셔&타카, 절단 각도기, 엔진식 송풍기, 체인톱, 전기 연장선
4. 부자재 : 목재류, 못, 바퀴, 휘발유, 엔진오일, 몰탈, 페인트, 실리콘, 우레탄폼
5. 농자재 : 농약, 비료, 퇴비, 상토, 마사토, 부직포, 멀칭비닐(핀), 지줏대, 오이망(집게)
6. 다용도 : 손수레, 카트, 5단 사다리, 줄자, 넉가래, 코팅장갑, 녹방지 윤활제
1. 원예용 작업도구
* 자주식 잔디 깎기는 고장이 잦아 처박아 두고, 수동식을 날 갈아가며 쓰고 있다.
* 예초기는 충전식과 엔진식을 번갈아 쓰고 있는데 마당이 넓지 않으면 충전식으로 족하고 또 간편하다.
* 릴 호스는 마당 곳곳에서 물을 쓰기 위해 필요하다.
* 나비형 스프링클러가 무난하다. 마당이 넓은 집은 여러 개를 호스에 연결해서 동시에 쓸 수 있다.
* 분사기는 워터건 방식, 분사대가 긴 것, 고압세척 분사기 모두 세 가지를 쓰고 있다.
* 분무기는 10평 텃밭에 2리터 용량의 소형 압축 분무기면 충분하다. 등에 메는 20리터 배부식 분무기는 잔디나 나무에 약 칠 때 쓴다. 노즐대는 긴 것을 추천.
* 삽은 철로 된 것이 좋다. 나무 재질 삽자루는 잘 부러진다. 가격 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다.
* 호미와 모종삽은 폭이 좁은 것과 넓은 것 모두 쓸모가 있다.
* 갈퀴는 낙엽이나 풀을 긁어모을 때 필요하다.
* 호퍼는 고랑을 팔 때, 레기는 솟아오른 이랑을 고르게 펼 때 쓴다. 명칭이 확실치는 않다.
* 가위는 한 손 다용도 가위, 양손 전지가위, 고지 가위, 절단 가위와 충전 전동가위 모두 필요하다. 사용 빈도가 많지 않다면 저가의 중국 제품도 무난하다. 고지 가위는 높은 가지를 절단하거나 감 딸 때, 절단 가위는 다소 굵은 가지와 나무뿌리를 자르는 용도로 쓰게 된다.
살던 집을 인수하면 전 주인이 농기구를 대부분 놓고 간다. 잘 챙겨두면 소소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
2. 보수용 공구
* 임팩 드릴과 전동드라이버는 번갈아 쓰기 때문에 세트로 필요하다.
* 톱은 일반 톱과 고지톱, 충전 톱을 모두 구비하고 있다. 역시 충전 톱이 성능과 편리함에서 월등하다.
3. 대형 공구
* 컴프레셔, 타카와 절단 각도기는 마당에 퍼걸러와 울타리 설치를 하고자 큰맘 먹고 구입한 것이다.
* 엔진식 송풍기는 낙엽과 눈을 치우기 위해 구입한 것인데 가장 사용 빈도가 낮다.
* 체인톱은 충전 톱으로 자르기 어려운 지름 15cm 이상의 통나무 절단에 쓰고 있다.
* 전기 연장선은 전기를 마당으로 끌어와 작업할 때 요긴하다.
그 밖의 부자재, 농자재, 다용도 기구들은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거나 다른 글에서 용도를 설명하고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아울러 각종 자재, 특히 농자재를 구입할 때는 꼭 리스트가 나오는 영수증을 챙겨두자. 언제 얼마만큼 샀는지 알 수 있어 기간에 따른 사용량을 계산할 수 있고, 가격 변동도 확인할 수 있다.
장비를 구입할 때는 사용 빈도와 작업 면적 등을 잘 따져보아야 한다. 자주 쓰지 않을 것을 비싼 가격에 사서 보관만 할 필요는 없다. 내 경우엔 대표적인 것이 엔진식 송풍기다. 엔진식은 휘발유와 엔진오일을 섞어 연료로 쓴다. 이 송풍기는 소리도 요란하고 배기량도 너무 커서 공원관리에나 적합한 것을 잘 모르고 샀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는 우선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요모조모 따져 보기 바란다.
주변에 대형 농자재마트도 가보고, 이웃의 의견도 구하는 것이 좋다. 올 초에 방부목을 대량 구입했다. 가격은 수도권이 싸지만 운임 때문에 큰 차이가 없어 시내 건재상에서 구입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은 선택인 듯했는데 이웃 분이 어느 날 지나다가 보시고 “ㅇㅇ에서 샀지? 거기가 잘해주는데... ” 하시는 거다. 나중에 부족한 목재를 그 ㅇㅇ에서 구입했는데 저렴한 데다 품질도 더 좋았다. 손해 봤다 할 순 없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장비만큼 중요한 것이 정리다.
정리를 잘하면 동선이 줄어든다. 잘 정돈되어 있어야 찾기도 쉽고 일의 능률도 오른다. 그런 면에서 창고는 전원생활에 꼭 필요한 공간이다. 쓰이는 장소와 가까운 곳에 도구와 비품들을 비치하고, 자주 사용하는 것은 별도로 현관 가까이 두면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어 편하다. 농약류는 별도로 응달에 보관해야 하고, 폐품도 버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장 쓸모는 없지만 나중에 활용할 일이 생기기도 하고 다른 용도로 쓰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농촌에서 농기계를 이용해 농사짓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인력 손실을 그렇게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농업인만이 아니라 은퇴 정원 생활자에게 장비 사용법의 조기 습득은 현실적 선택일 수 있다. 기계를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체력 소모를 줄이고 일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 정원관리가 좀 더 쉬워지고 풀, 꽃, 나무들과 즐겁게 대화할 시간이 더 늘지 않을까? 몸이 편해야 정원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