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 부르며 초면에 어깨를 두드리던 까오러우집 애기엄마, 논 뷰 비스트로를 운영하는 야리야리한 체구와 목소리의 주인, 수줍게 알밤을 맛보라고 권하던, 그러느라 파르페 값을 빠뜨리고 계산해 버린 갤러리 카페 직원, 요 며칠 들렀던 가게에서 기억에 남는 얼굴들이다.
호이안에 온 지도 2주째, 아직 일주일 더 남았다. 설에도 머물 이곳에 단골집 몇 있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은데, 그동안 맛에 담긴 나만의 추억이 있나 돌이켜보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먹지 않고선 하루가 완성되지 않지만 무얼 먹을까? 어떤 걸 먹고 싶은가? 하면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다. 그래서 곤란한 우선권을 아내에게 넘기기 일쑤다.
그러니까 난 특별한 미각을 갖지 못했다. 때맞춰 허기를 빠르게 채우는 '일'을 끼니마다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음식이 빨리 나오는 데는 조금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알맞게 익는 시간 말이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많은 생각을 하고 정성과 기술을 쏟겠지만 먹는 사람에겐 테이블 위가 전부다.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맛과 향과 식감만을 따지기 마련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은 음식을 서로 다른 음식점에서 맛보는 것이지만, 이 또한 타지에서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우린 주로 세평에 의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올드타운엔 주로 뜨내기손님들이고 규모도 커서 마음까지 나누긴 어렵다. 맛도 일정하지 않아 두 번째 방문엔 이상하리만치 처음보다 만족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두리 작은 식당을 찾으면서, 주문한 뒤 들리는 주방 기름 튀는 소리에 왜 안심이 되는지, 어째서 음식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김이 집집마다 다르게 느껴지는지, 주인이 직접 발라주는 생선과 부스러뜨려 얹어주는 토핑이 왜 더 맛난지 알게 됐다. 그렇게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단골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긴 거다.
때론 맛보다 멋에 더 관심이 가는 곳도 있다. 특히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재능과 정성이 각별한 것 같다.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세련된 감각과 능력은, 새로운 시선과 상상력을 넘어 제약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지금은 일상용품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파운드 오브제 아트(Found Object Art)가 하나의 예술 형식이 되었지만, 훗날 이들이 돌 속에 숨은 영혼을 이리 쉽게 꺼낼 수 있으리라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상상이나 했을까? 폐기되거나 의미 없는 물건들 속에 숨겨진 매력을 발견하는 기쁨을, 예술과 일상이 별개가 아님을 이들에게서 배운다.
어쩌면 여행이란 것도 그냥 봐서는 눈치채기 어려운 공감과 차이를 느끼고, 남들과 다른 면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일이 아닐까? 마지막 한 방울 그 끝까지 맛있는 커피는 누가 만드는가? 오늘도 난 호이안 한 구석 단골이 되고 싶은 가게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