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의 사랑보다는

Il Libro Dell'Amore, 2 cellos

by 잼스

A volte un po' banale sto

A volte E solo stupida

E ma Mi piace quando la canti tu

E tu di piu

Tu puoi cantarmi il cielo al blu


가끔씩은 조금 지루하고

가끔은 말도 안 되게 쓸데없기도 해

하지만 난 네가 책의 악보를 노래해 줄 때가 좋아

난 그때의 네가 더 좋아

나에게 파란 하늘(별거 아닌)에 대해서 노래해 줘도 괜찮아

번역 출처 (준킴로그) https://blog.naver.com/zunnkim/222719975087


크로아티아 2인 첼로 그룹 <2 cellos>의 연주와 이탈리아 가수 <Zucchero>의 풍부한 허스키 보이스가 어우러지는 <Il Libro Dell'Amore>. 원곡은 1999년에 발표된 미국의 인디 팝 그룹 <The Magnetic Fields>의 <The Book of Love>이다. 2017년 JTBC의 ‘팬텀 싱어’라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리메이크하여 많은 이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이제 열 번째 이유가 남았다. 왜 5도 2촌 정원 생활이 어렵게 느껴지는지, 얘기하지 않은 이유. 이제까지 나열한 아홉 가지는 인프라, 치안, 집 관리와 이웃 관계 등 외부적 요인이었다. 외적 요인은 일반적이지 않다. 사는 곳마다 다르니까. 열 번째는 내적 요인이고 보편적인 이유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자주 가 볼 수 있느냐 ’ 하는 것이다.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는지, 그럴 여건이 되는지. 그것이 어렵다면 책 속의 사랑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내 첫사랑도 그런 이유로 접었다. 짐짓 사랑하는 척 떠들기는 했다. 한여름에 풀이 자라 마당을 뒤덮고 지붕이 새서 집안에 곰팡이가 피어도 가보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할 수 없는 걸 알았지만 세를 주어 나 대신 집과 마당을 돌볼 수 있도록 허락하지도 않았다. 빈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올 수 있는가 여부는 5도 2촌 생활자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5도 2촌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2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도시에서의 5일은 시골에서의 2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약속과 만남, 다음 주에 대한 준비 등 해야 할 일도 많고 지난 한 주의 피로도 몰려온다. 주말농장처럼 텃밭만 잠깐 돌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집안팎 관리를 비롯해서 신경 쓸 일이 많으니 부담스럽다. 그래서 몇 번 거르면 정원과 집의 모든 것들이 자신부터 돌봐 달라고 아우성이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시간도 부족한 데다가 일이 끝도 없으니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외면하고 싶다. 말도 행동도 할 수 없는 정원과 집은 그저 온몸으로 표현한다. 꼬부라지고, 뒤틀리고, 터지고, 갈라지면서. 끝내는 서로 담을 쌓는다.


우리 아랫집은 내가 왔을 때부터 비어 있었다. 길게 자란 풀로 온 마당이 덮여 금방 알아봤다. 나중에 들으니 팔려고 내놨다고 한다. 주인 부부가 한 두 달에 한 번씩 와서 자고 가긴 한다. 지난봄에 포클레인을 동원해 마당을 갈아엎었다. 나무도 몇 그루 베어 버렸다. 넓은 마당이 더 황량해 보였지만 건사할 수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싶기도 했다.


그 집 대문 옆 담장 아래 작은 돌 화단이 있다. 지면은 백리향이 깔려 있고 봄에 수선화와 할미꽃 몇 송이가 보이더니 금세 꽃잔디가 피어났다. 동백과 철쭉꽃 피고 여름엔 우단 동자와 끈끈이대나물이 피어나고 일본 조팝이 제법 품위 있는 반송과 어울렸다. 요즘은 자그마한 세열단풍 반대편에 메리골드가 한 무더기 피어 있다.


이제껏 그 부부가 마당에서 일하는 것을 본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마당 가득 웃자란 풀에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포클레인이 언제 다시 등장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화단은 저 혼자 건강하게 계절마다 꽃이 피고 지고 한다. 지난여름 독한 가뭄에 누가 물을 주지도 않았고, 폭우에 근심스러운 눈길도 주지 않았다. 문득 ‘아, 저거다’ 싶었다. 스스로 자라도록 만들어주면 되는구나.


20221123_154453.jpg 제 스스로 살아가는 화단

코디네이터라는 직책이 있다. 국어사전엔 ‘의상, 화장, 액세서리, 구두 따위를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갖추어 꾸미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으로 나오지만 영영사전에 나온 의미는 사뭇 다르다. ‘a who organizes

people or groups so that they work together properly and well’ 그러니까 국어사전은 직업으로 영영사전에선 역할로 코디네이터를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의 의미대로 정원 생활자를 정원의 코디네이터, 즉 정원의 식물들이 어울려 잘 살아가도록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 자로 정의하고 싶다.


오후 햇살이 버스정류장 너머 호수에 눈부시도록 가득 찼다. 무성했던 잎이 지고 난 뒤 가을이 주는 선물이다. 따스한 테라스에 앉아 게으른 기지개를 켜고 멍하니 바라본다. 말라붙은 단풍잎이 바스락이며 떨어지고 파란 하늘에 까마귀 몇 마리가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나는 주말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이곳에 왔다. 첫 실연의 아픔도 있고 해서 열심히 했지만 나라고 왜 힘든 날이 없었겠는가. 심지어 사다리에서 떨어지고 다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5도 2촌의 생활이 좋아서다. 좋으니까 알리고 싶다. 그래서 비슷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한 가족이 도시에서도 살고 시골에서도 사는 치우침 없는 생활. 그러면 좋지 않을까? 두 지역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조금 달리 살아보는 도전도 되고...


우선은 실행을 해야 한다. <Il Libro Dell'Amore>가 아니라 노래도, 사랑도 소리 내고, 구애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원을 가꾸는 것이 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려면 정원관리가 힘들지 않아야 한다. 사랑도 그렇듯 바라보고 미소 짓는 시간이 길어지면 행복한 것이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5도 2촌을 실행할 수 있다. 이제 아랫집 화단에서 꽃과 나무가 스스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했으니 그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전해야겠다.



이전 07화전원생활하지 말라는 당신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