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먼 나라, 거기서 또 멀리 와서 내가 보고 있는 건 무엇일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화려한 장식과 무너진 건물에 앵글을 들이대고 돌아서는데, 왜 이 유적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통역해설사를 낀 이방인들이며, 어떻게 전통의상을 입은 베트남 젊은이들에겐 포토존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나라에나 위대한 문화 및 건축 유산이 있고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궁금한 건 다른 나라의 역사도 요새화된 성채의 근원도 아니다. 화려한 건축양식 속에 녹아든 동서양의 조화도 아니고 유적을 보존하고 복원한 인간의 힘이나 안도감도 아니다.
파괴된 성벽과 탄흔에서 그들이 저지른 전쟁과 막아낸 전쟁은 어떻게 전달되고 있으며, 건축 자재의 변천과 화려한 장식을 뽐내는 전각(殿閣)에서 탐욕스러운 제국주의의 침략과 비굴한 야합, 백성의 고혈은 어떻게 통역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성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정직탕평'이 쓰인 의문(儀門, Nghi Mon)과 중도교에서 이어지는 태화전을 바라본다. 3단 중첩의 황금 기와지붕, 층과 층 사이에는 “일시일화(一詩一畫)” 방식의 장식품이 띠처럼 둘러져 있다. 왕좌가 놓인 저 안에도 좋은 문구와 시, 그림은 '장식'되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문 닫을 시간, 남쪽 정문 응오 몬(Ngo Mon, 午門) 위 누각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이 오봉루(五鳳樓)는 200년 넘은 석축 위에 세워진 2층 누각이다. 철목으로 만든 기둥이 총 100개인데 백성(百姓)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데 다섯 개 문 중에서 황제와 문무관 만을 위한 중앙 세 개의 통로는 여전히 닫혀있다. 가장 바깥쪽의 구부러진 통로, 호위병과 코끼리, 말이 사용하던 문으로 드나든다.
모두 둘러보기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마침내 궁 밖으로 나왔지만 다시 성문과 성곽에 둘러싸인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드나드는 바깥쪽 작은 성문을 걸어 나오며 밋밋한 벽돌을 만져 본다. 하나하나가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뎠다. 오래도록 살아남는다는 건, 생존이라는 건 생각만큼 거룩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성 안 일까 밖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