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스쿠터는 만만찮은 괴물이었다. 현지인들도 잘 건너지 못하는 도로를 가뿐히 건넌 쾌감, 그 쾌감이 가시기도 전에 등 뒤로 덮쳐온 역주행 스쿠터에 나도 모르게 빽 하고 화를 냈던 나. 골목에서 튀어나와 사람을 칠 뻔하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제 길을 가던 스쿠터, 같이 놀라 옆에서 손사래 친 씨클로 기사가 외려 고맙게 느껴졌고,
다소 난감했던 장면도 더러 있었다. 다리 위 저만치에서 갑자기 소변을 보고 가던 할머니, 여기저기서 등 돌린 채 두 손을 모으던 길거리 남자들,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했던 세 번의 정신질환자들, 공원과 유적지 곳곳에서 신 벗고 곤히 누워 자던 사람들, 살찐 쥐들의 도로 위 무단횡단까지.
소리도 기억을 부추긴다. 아침저녁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던 국영방송(?) 라디오 음향, 처음 들어본 도마뱀 울음소리(처음엔 새소리인 줄 알았다), 밤 두 시에도 지칠 줄 모르던 워킹 스트리트 술집들의 알코올 사운드, 멀리서도 이방인임을 어찌 알고 다가와 따발총처럼 쏟아내던 유람선과 시클로 호객꾼들의 목소리는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
사람과 장소는 더욱 또렷하다. 워킹 스트리트 펍마다 대형 모니터에 프리미어리그가 방영되고 있어 주 고객층을 짐작했던 일, 깃발 따라 줄줄이 유흥가를 배회하던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 배 안에서 술 먹고 춤추는 건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고, 팁도 안 주고 거스름돈도 따박따박 챙겨가는 손님을 누가 살갑게 대하겠는가마는 그럴만한 종업원을 만나지 못한 건 좀 아쉽다.
바가지요금을 부르며 '싫으면 말고' 식으로 외면하던 시장 과일 가게 주인들은 얄미웠지만, 스스럼없이 내게 "Where are you from?"하며 말 걸어오던 초등학생들, 전통복장 차림에 어쩌면 남들 시선을 바라며 사진 찍기를 즐기던 젊은이들, '못하이바, 요(Một Hai Ba, dỗ)'라며 건배를 외치는 현지인들의 떠들썩한 술자리, 진심으로 5성 리뷰를 올리게 해 준 홈스테이 가족분들, 그들과 나눈 수많은 미소와 인사는 흥겹고 고마운 기억으로 남았다.
같은 길이라도 어떤 방식과 경로로 걷느냐에 따라 늘 다르게 느껴졌던 흐엉강변, 작년에 이어 도합 네 번 만에야 느긋한 걸음으로 마주했던 복잡다기(複雜多岐)한 훼 성곽과 궁궐의 길, 어두운 밤 돌고 돌아 겨우 빠져나왔던 묘지 낀 달동네 골목길, 마침내 찾아내고야 만 방해물 없는 길, 새롭게 조성된 강변 데크길과 현지인들의 또 다른 워킹 스트리트는 내 등을 두드리며 '오길 잘했다' 말해 주는 듯했다.
훼에 머무는 동안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한 건 그럴 리 없으리라 생각했던 살구꽃의 노란 빛깔이었다. 두 달이 넘도록 신짜오(Xin chào)와 깜언(Cảm ơn)이 입에 붙지 않은 나를 일깨운 건 어느 외국인의 말투였고, 다행히 3주간 남은 여정이 날 기다리고 있다. 무언가를 얻고 가져갈 생각에 까맣게 잊고 지낸 것들은 없는지 되짚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