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네가 날 키운다고?

감나무 이야기

by 잼스

뒤뜰에 감나무 세 그루가 있다. 수령이 15~20년 정도 돼 보이는 대봉감나무 두 그루와 작은 키의 4~5년 된 듯한 단감나무 하나. 내가 직접 심은 것이 아니기에 크기만으로 수령을 추정할 뿐이다. 아쉽게도 단감은 열린 지 얼마 못 가 떨어져 버렸고, 대봉감은 제법 많이 열려 긴 고지 가위와 사다리를 이용해 수확했다. 실내에 두어 연시를 만들어 먹었는데 우리 식구가 먹기엔 넉넉한 양이었다.


이처럼 실내에서 후숙 한 것을 ‘연시’, 가지에 매달린 채 물렁하게 잘 익은 감을 ‘홍시’라고 한다는데, 사전도, 사람도 구분 없이 쓰이는 것 같다. 아내가 개발한 《연시 편하게 먹는 법》을 소개한다. 감꼭지 부분을 칼로 넓게 도려낸 후 숟가락으로 껍질 안쪽을 후비듯 살살 돌려가며 속살을 떼어내서 그릇에 담아 먹는다. 간편하고 온전하게 연시를 즐길 수 있어 좋다. 이렇게 연시 속살을 발라서 냉동한 후 때때로 꺼내 셔벗으로도 먹는데 식후 디저트로 그만이다.


내가 만든 곶감을 먹어 본다. “이 맛에 시골 생활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설화와 전래동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곶감이다. 단 맛의 음식이 지금처럼 흔치 않던 그 시절에는 감이 달콤한 맛의 대명사였다. 오죽하면 우는 아이도 곶감을 준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일까?


감 껍질을 벗겨 감 꼬지에 매달아 두었더니 거무스름하게 변해가고 하얗게 분도 생겼다. '이게 될까?' 했는데 된 것이다. 겉은 질끈 말랑하고 속은 촉촉 달콤하다. 반건시(半乾柿)와 건시(乾柿)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직접 곶감을 만든 자만이 느껴볼 수 있는 맛이다. 감말랭이도 시도해보긴 했다. 미리 떨어지거나 따는 과정에서 깨진 감을 껍질 벗겨 썰어 말렸는데 너무 얇아서 채반에 눌어붙는 바람에 제대로 맛을 보지 못했다. 모두 시험 삼아해 본 것이니 내년엔 더 많이 제대로 만들어 보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저장이 가능해지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으니까.


곶감도 예전엔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손님 접대용이나 나이 드신 어른과 손주들의 간식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 기억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명절 선물로 곶감을 준비하곤 한다. 곶감은 그대로 먹기도 하고, 호두를 싸서 곶감쌈을 만들기도 한다. 명절에나 맛볼 수 있었던 전통 음료로서 매운맛과 은은한 단 맛이 어우러지는 수정과의 주원료이기도 하다.


감은 생으로 먹거나 곶감으로 먹지만 감식초, 감잎차 심지어 술과 고추장을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최근엔 아이스홍시가 개발되어 시원한 디저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 탄닌 성분이 있어 변비를 유발한다지만 이 때문에 숙취해소에도 좋다. 곶감을 잘게 썰어 참기름, 통깨를 넣고 고추장에 버무리면 장아찌가 된다. 감물로는 연갈색으로 천연염색도 하는데 땀과 물기가 잘 스미지 않고, 오염된 티가 안 나 일복으로 그만이다. 또한 감나무 목재는 단단해서 가구 재료로 쓰인다. 예전엔 골프클럽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였는데 이것이 우드(wood)의 기원이다.


이처럼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나무인 까닭에 예찬론이 전해진다. 중국 당나라 때 편찬된 잡학 서적 유양잡조(酉陽雜俎)에 따르면 속전시유칠절(俗傳柿有七絶)이라 하여, 첫째 수명이 길고, 둘째 녹음이 짙고, 셋째 새가 집을 짓지 않으며, 넷째 벌레가 꼬이지 않고, 다섯째 단풍이 아름다우며, 여섯째 열매가 좋고, 일곱째 낙엽이 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넓은 낙엽은 나무 아래 잔디의 생장을 방해하기도 하고, 떨어진 열매에 벌들이 꼬여서 접근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어쩌다가 발로 밟는다면 한순간 똥으로 착각할 만큼 질펀한 느낌이 께름칙하다. 이처럼 소소한 투정을 빼면 사실 별다른 걱정거리 없이 잘 자라 주는 나무라서 평소에 관심이 없을 때가 많다. 이번에 사진을 정리를 하다 보니 감나무를 찍은 것이 별로 없어 놀랐다. 과일 따먹을 생각만 했지 찬찬히 지켜보지 못했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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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밤나무와 대추나무에 가려있는 감나무 ② 밤나무 앞 키 작은 단감


본디 감은 우리 민족에게 무척 사랑받는 과실로 밤, 대추와 함께 삼실과(三實果)로 일컫는다. 조율이시(棗栗梨柿), 홍동백서(紅東白西)에서 알 수 있듯 제사상에서 빠질 수 없는 과일이기도 하다. 평민들의 집에는 대체로 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 유실수를 많이 심었다. 이들의 문제는 언제나 먹을거리와 관련이 있었는데 늘 배고팠던 시절의 대용식으로 감, 밤, 대추는 겨우내 먹을 수 있는 소중한 구황 음식이었다.


우리 마을도 집집마다 감나무가 한 두 그루씩 있기에 감을 수확해도 특별히 이웃과 나누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알아서 가져가는 이웃이 많다. 새와 벌들이 그 단맛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때문에 익기도 전에 떨어져 깨진 것, 쪼아 먹은 것이 꽤나 많다. 떨어진 감 특히 잘 익은 홍시에는 큼직한 벌들이 꼬여서 잔치를 벌인다.

쏘인 적은 없지만 가까이 가기엔 다분히 위협적이다.


하지만 조금 손해보고 불편해도 넉넉하니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다. 덕분에 자연의 생명들이 찾아주니 정원이 더욱 풍성해진다. 시골에는 오래된 감나무가 많다. 그 언저리는 친구들과 뛰놀던 아련한 고향의 추억이 있고, 휘영청 보름달 아래 붉은 열매는 가을 명절 추석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제 잎 지고 홀가분해진 감나무는 “내가 널 키운다”며 우쭐대는 어느 청맹과니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이 같은 결실과 추억과 기쁨을 우리 함께 하자고. 네가 보았듯이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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