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대추나무와 '다방의 푸른 꿈'

by 잼스

농촌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1990년부터 2007년까지 KBS에서 방영되었다. MBC에 <전원일기>가 있다면 KBS엔 이 프로그램이 있었다. <전원일기>는 제목 그대로 시골의 일상이 연상되었지만 이 드라마의 제목은 언뜻 '사랑스럽게' 들렸다. 어딘지 모르게 어법이 좀 어색하긴 했지만 마을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표현한 듯했다. 사실 즐겨보던 것도 아니라서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대추나무에 걸린 것은 정확히 말해 "사랑"이 아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대추나무 시집보내는 풍습에 대한 글이 있다. '오월 단옷날 정오에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무거운 바위나 돌멩이를 올려놓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탄성이 없어 잘 부러지고 가지치기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 않아 조상들이 짜낸 지혜다.


헌데 대추나무 특유의 가지 유도 방식이 왜 "시집보낸다"는 말로 불렸을까? 이는 사람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혼인을 하여야 열매를 맺는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두는 행위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 성교의 모방이라 할 수 있다. 방송에서도 차마 이러한 제목을 쓸 수 없어서 "사랑 걸렸다"로 순화시킨 것이다.


그러면 왜 굳이 똑바로 쓸 수 없는 제목을 선택한 것일까? 농촌의 풍년 기원? 궁금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어 아쉽다. 어쨌든 알고 보면 발칙한 시도였던 것인데 90년대 유교적인 사회분위기에서, 명색이 한국방송공사인 KBS가, 그것도 방송하는 17년 동안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이게 가능했네? 이런 강심장의 PD와 작가가 있었구나?"하고 웃음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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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신앙에서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서 양기가 강하다고 여겨져서 신통한 효험이 있다고 믿어왔다. 특히 벼락을 맞은 대추나무는 벽조목이라고 부르며 더욱 귀하게 여기며 도장이나 염주의 재료로 각광받았다. 지금은 사인이 대세라서 도장을 쓰는 사람조차 많지 않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찬바람으로 날씨가 쌀쌀해지면 대추차가 제격이다. 물론 요즘엔 커피를 찾는 사람이 더 많지만.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고 나서 바로 떠오른 것이 이상(李箱)의 "식스 나인(69)" 다방이다. 커피에 대한 우리 민족의 애정은 이맘때도 요즘에 못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은 당시의 잡지 《청색지》 1호(1938년 6월 발행)에 실린 〈경성 다방 성쇠기〉의 일부분이다.


그다음이 작년에 죽은 이상(李箱)이 현재 ‘빠-뽀스톤’ 자리에 실내 시공만 했다가 팔아넘긴 ‘식스 나인(69)’이 열리고, 곧 뒤이어 이상이 자기 부인을 데리고 열었던 종로 1 정목의 ‘제비’였다.



또 서울 중구 명동9길에 가면 길바닥에 "이상의 거리"라는 놋쇠 표석이 있다. 설명문에는 "이상 (본명 김해경)은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넘나드는 난해한 구성과 관념적 언어로 의식세계에 대한 내시적 추구를 시도했던 천재시인이자 소설가이다. 제비, 쓰루, 69에 이어 명동에서 무기(보리) 다방을 운영했다.”라고 안내되어 있다. 무기는 일본어로 (むぎ, 麥) 보리다.


여기서 천재 시인 이상이 팔아넘긴 다방 '식스나인(69)'은 남녀의 성행위를 숫자로 묘사한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쓴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는 커피를 즐겨 마신 고종황제에서부터 카페의 대명사인 스타벅스에 이르기까지 110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커피와 다방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여기에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가 소개되어 있다.


인사동에서 광교로 건너온 이상은 세 번째 시도로 69 다방을 낼 준비를 하였다. 이미 종로경찰서의 허가를 받은 상태였는지라, 다방 이름을 "식스 나인"이라 쓰고 69의 도안을 그린 간판을 걸어 두었다. 종로경찰서는 69의 의미를 모르고 허가를 내주었지만, 다방이 개업하기 2, 3일 전에 이상을 호출하였다. 뒤늦게 69의 뜻을 알게 된 경찰은 이상을 보고 "경찰을 우롱하는 나쁜 놈"이라며 갖은 욕설을 다하고 허가를 취소하였다. 이상은 경찰을 골려준 것을 재미있게 생각하였지만, 다시는 종로경찰서 관내에서 다방 영업허가를 얻을 수가 없었다.


상업적으로 번창하진 못했지만 당시 서울에 다수의 다방이 생겼고, 이곳에 많은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요즘 거리에 넘쳐나는 카페를 연상시킨다. 1930년대의 다방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조명암이 작사하고 천재작곡가 김해송이 작곡, 편곡한 곡으로 김해송의 부인인 이난영이 1939년 발표한 <다방의 푸른 꿈>이다.


내뿜은 담배 연기 끝에

흐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고요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면 가만히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 부르누나


흘러간 꿈은 찾을 길 없어

연기를 따라 헤매는 마음

사랑은 가고 추억은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1930년대에 이런 블루스 음악은 아마도 이 곡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은 딸 둘과 조카를 한국 최초의 여성 보컬그룹 "김시스터즈"로 키워내는데, 1959년에 미국에 진출하여 아시아 최초로 라스베이거스에 입성한 김시스터즈는 1960년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미국 대중들에게 어필한다. 이 노래는 할리우드 영화 속 칙칙한 조명과 올드 재즈가 BGM으로 흐르는 바가 연상된다. 이슥한 저녁에 이상 시인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다방을 상상하며 그녀들이 부른 <다방의 푸른 꿈>을 이따금 듣는다.


뒷마당에 우뚝한 대추나무를 보며 "가지치기를 해주어야겠구나" "올해는 꼭 열매가 맺히도록 잘해봐야지" 생각하다가, KBS와 이상(李箱)이 드라마와 다방의 이름으로 대놓고 사람들을 농락한 데까지 이야기가 흘렀다. '대추나무' 때문이다. 그래도 드라마의 타이틀과 등장인물에 잠시 옛추억을 떠올려 보게 됐다. 옛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의 모습을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상상하는 시간도 가졌다.마치 영화 <Midnight In Paris>의 오웬 윌슨(Owen Wilson)처럼. 시간이 흘러 어느 땐가 지금 우리의 모습도 저처럼 박제된 기억으로 남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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