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멀리 가기 싫어 가까운 식당을 찾았다. 데면데면하는 종업원 태도가 미심쩍었지만 그냥 먹기로 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고, 음식은 둘째치고 우리 테이블에서 젓가락을 빼가질 않나, 계산서만 주고 돈 받으러 오지 않는 등 신경이 거슬렸다. 늘 운이 좋길 바랄 순 없다. 무례함엔 또박또박 우렁찬 목소리가 약이다.
기분이 언짢을 땐 단골이 필요하다. 우리가 들어서자 알아서 사이공 맥주를 내오고 오늘따라 땅콩 대신 캐슈너트를 준다. 자신들이 만든 소시지와 함께 바나나와 구아버로 만든 전통주를 먹어보라며 가져오기까지 하더니, 그동안 얌전하던 남자 주인은 자신의 한국 친구라며 동영상을 보여준다. 나도 Whatsapp으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다른 테이블 챙기랴 우리를 챙기랴 애쓰는 게 참 정이 깊구나 싶다. 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숙소의 아침 식사 시간, 자리가 꽉 찼다. 서양인들은 한번 앉으면 한 시간 넘게 일어나지 않고 떠든다. 마치 밤새 말할 거리를 꼭꼭 챙겼다 나온 것 같다. 나중에 온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면 좋으련만. 우리 식사가 끝나갈 무렵 잉글랜드에서 온 부부와 합석하게 됐다. 엊저녁에 본 설이벤트 공연을 알려주며 구경해 보라 권했더니 마침 오늘 다낭에 간다고 아쉬워한다. 우리 부부의 겨울 여행 얘기에 자신들은 3주간 휴가인데 베트남의 싼 물가, 배와 버스를 타고 베트남 여기저기 다닌 얘기, 영국 날씨, 프리미어 축구, 나중에 일본과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 얘기로 오래 앉아 떠들게 됐다. 쉽게 남들 흉볼 일이 아니다.
은행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서니 뜨거운 햇살이 작열한다. 안 일어난다고 흉본 일행이 숙소 옆 카페에 앉아 손을 흔든다. 나이 들어 멀리 여행 다니는 부부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우리도 이들처럼 장기간의 여유가 일상화 됐으면 좋겠다. 여행은 아주 작은 무대지만 등장인물이 스스로 연출하는 세계적인 무대기도 하다. 때론 다투고 떠들더라도 한국 젊은 친구들의 쾌활한 목소리와 더 재밌게 잘 노는 모습, 우리 특유의 부드러운 매너와 부부애가 돋보이는 공연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