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지워져 간다. 엊저녁엔 호이안 성당에서 아내의 마지막 미사가 있었고, 자주 가던 달빛식당에서 주꾸미볶음에 소맥을 먹고 난 후 주인장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다시 또 오면 되죠, 뭐." 정답이지만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돌아오는 길 Phung Craft Beer에선 낯익은 현지 손님과 주인이 알아보고 앉으라며 자리를 만든다. 이미 한 잔 걸친 상태라 정중히 사양하고, 두 손잡아 우리의 떠남을 알렸다. 이제 또 다른 집과 그 안에 사는 얼굴들과도 헤어져야 한다.
오늘은 평온한 풍경의 Chillax Eatery에 왔다. 글 쓰고 점심 먹을 때마다 산들거리는 오후를 가져다준 고마운 공간. 저녁은 수줍은 부부가 늘 환히 반겨주던 Sunset Restaurant에서 베트남 가정식으로 마무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인연, eco life와 헤어질 시간을 갖게 되겠지. 어두운 밤 구석에서 주인의 휴대폰 불빛만 반짝이던 가게였다. 두어 번 그런 모습을 지나치다가 애처로운 맘에 들어간 카페였는데, 요즘은 아이와도 친해지고 가게엔 제법 손님들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제 31박 32일, 한 달 넘은 호이안에서의 생활을 접어야 한다. 갑자기 찾아온 감기를 짊어지고 다시 찾은 호이안. 감정에 휩쓸린 채 멀리하고 다시 다가서던 시간들, 이젠 이웃집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호이안의 고택들, 미운 정 고운 정들었던 사람들, 늘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길거리 상인들과 호객꾼들, 내 어디서라도 짜증과 싫은 표정이 스쳤다면 너그럽게 잊어주길. 내가 더 서운한 이별의 기간은 짧지 않을 테니 그러기엔 충분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아침마다 만나는 등짝 넓은 서양인들과의 굿모닝도, 식사를 챙겨주던 츤데레 타입의 주인, 스태프들과도 작별이다. 명절이라 문 닫은 가게들도 안녕. 인연이란 게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 모르겠다. 지구 어느 한편의 점으로 살다가 서로의 의지나 의도와 상관없이 만난 것부터가 신기하다. 사람은 가고 기억은 남아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고 감정을 섞는다는 게 바람 부는 들판에 이리저리 눕는 풀처럼 우연스러워 나도 모를 운명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