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돈, 흥정 그리고 가격

by 잼스

여기 와서 늘 마주하는 얼굴, 호찌민이다. 지폐는 단위별로 3종씩 9개의 권종에 불과하지만 모두 같은 초상에 어떤 건 색깔도 비슷해서 헷갈리기 일쑤다. 그래도 여행의 막바지에 현금이 줄어드니 어쩐지 가난해지는 느낌이다. 어쨌든 추상에서 리얼리즘으로의 복귀라고 해야 하나? 카드 대신 지폐를 쓰다 보니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지곤 한다.


돈에 다른 언어가 혼합되면 자주 계산이 엉클어진다. 평소 갈피를 잘해놓아도 머뭇거리게 되고 기다리는 사람까지 있으면 더욱 버벅거린다. 무조건 큰돈을 주면 쉽지만 거스름돈도 문제다. 셈이 틀려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고 자꾸 푼돈만 쌓여 지갑만 부풀어 오르고 카드는 받지 않고 설사받는다 해도 수수료가 붙으니 내게 있어 리얼리즘은 피로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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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흥정은 체력이 된다. 도시마다 동네마다 가게마다 사람마다 가격이 다르다. 심지어 같이 영업하는 부부 간에도. 더구나 한 가게가 전반적으로 싼 게 아니라 품목과 품종별로 달라서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도 고된 일이다. 게다가 가격과 품질이 상응하지 않으니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발품으로 적정 가격을 찾아야 하기에 다리와 머리가 고생한다.


그래서 덩치 큰 서양인들과 짐 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짐과 함께 짐처럼 길을 막고 서 있는 관광객들에게 투덜거리며 싼 곳을 찾는다. 그 와중에 상인들은 길목에 물건을 풀어놓고 정리하랴 끄집어 내랴 호객하랴 모두 힘들다. 혹시 살 게 많기라도 하면 이런 고역이 없다. 그래도 가격이 싸서 오는 것이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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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 문제다. 똑 닮은 제품이 번듯한 상점에 두 배 가격으로 진열되어 있는 걸 몇 차례 겪어 보면 쇼핑 태도가 달라진다. 어린아이에게 첫날부터 바가지를 쓰면 정신이 번쩍 든다. 이런 기술을 가르친 건 어른일 테니 아이를 탓할 순 없지만 "이런 식이구나"하는 고정관념이 굳어진다. 점점 돈 쓰는 일이 돈 버는 일로 전이되어 가면 우아한 여행은 멀어진다.


가격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존심이 상한다. 모르는 나라에서 싸고 질 좋고 맘에 맞는 물건을 찾을 땐 어느 정도 고생을 예상한다. 하지만 어쩌다 내게 행운이 온 듯해도 나중에 확인하면 저 집보다 싼 것뿐, 언젠가는 더 싼 곳을 만나 한방 얻어맞는다. 이를 용인하지 못하면 마음만 상하니까 잊고 넘어간다. 그래도 어떤 때는 그 차이가 너무 심해서 속상하다.


이것도 여행의 일부다. 음식, 생필품, 기념품, 교통수단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만나는 접점에서 돈 때문에 웃고 속으며 허탈했다. 그렇게 지지고 볶다 보니 어느덧 짐을 싸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팁은 얼마를 주는 게 좋은 건지 과한 건 아닌지 괜히 비웃음 사는 건 아닌지 또 고심한다. 문득 침대 위에 놓아둔 팁이 매번 그대로 놓여있던 훼의 홈스테이가 희귀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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