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와 무청, 시래기 이야기
Take me as I am
Take my life
I would give it all,
I would sacrifice ♬♪
있는 그대로의 절 받아주세요
제 삶을 받아주세요
제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고
희생하겠어요 ♬♪
목구멍을 긁는 듯 애절한 목소리로 사랑을 희구하는 <Bryan Adams>의 <(Everything I Do)I Do It For You>. 1991년 영화 <Robin Hood: Prince of Thieves>의 사운드트랙으로 동시에 발매되었다. 미국의 여성 가수 <Brandy>의 1998년 리메이크 곡도 좋다. 아무래도 이 노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어울리는 듯.
영하의 기온에 가루 같은 눈발이 잠깐씩 날린다. 이따금씩 햇빛이 나오다가 이내 회색 구름에 갇히곤 한다. 다채로운 날씨다. 창밖으로 바람에 나풀거리는 무청이 보인다. 분홍색 채반에는 하얗게 채 썬 무가 널려있다. 보통은 열매나 뿌리, 이파리를 거두지만, 뼈와 살점 모두를 다 내준 채 무심하게 빨랫줄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저 녀석은 본디 ‘무’였다.
무는 배추, 고추, 마늘과 함께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4대 채소 중 하나다.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맛과 종류가 다양해 김치·나물·국 등 각종 음식 재료로 이용되었고, 먹거리가 귀한 겨울을 날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채소 역할을 해왔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에 저장해 두면 겨울철에도 신선한 재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무와 무청을 말려 무말랭이와 시래기를 만들 수 있어 저장성이 좋은 채소이다. 이 때문에 구황작물로도 요긴하게 쓰였다.
김장철에는 김치를 담그기 위해 무를 손질하기 때문에 잘라낸 무청이 많이 나온다. 흔히 무청 말린 것은 시래기, 배춧잎 말린 것은 우거지라고 알고 있는데, 사전적 의미는 모두 시래기다. 하지만 푸성귀를 말려 '우거지'로 쓰지 않는 현실에 비추어 용어 정의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또 시래기가 '채소 쓰레기'에서 온 말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아직까지 시래기의 어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래기, -거지(걷이)’와 같은 접미사가 조무래기, 떨거지처럼 낮잡아 이르는 말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무청은 일교차가 큰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얼고 녹기를 반복해야 비로소 시래기로서 형질을 갖추어 간다. ‘강원도 양구 시래기’가 특별히 맛나다고 알려진 이유다. 시래기로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 손질이 중요한데 이것이 만만치 않다. 우선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무청을 말리는 것이 쉽지 않고, 삶아서 껍질을 벗겨내야 하는데 이 작업이 무척 성가시다. 손질한 시래기는 소분해서 냉동실에 얼려놓고 필요할 때 꺼내 쓴다. 한때 시래기는 가난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비타민과 미네랄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고, 성인병과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많은 이들이 찾는 음식재료가 되었다.
시래기와 궁합이 잘 맞는 재료는 된장이다. 시래깃국은 말린 무청의 토장국이다. 경상도 쪽에서는 ‘시락국’이라고도 부른다. 시래기를 넣으면 식감도 좋아질 뿐만 아니라 향도 구수해진다. 삶은 시래기를 넣어 시래기밥을 지어먹거나 비빔밥에 나물 고명으로 얹어 먹기도 한다. 또한 정월대보름·고사·제사 때 상에 올리는 나물 반찬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고등어조림, 감자탕, 선짓국 등에서 간이 잘 배어 풍미가 깊어진 시래기 맛을 가장 선호한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며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쓰레기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찬바람을 견디며, 서민들에게 따끈한 한 끼를 마련해 준 시래기. 자신의 풍미를 갖고 있지만, 묵묵히 조연으로 남아 다른 음식의 이름으로 불리는 시래기. 필요 없다고 버려지던 때도 있었지만, 오랜 세월 견디는 힘을 보여준 시래기가 겨울바람을 뚫고 카악 하며 소리치는 것 같다.
"누가 날 보고 쓰레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