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문화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며
텃밭은 여름부터 김장을 향해 왔다. 배추, 무가 그 중심에 있고 적갓, 당근은 거들며 준비해 왔다. 다른 채소와 격이 다른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꼬박 이틀간 김장을 했다.
“김장은 하늘이 도와야 할 수 있다”는 옛말이 있다. 김치를 담그기까지 기후조건이 잘 맞아야 재료 준비에 어려움 없이 맛있는 김치가 만들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동안 기온의 변화를 예의주시 해왔다. 배추는 괜찮지만 수분 함량 95%인 무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바람이 든다'. 얼었다 녹으며 퍼석퍼석 해지는 것이다. 다음 주에 기온이 급강하한다는 예보가 있었다.
우선 배추 걷이부터.
텃밭에서 스물다섯 포기를 수확했다. 속이 노랗게 꽉 찬 것이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다. “배추김치의 맛은 주재료인 배추가 좌우한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 함함하다”라고 하지 않나. 모든 텃밭 농부가 그러하듯 내 배추가 가장 맛있다. 반으로 갈라 소금물에 절이고 한밤에 나가 위아래를 바꾸어 주었다. 다음날 아침에 또 한 번. 그렇게 숨을 죽였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것은 먼저 배추의 수분을 적당하게 방출시켜 양념이 잘 밸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오랜 저장 기간에 배추가 물러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무는 기대만큼 크게 자라지 않았지만 개수는 넉넉하다. 가을 가뭄에도 불구하고 수분이 많고 달아서 생으로 먹어도 과일에 버금가는 맛이다. 수시로 물을 준 보람을 찾는다. 김장에 쓸 만큼만 씻어서 채를 썰고 나머지는 저장하기로 했다. 채 썬 무는 내일 아침 양념과 버무려져 김칫소로 변신할 것이다. 무청은 시래기를 만들기 위해 마당 데크에 널었다. 보름 정도 잘 말린 후에 삶아서 껍질을 벗겨내고 냉동 보관하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둘째 날, 아침부터 바빴다.
흙과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배추를 여러 번 씻어내고 물기가 빠지도록 소쿠리에 얹어 놓았다. 찹쌀풀을 쑤고, 김칫소 만들 재료를 다듬고 나니 벌써 정오. 간단히 요기 후, 어제 채 썬 무에 고춧가루와 육수, 적갓, 쪽파, 젓갈, 새우젓 등을 넣고 계속 버무린다. 최소 15가지 재료가 들어간다는데 세어 보진 않았다. 드디어 절여진 배추에 빨간 옷을 입힐 시간이 왔다. 같은 자세로 김칫소를 바르는 작업은 온몸이 결리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웃고 떠들 수 있는 대화와 힘 솟는 간식이 필요하다.
요즘은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김장을 하기도 한다. 절인 배추를 사서 김칫소만 만들어 김장을 하기도 하고, 만들어진 김칫소까지 사서 버무려 마무리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것이 번거로운 과정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빠져있기에 낭패를 보기도 한다. 재료의 신뢰도 때문이다. 텃밭 농부는 주 재료를 직접 재배한다. 소금, 고춧가루 등 중요한 재료의 출처도 파악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키우고 알아보는 동안 누군가 이 김치를 먹는 모습을 상상한다.
배춧잎 한 장 한 장 양념을 바르고 일정하게 소를 배분해야 하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김치통에 넣을 때도 배추 안쪽이 위를 향하게 하고 뿌리 부분이 서로 엇갈리게 쌓아야 양념이 고루 밴다고 한다. 농도 조절을 위해 멸치액젓과 육수, 고춧가루 등을 몇 번 추가하기도 하면서 통이 쌓여갔다. 남은 김칫소로 갓김치를 만들고 나서야 올해 김장이 마무리되었다.
표준화된 김치 제조방법이 있긴 하지만 김치를 만드는 방법은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르다. 자연히 김치 맛이 다르고, 대부분 본인이 원래 먹던 맛의 김치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고된 시간이지만 일 년 내내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는 생각에 가득 찬 김치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또 이웃과 나누는 마음, 수육과 보쌈에 대한 기대는 또 다른 기쁨이기도 하다.
아파트가 처음 보급될 당시, 김장독을 묻을 공간이 없다는 것 때문에 분양률이 저조했다고 한다. 이처럼 김장은 과거 한국인의 연례행사이자 기본적인 생활양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시사철 김치를 담글 수 있는 데다가 제품화된 김치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김장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식생활 패턴도 바뀌고 급격한 가족 분화로 인해 김치 소비량이 줄어든 까닭도 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김장을 포기하고 김치를 사 먹는 '김포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학자들은 김장문화의 보존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걱정하며 그 ‘핵심은 지속성’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나는 작은 텃밭에서 그 답을 찾고 싶다. 텃밭농사의 꽃은 김장이다. 주말농부나 귀촌인들은 채소를 길러 먹는 것을 즐거워한다. 특히 자신들이 가꾼 채소로 김장을 하는 수준이라면 그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도시에 사는 가족들의 5도 2촌과, 은퇴 부부들의 정원 생활이 확산되어 사회문화적 트렌드를 형성하게 된다면 자급자족의 기쁨을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김장문화의 다양성과 지속성을 키우게 되리라 생각한다.
2013년 우리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문화재청은 2017년에야 ‘김치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유네스코는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에 대한 무형유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김장은 또한 많은 한국인에게 인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하도록 해준다. 김장은 자연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사는 것에 대한 인간의 창조성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가장 우수한 사례이다. 한국인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는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