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정원 순례(1)

Touch Love, 윤미래

by 잼스

글에 멜로디를 담으면 쉽게 그림이 된다. 예를 들어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셔요'라는 문장은 밋밋하다. 하지만 곡이 붙으면 마치 밝은 햇살이 눈으로 들어온 듯 눈살을 살짝 찡그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처럼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배경이 따라온다.


멜로디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노랫말이 아니라, 리듬이 있는 산문 말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유월의 정원을 얘기할 때는 더욱. 아무튼 오늘 아침 햇살은 유난히 눈부시다. 윤미래의 <Touch Love>을 적당한 크기로 틀어놓고 인스턴트커피를 손에 든 채 얼른 데크로 나 앉는다.


랄랄라- 랄라- 랄라-

랄랄라- 랄라- 랄라-

랄랄라- 랄라- 랄라- 랄라-

내 맘 닿을 수 있어요 ♬♪

슬픈 짝사랑의 얘기지만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다. 비극이 때론 건강에 좋다고. 가사와 멜로디 일부분을 떼내 보니 즐거운 허밍 같기도 한데 어쨌든 스토리의 결말은 상상하는 자의 것이다.


현관 앞에 늘어놓은 모종에 물을 주고 박자에 맞춰 타박타박 뒤란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까이 갈수록 길 위에 밤꽃 향기 그윽하다. 젊은 시절엔 몰랐다. 컬리가발 같은 밤꽃이 뿌리는 떨떠름한 향 속에 단내가 배어 있는 것을. 그 옆에 선 감나무 가지, 꽃 피었던 꼭지에 살이 차오르고 있다. 제대로 큰 열매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감잎 서른 장의 광합성이 필요하단다. 감꽃을 솎는 이유다. 집보다 큰 키로 하늘을 가린 밤나무, 감나무잎 때문에 뒷텃밭의 열무와 들깨, 단호박은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늘을 좋아하는 맥문동이야 팔자 폈지만 말이다. 처지(處地). 그래도 봄날 한때 이곳은 참나물과 머위가 번창했던 나물시장이었다.


뒷마당은 건천을 끼고 있다. 바위 축대 아래 시멘트 옹벽이 있는데 장대비 내리는 날이면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소리가 멀리서도 우릉거린다. 그 바위 축대 틈에서 자란 층층나무와 단풍이 제법 우거져 자연 울타리가 쳐진다. 바위 담장을 따라 배롱나무, 산수유, 찔레, 엄나무, 복사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너무 바투 심겨 바들대던 목련과 불두화는 작년 가을에 앞뜰로 옮겼다.


아마도 이 집 전주인의 뒤뜰 콘셉트는 과수원이지 않았나 싶다. 매실을 비롯한 유실수가 대부분인 것을 보면 말이다. 내가 온 후로는 야금야금 꽃을 캐스팅하고 있다. 대추나무와 바위담장 사이, 며칠간 흙조리질 해서 만든 꽃밭에는 수레국화, 루피너스와 리아트리스, 에키네시아가 꼿꼿하게 자라고 있다. '너희들, 들어와 살아줘서 흐뭇하구나'. 마음의 표시로 메주덩이만 한 돌을 건천에서 주워다가 화단 경계석으로 둘러 세웠다.


바위담장 부근은 무화과가 꿋꿋이 겨울을 이겨낼 만큼 양지바르다. 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니 문제다. 토양 상태는 지난번 흙 고르기 작업에서 확인한 바 별로다. 그러니 담장 주변의 애기동백과 산수유, 복숭아나무도 꽃과 열매가 시원찮다. 다 커버린 수목이 있는 정원은 근본적인 토양개선이 어렵다. 퇴비라도 넉넉히 얹어주어야겠다. 내쳐 들춰본 한 평 크기의 퇴비장은 다행히 냄새도 날파리도 없다. 깎은 잔디를 모아 얹어준 것이 부숙에 효험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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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곱만 한 대추꽃이 앙증맞게 피었다. 올 가을에는 달곰한 과육 맛을 볼 수 있으려나? 며칠 전 수확 후 잘라낸 보리수와 매실가지 흐트러진 자갈길을 따라 작년에 만든 화단을 살핀다. 벌들이 수레국화와 양귀비꽃 속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작업 중이다. 지난 장대비에 쓰러지기도 해서 초췌한 외양이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이리 오래 꽃을 보여주니 고맙다. 자운영과 샤스타데이지는 벌써 자취를 감췄는데... 토박이 원주민, 쑥부쟁이의 기세가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가만히 놔두면 이곳은 녀석이 점령해 버릴지도 모른다. 괜히 쑥;부쟁이라 이름한 게 아니다. 오옷, 그 틈에서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줄기를 쭉쭉 뻗는 흰꽃등나무. 호적수(好敵手)다.


돌탁자 앞에선 멀리 호수가 보인다. 원래 정자가 있던 자리, 돌은 개미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았다. 살구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 사이에서 반짝이는 물결. 곳곳에 바닥이 훤히 보이는 걸 보니 비가 좀 더 와야만 한다. 성질은 좀 죽이고. 요즘 빗줄기엔 감정이 섞인 것 같다. 말이 났으니 참, 정말, 진짜로 일기예보 안 맞는다. 와도 안 온다 하고 안 오는데 올 거라 한다. 그렇찮아도 식물 때문에 날씨에 민감한데 골프만큼이나 변명도 다양하다.


기가 차서 고개를 젖히니 팽나무 가지가 어지러이 산만하다. 머리 풀어 신세한탄 하는 걸까? 몸집으로 치면 정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지만 꽃도, 열매도, 외양에서도 이렇다 할 존재감을 갖지 못한다. 정자가 사라진 후론 돌탁자로 가는 길을 막고 선 채 매실나무에 치여 가지 몇 개를 잘리고, 賤덕꾸러기가 다 됐다. 정자와 함께 무너진 네 자존심을 어찌해야 할까?


어수선하기는 팽나무 뒤 터널형 창고도 마찬가지다. 농기구와 농자재, 안 쓰는 목재, 빗물에 터진 탁자, 먼지 쓴 스테인리스 싱크대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물색없이 놓였다. 텃밭 가까운 까닭에 아무래도 번잡하지만 그래도 수도가 있고, 비를 피할 수 있어 아주 요긴하다. 수돗가 건너 철쭉울타리 밑에는 루드베키아와 아게라텀, 왕수염패랭이 모종이 자란다. 오른편으로는 아프리칸 메리골드의 꽃봉오리가 언제 터뜨릴까 묻고 있다. 원추리는 해마다 같은 넓이의 땅을 차지하고서 무성한 잎으로 제 영역을 표시하고 있다. 한 걸음 건너에도 번식왕 쑥부쟁이가 무성하지만 올해는 미리 철쭉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 발본색원 근절하였다.


길게 늘어선 철쭉울타리 왼편엔 장신의 자두와 사과, 단감나무가 있다. 사과나무에 탁구공 크기의 열매가 달렸다. 희불긋한 것이 크기만 작지 영락없는 사과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비료도 농약도 전혀 살포하지 않았기에 언제 떨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래서 이미 자두꽃은 봄에 볼만큼 본 후 모두 솎았다. 다디단 열매를 찾는 해충 피해가 심각해서 다른 나무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미처 꽃 따기를 못한 퇴비장 옆 자두나무엔 벌써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어쩐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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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뒤꼍 수돗가를 지나 옆마당 텃밭으로 나간다. 보랏빛 열매 익어가는 블루베리가 그물망을 머리에 이고 있다. 생애 첫 열매를 물까치에게 빼앗길 순 없어서 하게 된 그야말로 고육지책(苦肉之策). 그 앞엔 방울토마토와 오이고추, 오크라가 비닐멀칭한 두둑 위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있다. 비바람에 끄떡없도록 지지대를 단단히 해주었다. 작은 텃밭 몇 안 되는 작물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곧 비의 계절이 다가온다. 쓰러지면 뒤처리가 더 힘들다.


철제 휀스를 따라 남쪽으로 고랑을 낸 두둑이 다섯 개. 1번에는 옥수수와 완두콩이 자라고, 그 옆엔 높은 지지대 위로 줄타기 하는 애호박과 오이가 정상 정복을 앞두고 있다. 오이는 이미 냉장고를 채우고 있고 애호박은 오늘내일하고 있다. 3번 두둑에선 양배추가 제 살을 주체 못 하고, 청양고추는 매운 놈답게 작은 키를 도사리고 있다. 4번 맨땅 두둑에선 당근이 갖가지 이름 모를 풀들과 동고동락한다. 보도 쪽 5번 두둑 위에선 지하의 감자가 햇빛 볼 날을 잡아달라고 이파리를 누인 채 시위하고 있다.


이제 틀밭을 둘러볼 차례다. 동서로 자리한 두 개의 틀밭은 감자 차지, 갈데없던 고구마가 사잇길 통로에 겨우 자리 잡았다. 맨 끝 틀밭엔 대파와 부추, 산마늘이 입주해 있다. 새 개의 틀밭 끝엔 백합과 참나리가 심겨있다. 싯붉은 왜성백합꽃이 눈부신 자태를 뽐내는데, 백합도 키를 꼿꼿이 세우고 고고한 자태로 사교마당에 등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같은 과인 참나리는 잎새마다 동글동글한 주아를 달고 있다. 꽃이 하루 만에 진다 하여 Day-Lily라는데 이참에 사실인지 확인해 볼 생각이다.


텃밭이 끝나는 옆마당 데크에 앉아 잠깐 쉰다. 늦게 만개한 핑크빛 철쭉 경계 아래 씨앗으로 키운 댑싸리가 눈에 띈다. 풍등 같은 모습으로 자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습이지만 기다림은 내 몫이다. 녀석은 제 걸음을 갖고 태어났으니. 산사의 종처럼 커다란 동백나무 옆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라고 있는 붓들레아가 어느새 울타리 끝에서 찔레, 등수국과 나란히 키재기를 하고, 홍단풍은 가소롭다는 듯 팔짱 끼고 위에서 굽어보고 있다. 육중한 체구의 높다란 소나무는 이들의 키재기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나는 놈 위에 타는 놈 있다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 발걸음에서 경쾌한 리듬이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렇기를 바란다. 그래야 앞마당으로 계속 갈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어느덧 이 집에 발을 들인 지 만 2년이 됐다. 나도 집도 정원도 많은 면에서 달라졌다. 원하던 생활을 하면서 바라는 대로 집과 정원을 가꾸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삶이라 할만하다. 이제 앞마당을 천천히 걸으며 곳곳에 새로 조성한 꽃밭과 오래된 화단 등 여러 가지 모습을 얘기하려 한다. 햇살이 뜨거워지는 시간이다. 앉은 김에 잠시 쉬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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