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기록

Sous Le Ciel De Paris, Ross Garren

by 잼스

정답은 없다. 선택이 있을 뿐. 결과가 좋지 못하면 잘못된 결정이 되지만 지금 알 수 없는 결과에 매달리다 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많이 실패해 보라고 독려하기도 한다. 물론 극복한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분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매사에 흠칫거리게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피부만큼이나 심적•물적 회복탄력성도 떨어진 때문인걸.


인생 경험에서 오는 지혜는 무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은퇴와 더불어 급격히 커진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원 가꾸기에 있어 땅과 흙이 없어지지 않는 한 실패의 타격감은 크지 않다. 혹시 실수를 거듭하거나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망치는 일은 있어도 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얼려 죽인 식물이 꽤 있다. 란타나와 잉글리시 라벤더가 그랬고 부레옥잠은 죽다가 살아났다. 방치한 것은 아니다. 왕겨를 두텁게 깔아주었고 비닐로 덮어주기도 했다. 봄에 이상기온으로 갑자기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자 독감에 걸린 것이다.


씨앗을 뿌렸지만 꽃은 고사하고 싹조차 보지 못한 것들도 꽤 있다. 에키네시아와 용담이 대표적이다. 에키네시아는 동결발아(winter sowing), 즉 차가운 겨울을 겪어야 싹이 트는 것을 굳이 올봄 모종판과 꽃밭에 두 봉지나 씨앗을 뿌렸다. 결국 모종을 몇 개 구입했다. 설사 발아했다 해도 꽃이 피려면 해가 바뀌어야 하기에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것을 자기 위안이라 하나? 자기 합리화?


어설프게 알게 된 지식으로 나무를 힘들게 한 적도 있었다. 배롱나무 아래에 움푹한 구멍이 생겨서 유튜브에서 본 대로 우레탄폼을 쏴서 막았다. 웬걸, 공기가 안 통하는 데다가 장마에 물이 새들어가서 오히려 상태가 악화되었다. 사실 수목보호기술자인 그 유튜버는 수술처치 후에 마지막 마무리를 한 것인데 나는 흉내만 낸 것이다. 올봄에 모두 걷어내고 잘 말린 후 식물보호제를 발라주었더니 한결 낫다.


또 누가 계란판에 모종 키우는 것을 보고 따라 했다가 마가렛과 데이지를 거의 잃었다. 이식하려니 뿌리가 종이 계란판에 들러붙어 떼어내다가 생긴 참상이다. 生巫殺人이라더니 선무당이 식물들 다 죽이고 있는 꼴이 아닌가? 참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삽목을 한답시고 내 손에 목이 달아난 두릅과 무화과 그리고 홍가시나무... 수년째 성치 못한 열매를 매단 채 벌레들에 살점이 뜯겨나간 자두와 사과, 배. 용서해라, 못난 동반자를.


참외, 수박, 단호박은 또 어떤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생장 특성 탓에 텃밭에서 밀려났다. 그렇다고 이미 자라고 있는 화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더구나 안될 말. 그래서 외진 곳에 심다 보니 햇볕이 부족해 빈사상태로 단말마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장소가 마땅치 않음에도 몹쓸 욕심을 부린 결과다. 이렇게 식물세계를 어지럽혀 놓고도 나는 뻔뻔스럽게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세상엔 꽃도 많고 씨앗도 많다. 심지어 저렴하고 양도 많다. 그뿐인가? 몇 배나 더 많은 씨앗을 안겨주고 제 스스로 퍼뜨리기도 한다. 그야말로 가성비 끝판왕. 물론 고가의 분재나 난초, 오래된 수목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다른 종류의 식물로도 정원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설사 꽃 틔우는 시기를 놓치더라도 씨앗이 있기에 재기와 부활이라는 선택지는 유효하니까.


언젠가는 비닐하우스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뒤뜰에 설치한 소형 비닐하우스가 강풍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통째로 날아가 윗집에 널브러진 녀석을 발견하곤 어찌나 기가차던지. 해체해서 포도넝쿨 지지대와 퇴비장 덮개로 쓰고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른 쓸모가 생긴다는 것이다. 땅 속에서 캔 돌도, 잘라낸 가지도, 풀과 이파리도 씨앗처럼 모두 제2의 인생을 품고 있다. 그러니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을 품듯이 아직 피우지 못한 또 다른 무언가를 모색하고 있고 그것이 자연스럽다.


음식물쓰레기로 만드는 퇴비도 빼놓을 수 없다.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뻑적지근한 관심으로 일 년 가까이 시도해 보았으나 EM발효제가 비싼 데다 헤프다 싶게 쓰지 않으면 날벌레나 구더기가 생기는 통에 그냥 퇴비장을 만들어 다른 풀, 낙엽 등 함께 섞어 부숙 시키고 있다. 병해충에도 처음엔 제충국이나 막걸리 베이스의 민간요법을 써가며 완전 친환경을 꿈꾸기도 했지만, 애꿎은 벌을 죽이거나 괄목할 효과를 얻지 못하면서 <모두싹>과 같은 비농약 친환경제품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것들이 있다. 좀 생뚱맞지만 식물이름표와 두더지가 그것이다. 유성펜으로 쓴 글씨는 햇빛을 이기지 못한다. 프린팅 라벨조차 강한 햇살에 바래다가 지워져 간다. 그렇게 계속 쓰다 보니 어딘가 내 맘에 새겨진 것 같긴 하다. 두더지는 나라에서 지정한 15종의 유해조수 중 하나다. 그중 새가 아닌 것은 고라니, 멧돼지, 청설모, 쥐 그리고 두더지다. 겪어보니 왜 5 대장인지 알겠더라. 텃밭과 과수뜰 심지어 잔디마당까지 헤집어 놓는 녀석을 잡으려 바람개비, 진동기, 덫, 약 등을 사용해 보았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아직 나의 실패를 기다리고 있는 호전적인 악다구니들이 많다. 여름 장마에 습기와 곰팡이는 지글지글한 햇볕과 더위보다도 치명적이다. 병충해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고 이 또한 날씨에 따라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미지수다. 그리고... 헛, 더 이상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러면 된 거다.


내일 일은 내일에 맡기자. 지금은 유월이니까. '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는 말이 있다. 6월에 장맛비 올 때는 식물이 매우 잘 자란다는 말이다. 거의 모든 꽃들이 얼굴을 비치고 있다. 올해는 윤년이라 음력으론 4월 하순이지만 정원에는 내 생전 처음 보는 버베나, 붉은꽃아마, 물양귀비, 디모르포세카가 피어나고 이제 곧 금어초와 베르가못, 비덴스, 스토크 등도 궁금한 외모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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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풀, 꽃과 함께 산다고 매일 구름 위를 걷는 것은 아니다. 때론 쓸쓸하고, 때론 아프다. 성가실 때도 있고, 단조로움으로 지루할 때도 있다. 어떤 날은 악쓰듯 울어대는 물까치소리가 거슬리고, 또 다른 날엔 잔디마당에 삐죽이 돋아난 세포아풀이 밉다. 하지만 물을 주며 마당을 한 바퀴 도는 동안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 뾰족한 것도 무겁거나 꼬인 것도 흩어져 사라진다.


어설프지만 해보고 싶은 것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해 나갈 수 있음에 행복하다. 이따금 훼방꾼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에 신경 쓰다 보면 내 인생은 남의 것이 되어버린다. 누구도 나일 수 없는 것, 그것이 나란 존재의 힘 아니겠는가? 마당으로 한 걸음 내딛자 일제히 내게 쏠리는 생명의 시선을 받으며 오늘도 나는 망하지 않을 정원을 선택한다.


겨우내 몇십만 원대의 난방비로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던 전기요금, 3만 원대로 뚝떨어져 가볍게 날아온 고지서에 입꼬리 올라가고. 좋은 삶이라는 게, 행복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구름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구름을 띄우는 것. Ross Garren의 목소리로 <Sous Le Ciel De Paris>를 <Sous Le Ciel De Garden>으로 바꿔 부르는 것.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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