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정원 순례(2)

Waltz of the Flowers, Tchaikovsky

by 잼스

현관 옆 데크는 내가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정원의 시그니처, 청단풍과 잔디마당을 바라보며 차도 마시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청단풍은 큰 그늘을 만들어 선선한 쉼터가 되기도 하고, 뙤약볕을 싫어하는 천리향을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막아준다. 물까치가 집짓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밑 넓적 바위 주변에 해국이 많이 번졌다. 꽃잔디와 수선화는 봄을 가장 먼저 알려오기도 했다.


데크 밑 플랜터박스에는 디모르포세카, 캘리포니아 양귀비, 버베나가 활짝 피어 있고, 플록스와 백일홍도 곧인 것 같다. 손끝으로 슬쩍 꽃잎을 건드려보며 잔디마당으로 나선다. 깎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푹신하다. 푸른 잔디마당은 정원 가꾸기에서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상쾌한 여유로움이 있다. 게다가 잔디를 밟으며 마당을 활보하는 것은 집주인의 특권이다.


그러함에도 계절의 다양한 변화를 느끼기엔 잔디마당은 어쩌면 단순 밋밋하다. 그래서 그동안 걷어낸 잔디가 얼마만큼인가. 아마도 많은 정원지기들이 이런 충동을 느낄 것 같다. 잔디마당은 사질토라서 곱고 물 빠짐이 좋은 데다가 걷어내기가 쉬워 꽃을 키우기엔 그만이다. 오른쪽으로 최근에 만든 꽃밭이 있다. 비덴스, 머스크멜로, 스토크와 아게라텀이 키 작은 퍼플히더와 테디 앞에 도열한 것이 마치 장난감병정들의 사열식 같다. 줄지어 식물을 심는 것이 옛날스타일이라는데 여기서도 나이가 나오나 보다. 이렇게 군데군데 만든 꽃밭이 다섯 개. 그중 셋이 잔디를 걷어내고 만들어졌다.


벤치와 그네 옆 철제 펜스를 따라 원래 있던 흑자두와 꽃사과. 싱거운 모습이 아쉬워 석류, 이스라지, 까마귀밥, 골담초 등 관목을 옮겨 심어 높낮이의 변화를 주었다. 한때 이스라지와 꽃잔디가 분홍을 뿜어내던 곳, 튤립과 무스카리가 알을 깨고 찬란한 봄날을 만들어 준 곳이다. 지금은 자홍색의 송엽국이 유일하지만 조만간 새깃유홍초와 니겔라, 채송화가 빈자리에 색을 입힐 것이다. 그리고 한여름이면 바위밑에서 상사화가 황금빛으로 빛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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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 버거울 만큼 큰 오엽송과 향나무 두 그루를 지나면 반원형 꽃밭이 있다. 키 작은 장미가 나란히 심긴 옆으로 널따란 바위와 배롱나무 둘레에 올봄 파종한 디모르포세카와 붉은꽃아마, 버베나와 수레국화가 활짝 폈다. 만드느라 애쓴 보람과 기쁨이 볼 때마다 새록새록하다. 메리골드와 금어초도 금세 폭죽을 터뜨릴 기세이고, 베르가못과 과꽃은 한여름을 꿈꾸게 한다. 이어진 흰색 펜스를 따라 진달래, 철쭉, 황매화가 늘어섰고, 꺾인 구석에 이 집의 역사를 꿰고 있는 굵은 모과나무가 벌써 열매를 달고 섰다. 장미와 단풍이 담장을 치고 있는 앞쪽 펜스 아래엔 일본조팝, 둥근 향나무와 홍가시나무가 외부시선을 막아서고 있다.


꽃밭을 만드느라 떼낸 잔디를 시멘트 마당에 부직포를 깔고 얹어놓았는데 다소 비관적이긴 하지만 반쯤은 살아 희망을 갖게 한다. 실험적 시도이긴 한데 하늘이 도와주질 않는다. 소나기라도 한차례 내려주면 좋으련만 매일 물을 흠뻑 주기엔 꽤 넓어져버렸다.


연못을 갖고 싶었지만 큰 작업인 데다가 관리도 어렵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대형화분을 구입했다. 수생식물화분에 물양귀비와 어리연, 부레옥잠을 키운다. 처음엔 턱없이 커 보였지만 이젠 잎이 화분을 덮어 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얼마 전부터 노란 물양귀비꽃이 피어 믿음에 대한 보답을 받은 느낌이다. 이 순간 모네를 떠올린다면 너무 지독한 개그일까? 수경화분 하나는 일반화분으로 탈바꿈시켰다. 가자니아, 비덴스, 메리골드, 왕수염패랭이, 송엽국, 세이지 등 키 작은 꽃들이 아기자기한 일가를 이뤘다.


부직포 화분에 담긴 아스파라거스는 작년에 씨앗을 모종으로 키워 심었는데 올봄에 새순의 맛을 보았고 내년부턴 본격적인 상차림 메뉴가 될 듯하다. 그 옆으로 천일홍과 달리아가 각각 플랜터 한 박스씩 차지하고 있다. 최근 화려한 모습의 달리아가 다채로운 색깔로 피어나 정원 순례의 기쁨을 더해준다. 씨앗으로 심어도 홑꽃과 겹꽃이 골고루 피어나 구근으로 번식한다니 대견하다. 한여름엔 천일홍도 개화해서 이름만큼 긴 즐거움을 나누리라.


매미 울어대는 한 여름은 아직이건만 한낮이면 이글거리는 태양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내기에 너무 벅차다. 챙 넓은 모자는 기본이고 때론 선글라스도 써야 한다. 그늘이 없다. 그래도 잔디마당 여기저기 몸집 큰 반송이 여섯, 한가운데 키 작은 배롱나무가 한 그루 있어 시선은 시원하다. 그렇지만 좀 더 밝고 컬러풀한 정원을 만들고 싶어 2년생 샐릭스 묘목을 대문에서 별채를 지나오는 길 따라 심었다. 적어도 3년은 지나야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겠지만.


서편에 보령호수와 빈정산 능선을 바라보고 앉은 별채 옆으로 퍼걸러가 있다. 재작년 늦가을에 만들고 작년에 등나무와 으름을 심었는데 이제 가지가 지붕에 다다랐으니 내년쯤 그늘이 만들어지면 전망 좋은 쉼터가 될 것이다. 퍼걸러 아래엔 원래부터 자라던 식물들이 그대로 있다. 봄이면 만첩홍도화와 황매화가 만발하고 작은 은방울꽃이 숨바꼭질을 한다. 아이리스가 지고 난 이 계절엔 복분자가 익어가고 가을로 갈 때쯤엔 하얀 구절초가 청초한 모습으로 감동을 줄 것이다.


윗집과의 경계엔 바윗돌로 담이 조성되어 있는데 온통 오래된 철쭉이 자라고 있어 일 년 내내 삭막하지 않다. 보령이 돌로 유명한 것도 있지만 보령호를 조성할 때 그곳의 돌을 옮겨다가 조경용으로 사용했다고 전해 들었다. 철쭉 위로는 윗집의 수목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그 자체가 훌륭한 경관인 데다 그 뒤로 아미산이 내려다보고 있어 든든하고 깊은 산속에 들어앉은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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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을 바라보며 대형 플랜터박스에서 쌈채소를 한소쿠리 따 점심 준비를 한다. 덩굴장미와 능소화가 심긴 아치를 지나면 둥근 향나무와 당단풍, 중국단풍, 모란, 화살나무가 울타리처럼 자라는 오래된 사각형 화단이 있다. 이 화단에서 가장 큰 나무는 반송이다. 가지를 많이 치지 않아 키가 커버린 것인데 그 발치에 꽃잔디와 백리향이 깔려 있고 해마다 독말풀이 조금씩 자리를 바꿔가며 피어난다. 키 큰 나무로는 수돗가 앞 자목련과 백목련, 뒷마당에서 옮겨 심은 불두화 그리고 주목이 있다. 주목은 겨울 내내 트리등이 걸려 추위를 누그러뜨려 주는데 서둘러 봄을 알리는 돌단풍도 이 나무 밑에서 해마다 피어난다.


주목 옆에도 채소 전용 플랜터 박스가 있는데 고수, 바질과 브로콜리가 크고 있다. 시금치를 수확한 자리엔 한여름에 먹을 상추를 재차 심었다. 여기서 수돗가로 가는 길엔 한때 꽃잔디와 패랭이가 가득했고 이젠 송엽국이 만발해 있다. 마주한 포도나무 덩굴 발치에선 꽃범의꼬리가 주인 행세를 하려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원래 이 화단의 주인은 이른 봄 수선화, 완연한 봄에 작약으로 바뀌어 왔고 라일락, 할미꽃과 매발톱, 이베리스가 거들었었다. 지금은 춘추전국시대, 여기저기 우단동자, 자주달개비, 금계국, 샤스타데이지와 톱풀이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제 곧 수국이 자신이 이 계절의 진정한 주인임을 알리게 될 것이다.


이제 밤나무 향으로 뒤덮인 뒷마당에서 시작한 정원 순례가 끝나간다. 새로 심긴 금목서와 납매, 키 작은 고광나무, 병꽃나무는 무사히 적응하고 있고, 올해 심은 버들마편초, 라벤더, 가우라 같은 화초도 꽃을 피워 존재를 확인시킨다. 여름으로 향하면서 접시꽃과 큰꿩의비름이 몸집을 불려 가고, 삼엽국화와 치자나무에도 꽃이 피길 고대한다. 아, 그리고 화분 속 재스민과 카라, 유칼립투스도.


왜 연말 시상식에서 연예인들이 그토록 길게 호명을 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그밖에 이름 모를 풀들, 알지만 불러주지 않은 식물들에게 감사음악을 전하고 싶다. 발레도 호두까기 인형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Tchaicovsky의 <Waltz of the Flowers>는 유월의 정원 순례에 어울리는 곡이 아닐까 싶다. 2주년을 축하해! 그리고 앞으로 20년 정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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