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키친가든

Listen to the music, Doobie Brothers

by 잼스

이런 날씨엔 경쾌한 음악이 더위를 날려주죠. 볼륨을 높여 Doobie Brothers의 <Listen to the music>을 들어요. 기타 연주가 들리자마자 생기가 돌아옵니다. 흥겨운 멜로디가 지치고 처진 기분을 명랑 발랄하게 바꿔주네요. 가사도 맘에 쏙 듭니다.


Listen for the happy sounds

Whoa, oh listen to the music

All the time


그리고 단풍나무 그늘에 앉아 콩껍질을 벗깁니다. 알알이 박힌 새파란 완두콩이 정성스럽습니다. 누렇게 마른 것도 있고 아직 시퍼렇게 성한 것도 있는데, 알이 큰 것은 정말로 콩 한쪽 나누어 먹기에 충분합니다. 사실 이른 봄에 텃밭을 갈아 놓고 가장 먼저 심을 수 있는 작물이 완두콩이었더랬습니다. 시험 삼아 대여섯 개 심어 본 것인데 자라는 모습이 마뜩지 않아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덩굴이 있지만 감아 올라가지도 않고 옆으로 쓰러지듯 자라서 제 눈엔 볼품없는 성장으로 보였습니다.


뿌리째 뽑아 옆에 놓고 콩을 까니 제법 콩깍지가 쌓여갑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서 의외의 수확이 생기니 대견한 마음도 들지만 좀 더 살펴서 실한 열매를 맺도록 할 걸 하는 미안함이 더 큽니다. 다른 작물에 신경 쓰느라 눈길을 주지 않는 농부가 야속했을 완두콩. 슬퍼서 퍼런 기대감이, 말라붙은 콩껍질 속에서 느껴지는 듯합니다. 사람도 이와 같은 일이 왜 없겠어요? 수많은 관계 속에서 관심과 칭찬을 기대하는 것 말입니다. 매정한 외면에 서운함을 삭이며 다시 열심히 살아가는 온갖 모습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20230620_014504.jpg


하지에 환갑을 맞은 감자를 캤습니다. 슬픈 예감 틀리지 않아 씨알이 굵고 잘 생긴 것들은 두더지가 모두 건드려 놓았습니다. 백일 정성이 퇴비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같이 나눠 먹는 거야 그럴 수 있다 해도 왜 꼭 큰 놈으로 한 입씩만 맛보고 마는 것인지... 직접 만나 따지고 싶네요. 감자의 덩이줄기가 단단해지라고 보름동안 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흙이 들러붙지 않아 깔끔합니다. 손으로 털어내 상자에 담아 정리하기도 좋고요.


오이와 애호박은 넝쿨이 이미 지주대를 넘어섰습니다. 아래쪽 누렇게 바랜 제 구실 다한 잎은 정리를 해주고 유인줄에 집게로 달아맸던 줄기를 조심조심 아래로 내립니다. 위로 더 뻗어나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는 거죠. 언제까지 줄내림이 계속될지 처음 해보는 나도 궁금합니다. 오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채소들에게 수분공급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렴한 스프링클러를 호스에 장착해 손쉬운 물 주기를 하고 있어요. 텃밭 면적이 그리 넓지 않아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조금씩 영리한 농부가 되어가고 있어요.


호박꽃은 큼직하고 꽃조차 소담스럽습니다. 그에 비해 오이꽃은 상대적으로 작고 얼핏 어리연꽃을 닮은 듯합니다. 당연히 벌들은 이들의 노란 꽃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전략적인 수정 덕분에 자고 일어나면 주렁주렁 열린 열매가 나를 놀라게 합니다. 그 옆에는 이제 새빨간 왜성백합이 지고 노랑백합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이런 것이 키친가든의 모습이죠. 채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화초가 있어 시선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오이 줄기에 난 가시털에 찔렸습니다. 싱싱한 백다다기 오이는 표면돌기도 날카로워서 조심히 다뤄야 합니다. 손을 찔릴 수 있어 반드시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해야 합니다. 애호박의 미끈한 표면은 쉽게 상처가 나기 때문에 전문농부들은 아예 비닐껍질을 씌워 기릅니다. 비닐에 꽉 차면 모양도 좋고 수확할 때가 된 것이니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습니다. 마을 노인회관에 수확한 오이와 애호박, 청양고추를 조금 갖다 드리니 바로 호박부침개를 해서 가져다주시네요. 혼자 있는데 두 장이나. 시골분들의 정겨운 마음도 얹혀왔습니다.


20230620_014643.jpg


놀랍게도 키 작은 청양고추가 오이고추보다 먼저 열매를 주었습니다. 키는 두 배나 더 큰데도 오이고추는 아직 딸만큼 크지 않았어요. 역시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이모저모로 맞는 것 같습니다. 색다른 채소가 하나 있는데 - 전혀 닮지 않았지만 - 레이디핑거라 불리는 오크라입니다. 모종으로 키울 땐 잘 자라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아열대지방 출신답게 지금은 야성미를 뽐내며 부쩍 컸습니다.


당근은 온갖 풀들 속에서 악전고투 중이지만 좋은 결과를 내주길 기대하고 있어요. 만약에 성공하면 내년부터 비닐 멀칭을 좀 줄여보려고 하거든요. 비닐을 한번 깔면 겨울이 올 때까지 쓰고 있긴 하지만 결국 비닐쓰레기가 되는 거라서 말입니다. 열무로 한번 시도해 봤지만 역시 여름이 다가오니 풀을 이기기 쉽지 않네요. 그래도 세 번째 수확이니 제 몫을 톡톡히 해 낸 열무, 熱일한 당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방울토마토 냄새는 밤꽃과 닮아서 약간 비릿한데 밤꽃처럼 뒷내음이 달지는 않아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거야 네 취향이라고 얘기하듯 파란 열매를 달고 열심히 몸집을 불려 가고 있고요. 아스파라거스는 좁쌀 같은 꽃을 달고 대나무처럼 섰고, 훌쩍 자란 옥수수도 크림색에서 밤색으로 수염 색깔이 변해갑니다. 사람도 늙을수록 짙어지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가지면 좋을 텐데 말이죠. 5월 말 경에 시장에서 사다가 심은 실파가 거의 대파의 골격을 갖춰갑니다. 파농사 참 쉽네요. 적당한 간격으로 심어놓고 물도 한번 주지 않았는데 저 혼자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양배추와 브로콜리는 모양 빠지게 구멍이 숭숭 나있습니다. 양배추는 속이 덜 찼지만 브로콜리는 거둘만한데 그 모습이 식욕을 자극하지 않아 수확을 미루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미 늙어버린 것들도 있어요. 고수는 다 자라 꽃이 피었는데 하얗고 앙증맞은 생김새가 부추꽃을 연상시킵니다. 산마늘은 대파처럼 둥그런 꽃씨를 만들어 날리고 있습니다. 치커리도 속대가 불쑥 솟아 닭다리연골 같은 모양으로 자랐고요.


텃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상추일 텐데요. 따로 플랜터박스에 심어 즐기고 있지만 감자를 캐낸 자리에도 늦모종을 심어 일찍 자란 녀석들과 시차를 두어 기르고 있습니다. 장마와 한여름엔 비에 녹고 뜨거운 햇볕에 잘 자라지 못하는 상추. 그만큼 귀해지기 때문에 반그늘 쪽에도 심어 기를 예정입니다. 뒷텃밭에선 작년에 제 스스로 씨앗을 퍼뜨린 들깨가 상추를 거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먹어 볼 차례입니다. 감자는 얼마 전에 한 두둑에서 조금 캐내어 미리 시식을 해봤죠. 소금물에 잘 쪄서 뜨거울 때 손가락 후후 불며 껍질을 까서 먹으면 달달한 것이 입 안에서 바로 녹아버립니다. 이 맛에 텃밭 농사짓는구나 싶죠. 완두콩도 마찬가집니다. 밥솥 뚜껑을 열었을 때 김서린 흰 밥 속에 알알이 박힌 녹색 알맹이의 데코레이션. 감동 한 스푼이 더해집니다.


된장찌개에 깍둑썰기로 적당히 넣어 먹는 감자와 애호박, 콩국수에 얹어 먹는 오이채, 여기저기 다 들어가는 아직 매운맛이 덜한 청양고추, 모든 요리에 다 들어가지만 특히 기름에 푹 익혔을 때 가장 맛있는 대파가 된 실파, 어떤 반찬도 그 속에 싸서 먹으면 건강하고 맛난 음식으로 바꿔주는 복채소 상추와 들깻잎. 이렇게 6월의 가든이 키친으로 들어왔습니다.


끝이 아니죠. 내 정원 유월은 블루베리가 익어가는 시절입니다. 주절이주절이 열린 진보라빛 열매가 알알이 박힌 그 모습을 보면 입안 가득 침이 고입니다. 아직까진 딱 하루 먹을 만큼만 내어 주고 있지만, 그것이 이 더운 계절에 냉동 디저트로 그만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Doobie Brothers는 <Listen to the music>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Meet me in the country for a day

We'll be happy, and we'll dance

Oh, we're gonna dance our blues away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월의 정원 순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