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깎기, 잔디깎이

언제나 몇 번이라도(piano ver.), Hisaishi Joe

by 잼스

왜 잔디를 깎아야 할까? 마침 마실 나온 이웃 할머니들이 오며 가며 격려한다. "어쩜 그리 깔끔하게 해 놨댜?" 이 때문이다. 보기에 좋다. 직관적인 기쁨이 있다. 화려한 색감의 유려한 꽃과 어우러진 푸르른 공간, 확 트여 정돈된 여백은 잔디마당이 가진 매력이다.


본래 잔디는 벼과의 초식동물 먹이다. 잎이 자랄만하면 동물의 이빨에 수시로 잘려나가다 보니 광합성을 위해 개체 수를 늘려나가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잔디 깎기는 단순히 풀밭을 고르고 보기 좋게 만들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잔디의 생물학적 특성에 맞는 관리방법이다.


생장점이 낮은 잔디는 짧게 잘라주면 세력 좋은 새잎이 빽빽이 자라 잡초와 병충해가 들어설 공간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자주 깎아 주면 살아남기 위한 본능을 자극해 좋은 밀도의 잔디밭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생육이 왕성한 5월부터 8월 사이에는 적어도 2주에 한 번 정도 깎아 5~10센티 높이를 유지해야 한다.


사실 잔디밭엔 유쾌하지 않은 기억들이 꽤 있다. 마당에 잔디를 조성한 것이 일제강점기부터였기에 일제의 잔재라는 이야기도 있고, 어릴 적 공원에 꽂혀있던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에 대한 거부감, 손쉬운 잔디 조성을 위해 농약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환경오염 논란을 일으킨 골프장 등. 과거와 싸울 필요는 없지만 애써 지울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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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흠뻑 젖었다. 시원하게 물을 끼얹고 나니 하루의 마무리가 만족스럽다. 노동의 결과가 잔잔히 나를 바라본다. 잔디 마당이 사뭇 깔끔해졌다. 창문 너머 뒤뜰에서 밀려오는 풀내음이 싱그럽다. 예초기로 베어낸 여운이다. 뒤뜰은 잔디와 각종 풀들이 사납게 뒤엉켜 있어 강력한 엔진식 예초기를 사용한다. 나일론끈이 돌아가며 풀들을 마구 쳐낸다. 웬만한 나뭇가지도 잘려나간다. 다소 위협적이지만 액션 누아르 톤의 쾌감을 동반한다.


전 주인이 남기고 간 자주식 잔디깎이가 있었다. 자주식은 밀지 않아도 제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기계다. 그래서 힘이 덜 든다. 한데 몇 번 사용하지 않아 고장이 났다. 수리점에서 어찌어찌 고쳐보았지만 성능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어느 날 엔진오일이 넘치더니 이내 몸져누웠다.


그때는 아예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도 할 겸 수동잔디깎이를 쓰기 시작했다. 가볍고 저렴하지만 칼날이 돌아가며 맞물려 깎이는 방식이라서 한 번에 깔끔하게 잘리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곳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하고 깎이는 폭도 좁다. 힘으로 밀고 나가는 방식이니 어느 정도 체력도 받쳐줘야 한다.


육체적 수고로움이 달가운 것에는 유효기한이 있다. 최면이 풀리는 날이 온다. 언제부턴가 잔디 깎기를 자꾸 미루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쉬운 일을 너무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 도구를 교체할 때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기 시작했다. 최적의 잔디깎이를 찾다가 비싼 가격에 연신 놀라고 한숨을 쉬면서.


참 다양한 제품이 많다. 우선 동력원에서 휘발유와 전기로 나뉜다. 휘발유를 쓰는 것은 엔진오일도 필요하고 해서 번거롭다. 힘이 좋은 대신 동네방네 소음이 크다. 전기는 유선식과 충전식이 있다. 전기선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하고 과부하의 위험도 있다. 충전식은 다 좋은데 짧은 사용시간이 단점이다.


물론 예초기 하나로 다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 그 정도 능력이 안된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풀의 종류와 뜰의 상태에 맞춰 사용하는 기계도 달리 쓰고 있다. 결국 주문 버튼을 눌렀다. 은퇴 전 골프에 쏟아붓던 돈을 생각해 보며 클릭하는 손끝을 가볍게 만들었다. 총알같이 배송되어 왔다. 충전식 잔디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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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부드럽게 잘 나간다. 소음도 적고 무엇보다 왔던 길을 다시 지나갈 일이 생기지 않는다. 두 시간 걸리던 것이 삼십 분으로 줄었다. 땀도 흘리지 않고. 이러니 자꾸만 기계가 늘어간다. 어쩌랴 관리하기 쉬워야 정원생활도 즐거운 것을. 나이 들어감을 막을 수도 없고. 경쾌하게 늙어가고픈 정원생활자에겐 문명의 이기가 필요하다.


부르고 있는 마음의 어딘가 안에서

언제나 마음이 두근거리는 꿈을 꾸고 싶다

부르고 있는 마음의 어딘가 안에서

언제나 몇 번이라도 꿈을 그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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