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지과학에서 언어학으로
'시제'나 '상'과 같은 언어학의 관념은 아래와 같은 문장에서 '었'의 기능을 설명하는 데 어느 정도나 유용할까?
이제 보니 범인은 C였어.
누군가는 '었'을 과거의 '시제'를 나타낸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제 보'는데 왜 과거 시제가 사용되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화자가 현재의 의식의 변화(새로 알게 됨)를 언급하고 있으니까 적어도 과거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상'인가? '상'이라고 하기에는 상황의 전개 양상이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 않으니 무리가 있다. '너는 이제 죽었다'의 '었'과 비슷하게 화자의 의식이 관련된 것 같은데 그렇다고 '확신'과 같은 양태적 기능을 표시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언가 좀 찝찝하다. '었'과 '확신'을 연관짓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 '었'이 혹시 [범인이 C이다]라는 상황의 전개 양상이나 순서가 아니라 화자의 의식과 관련된 것은 아닐까? '진술된 상황[명제 상황]'이 아니라 '화자 자신이 포함된 상황[화용 상황]'과 관련된 것일 가능성은 없을까? '[범인=C]은 과거 상황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범인=C]임을 알게 되는 변화가 생겼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었'이 명제 상황이 아닌 화용 상황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상적 변화를 나타낸 것이라면? 그러면 '었'이 경우에 따라서는 '확신'이라는 양태적 기능을 표시하는 것도 설명이 될 것 같다. 화용 상황의 특성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확신'으로까지 확대 해석이 가능하고 위에서 든 예처럼 그렇게까지 해석하기는 어려울 때도 있는 게 아닌지. '더'의 경우 그런 변화가 과거에 일어났음을 표시하는 기능이 있으니까, '었'에도 의식의 변화와 관련된 어떤 기능이 없으란 법은 없지 않을까?
아래 화자의 의식에 변화가 생겼음을 나타내는 '었'이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몇 예를 보면서 각자 판단해 보시기를...
이제 보니 철수가 밥을 먹었군.
이제부터 철수는 밥은 다 먹었군. (철수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이해된 상황)
이제 철수는 내일부터 아침 밥은 다 먹었군. (부인에게 잘못을 한 철수, 미래 명제 상황에 대한 화용 상황)
근데, 어쩌다가 이런 지엽적인 문제로 고민을 하게 된 건지... ㅡㅡ?? 아무튼 이제부터 본론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여 경험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이 관념적으로는 구별되지만 인간의 감각 기관은 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공간 지각'이나 '시간 지각' 자체가 5감으로 수집한 정보들과 기억된 정보의 융합에 의해서만 가능한 복잡한 인지 능력인데, 둘 중 어떤 정보가 보다 원초적인(원자적인) 정보인지에 대해서는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시공간에 관한 경험을 상황의 변화로 이해한다는 정도랄까? 시공간에 관련된 경험은 상황의 변화에 관한 경험이다. 상황의 전개 양상이나 상황의 순서가 복합되어 우리의 경험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러한 복합 과정에서 과거의 일은 분명한 사실로 이해될 수 있고 가정 상황은 불확실한 가능성의 상황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경험에 관한 우리의 인지 능력이 상황의 시간적 속성을 '전개 양상'과 '순서'라는 두 가지 양상의 복합 양상을 구성하는 능력임을 시사한다. 언어학의 관념을 빌어 표현하자면 '상'적 경험과 '시제'적 경험에만 국한될 필요가 없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나 할까? 시공간 인지에 관한 신경생리학적 기제에 대한 연구를 뒤져 보면 뭔가 흥미로운 설명 방법을 발견하게 되지는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