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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May 25. 2016

썸 타 봤어? 어때? 케미 돋아?

- 언어와 그 무엇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것이 묘하게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썸 탄다"

"케미 돋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표현이 생겨난 것이 못마땅할지 모르겠다. 혹자는 언어의 오염을 논할지도 모를 일이다.


뭐 나름 한국어 연구자인 나로서는 두 표현들을 이해하게 된 순간 이렇게 말했다.


와~! 진짜 케미 돋는다!


왜냐하면...


영어의 'something'에서 'some'만을 따로 떼어내어서, 그리고 'cheistry' 또는 'chemical'의 어근 'chemi'만을 따로 떼어내어서 한국어 어휘 요소처럼 사용하여 전체 표현의 핵심 의미 요소로 사용했따는 점에 우선 놀랐다. 영어가 이 정도까지 한국어에 융화될 수 있다는 점에 두 번째로 놀랐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착착 감기는 표현을 만들었을까 싶어서 또 놀랐다. 정말로 '케미 돋았다'


한동안 시간이 흘러서 알게 되었다. 내가 이들 표현의 의미를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나 혼자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썸 탄다'는 말은 '무언가에 대한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정도의 뜻으로 이해했고 '케미 돋는다'는 '체내에서 화학적 작용이 일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정도의 뜻으로 이해했다. 물론, 한동안 그런 의미로 이 표현을 사용해 왔었다. 두어 주 전 이들 표현을 오용한 나를 바라보던 학생들의 눈동자란...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나름 국어학자이니만큼,[각주1] 이들 표현의 정확한 의미와 용법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국어사전을 찾아 보면 '타다' 항목에서 총 26개의 뜻풀이를 볼 수 있다. 그중 '썸을 타다'의 '타다'와 관련될 법한 뜻풀이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정도로 보인다.


'타다'  [표준국어대사전]

1) 마음이 몹시 달다.

2) 바람이나 물결, 전파 따위에 실려 퍼지다.

3) 바닥이 미끄러운 곳에서 어떤 기구를 이용하여 달리다.

4) 그네나 시소 따위의 놀이 기구에 몸을 싣고 앞뒤로, 위아래로 또는 원을 그리며 움직이다.

5) 의거하는 계통 질서나 선을 밟다.

6) 몸에 독한 기운 따위의 자극을 쉽게 받다.

7) 부끄러움이나 노여움 따위의 감정이나 간지럼 따위의 육체적 느낌을 쉽게 느끼다.

8) 계절이나 기후의 영향을 쉽게 받다.


한국어 화자들이 어떤 연유로인가 '썸'이라는 새로운 말을 쓰게 되었을 때 이 말과 함께 쓰는 말로 '타다'를 선택하였을 텐데, 아마도 그 때에는 순간적으로 이상의 의미들 가운데 한두 가지에 해당하는 의미와 '썸'을 관련지었을 것이다.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썸 탄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타다'의 의미를 2)와 유사하게 이해했었다. 이성 간에 미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 주변 사람들이 이를 눈치채고 설왕설래하는 현상을 '썸 타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이해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 물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자기들끼는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는 '썸 타다'임에도 불구하고 '타다'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었다.


1) 분위기를 타는 것

2)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것

3) 감정을 타는 것

가장 많은 답변은 1)이고 2)도 적지 않은 답변이었다. 3)은 주변의 고등학생이나 대학 신입생(16학번)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대답이었다.[각주2]


순간, 정말 신기했다. 언어학 이론은 언어 기호는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기본적인 전제에서 수립되어 있다. 그런데 '썸 탄다'는 표현을 쓰는 학생들은 자기들 끼리도 서로 다른 의미로 '타다'를 이해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의사소통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아주 미묘한 용법상의 차이를 간파하여 나의 용법이 어색한 용법임을 예외없이 눈빛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나의 용법이 잘못되었거나 어색함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언어학의 전제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개별 단어의 의미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면 통어 현상과 의미해석 과정에는 언어 기호의 사회성과는 조금 화용론적인 그 어떤 원리가 더 관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케미 돋았다.[각주3]


지나친 망상일지 모르지만 요즈음 학생들의 신조어들을 보다 면밀하게 관찰해 보면 기존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어떤 현상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각주 1) 주변 사람들은 나를 '한글학자'라고 말한다. 무언가 궁금한 점이 있을 때면 "한글학자가 이런 걸 알려 줘야지"라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내가 나를 학자라고 하기가 민망하지만 굳이 학자라고 해야 한다면 "국어학자면 국어학자지 한글학자는 뭘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각주 2) 누군가의 입에서 "감정을 타는"이라는 표현을 들어 본 일은 처음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들 가운데 1)에 가까운 뜻으로 '타다'를 사용한 것임이 분명한데, 그래도 "감정"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하는 경우는 처음 접해보았다. 아마도 '썸 탄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을  십대의 학생들은 '감정을 탄다'는 표현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세대 간의 언어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부분일 가능성도 있을 법하다.


각주 3) 이 경우 '캐미 돋았다'는 필자만의 용법이다. 일반적으로 이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학생들)은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어쩌면 필자 또래집단에서 '캐미 돋다'라는 표현이 수용될 때 필자만의 용법과 유사한 용법으로 수용된다면 '캐미 돋다'는 세대차를 드러내지만 동일한 언어 집단 내에서 사용되는 재미있는 표현이 될 것이다. 사실 은근히 그렇게 도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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