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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Oct 22. 2023

'언어' about '學而時習之不亦說乎?'

-  prologue(?)

學而時習之내 학창 시절을 옭아맸던 말이다. 삶에서 어떤 성취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말이다. 배우고 익히는 일의 보람(標)을 제도권에서 발부하는 학위 증서로 취합해 내면서 인생에 대해서도 조금은 느껴 본 듯하다. 하지만 작은 성취를 이룬 후에도 그 과정은 한없이 지지부진하고 귀찮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 인생의 깨달음으로만(만으로?) 정의해 보자면 이렇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잘만 해 내면 보람을 느껴 기쁠 수 있으나, 그 과정이 무척 힘들고 귀찮으며

          매일의 성취를 느끼기도 어려워서 일반적으로는 삶에서 지속적으로 성취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일.


대체로 무언가는 배우고 익히는 일은 쉽지가 않다. 머리를 쓰건 몸을 쓰건 마찬가지다. 공부가 되었든 운동이 되었든 우리 인생에서 뭐 하나 쉽게 배우고 익힌 것은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인생에서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배우고 익히는 일'이 있었던가? 


물론이다. 있었다. 우리 모두 그랬다. 무슨 소리냐고??


말(모국어)을 배우고 익힐 때는 지겹지도 귀찮지도 않았다. 배운 기억조차 없다. 누군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외국어를 새롭게 배울 때는 왜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처음 말을 배울 때는 귀찮았던 기억이 없다. 물론, 보람의 기억도 없다. 말을 깨우쳤을 때 무언가 뿌듯했던 기억이 없으니까. '보람'이라는 걸 느끼기 이전에 생존의 안도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귀찮음도 성취감도 없었다. 말을 배우는 일은 그랬다. 글을 깨우치는 일은 '학이시습지'에 해당했지만 말을 깨치는 일은 분명 그렇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말을 깨우쳤다고 어른들이 기특해 하실 즈음부터는 말을 배우기 전에 비해서 훨씬 많은 사건들이 기억이 난다. 글을 배우면서 받아쓰기를 못해서 애 먹던 시절은 구구단을 못 외워서 애 먹던 시절과 겹친다. '학이시습지'의 고달픔을 절감하면서 공자님이 더 싫어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 시절, 말을 배우고 익히던 시절은 기억조차 흐릿하다. 언어가 기억의 주요한 수단이 되는 모양인지, 말을 배우고 난 이후의 시절에 대해서는 훨씬 많은 일들이 기억나는데 그 이전은 기억이 흐리다.


學而時習之. 어쩌면 우리 인생의 첫  學而時習之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였는지도... 기억이 흐릿하기는 하지만 두 번째 학습 경험부터는 귀찮니즘이 우리 삶에 끼어든 게 분명하다. 말을 깨우치는 일이야말로  學而時習之의 본질이었으리라! 우리 모두는 學而時習之의 본질을 이미 깨우쳤음에 틀림이 없으리라! 기억이 흐릿하여 잊은 채 살아감이 못내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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