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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Dec 05. 2023

'꾸다+이→꾸이다' - 시대별 직관 차이

가중치의 변화와 시대 격차

문법은 빈도의 문제라는 시각이 있다. 자주 사용하는 패턴이 거의 항상 사용하는 패턴이 되면 문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한다.


해당 관점을 견지할 때 '-시키-'의 과도한 사용에 주의하라는 글쓰기 수업의 중요 강령에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사역의 의미가 포함된 경우에는 '-시키-'가 '-하-'보다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하물며 한자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들에게는 '-시키-'는 악마의 유혹이지 않을까?


인간의 머리 속에서 문법의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모델링한다고 할 때, '-시키-'와 '-하-'의 혼용은 신경망에서 정해진 가중치가 변하는 현상에 해당할 것이다. 그 원인은 한자 교육의 약화로 어근의 의미 퇴색 정도일 것이고.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과연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게 만드는 현상이 있다. 그런 현상 중 하나가 단위 의미의 조합으로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다. '먹이다'의 의미는 단위 의미인 '먹-'과 '-이-'의 의미 조합으로 잘 설명이 되는데, 이와는 달리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문법 현상이 있는 것이다. 한 때는 자연스러웠을 아래의 현상이 그 예이다.



'꾸다'의 의미를 알고 '-이-'의 의미도 안다. 그런데 그 조합인 '꾸- + -이-'의 의미는 한번에 이해되지 않는다. 생각을 조금 해야 한다. 맥락을 보면 '꾸이다'의 의미는 '빌려주다' 정도이다. '꾸다'가 '빌리다'이니까 '꾸이다'는 '빌려주다'가 된 것일까? 그러면 '-이-'는 역할 바꾸기의 기능을 가지고 있나? 문법 규칙으로 '꾸다 + -이- → 꾸이다' 현상을 설명하려니 꺽꺽거림이 있다이건 무슨 현상이지?! 적어도 21세기 한국어에서는 흔하지 않은 패턴임에 틀림이 없다.


한국어 성경 <개역한글판>이 언제적 문법 직관을 반영한 것인지 찾아 보았다.

출처:  개역 성경 - 나무위키 (namu.wiki) <https://namu.wiki/w/%EA%B0%9C%EC%97%AD%20%EC%84%B1%EA%B2%BD >

1938년의 한국어가 반영되어 있었다. 그런 직관은 1961년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텍스트는 보수성이 있으니 이미 사라져가는 직관이 반영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1938년판이 70여 년 동안 그대로 유지되었다"고는 하지만 당시의 직관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7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적어도 '꾸이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되었고, 지금 시점에 적어도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되어 있다.


맥락을 통해 짐작한 바, '꾸이다'가 '빌려주다' 정도를 뜻한다면 '이'의 정체는 무엇인가? 피동인가 사동인가? 피동이라면 '빌리다→빌림을 당하다' 정도의 의미 변화와 관련되고, 사동이라면 '빌리다→빌리게 하다' 정도의 의미 변화와 관련된다. 생각해 보면 둘 다 가능해 보인다. '-이-'는 도대체 뭘까?


이런 문제의 원인이 어쩌면 '꾸다' 자체의 의미가 불분명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꾸다, 꾸어주다'로 간단한 문장들을 만들어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너에게 꿀 수도 있고, 내가 너에게 꿔어줄 수도 있으며,  내가 요청하여 니가 다른 이에게 꾸어줄 수도 있다. '-어 주다'의 수혜 기능이 '꾸다'와 결합할 때 '꾸다'와 '꾸어주다'의 의미에 구별이 상쇄되는데, 이런 용법에 익숙해지면 '꾸다'와 '꾸어주다' 사이의 주사동성이 불분명해지는 듯하다. 또 이런 용법에 익숙해지면 '꾸다'에 결합하는 '-이-'가 피동인지 사동인지 판단이 잘 안 서게 되지 않을까?


문법적인 설명은 차치하고, 이런 혼란이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신경망에서 정해진 가중치가 변하는 현상으로 포착할 수 있을까? 과거의 신경망에서 일어난 혼란을 현재의 신경망이 재해석하는 현상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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