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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Apr 19. 2024

"잡사본네요. 잡사본 분들이야."

잡사봐~! 정감있는 사투리.

라이브에서 발화 실수로 이어지면 이렇게 된다. (재생구간 7초)


        "잡사본네요. 잡사본 분들이야."


'잡수- + -어 보- + 았네요'가 '잡사본네요'가 된 실수다. 선어말 어미 '었'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실수의 원인은 뒤에 나오는 '잡사본 분들이야'의 '잡사본'인 것 같다. 모양이 똑같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흔히 언어학자들은 담화 언어 처리의 단위를 한 문장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통사론자들은 한 문장과 다른 문장은 처리 과정에서 독자적인 단위일 것으로 가정한다. 그런데 만약 문장의 길이가 매우 짧다면? '잡숴봤네요. 잡숴 본 분들이야.'처럼 두 문장이지만 비교적 짧고 모양새도 비슷한 두 문장의 연쇄라면?


'잡사본네요'는 분명 완결된 하나의 문장꼴이다. 종결어미 '-네요'가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뒤에 이어질 문장의 일부인 '잡사본'의 영향을 받았다면? 통사 처리는 문장의 종결과는 무관하게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아주 긴 담화의 경우, 특히 설명하기 까다롭고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는 담화의 경우, 머리 속에서 표상되는 사고의 흐름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과정은 문장의 종결과 무관하게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문장을 끝낼 것인지 아니면 이어갈 것인지(종결 형식으로 발화할지 연결 형식으로 발화할지)는 그때 그때 달라질 수 있다. 설명해야 할 전체 관념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말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문장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 설명, 연설, 강연 등등의 발화 행위는 인지적으로는 그런 행위이다. 과연 통사 처리는 완결된 하나의 문장 단위로 일어날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을까? 길이가 긴 문장을 만들어 발화해(글을 써) 보면 안다. 어딘가 문법적으로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는 이유는 통사 처리가 한 문장 단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해야 할 관념과의 정합성을 온라인으로 점검하면서 일어나는 과정임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아래 그림과 같은 처리가 문장을 생성하는 원리라면 우리는 어째서 위 사례와 같은 실수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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