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 공부 - 격

언어 비교: 러시아어—한국어

by 콜랑

러시아어와 한국어의 격을 비교하면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여격(dative)과 대격(accusative)에 관한 것이다. 러시아어는 한국어에 비해 여격을 광범위하게 이용하는 언어인 것 같다.


(1) Мне помог друг.

(2) 나에게 도왔다 친구가


한국어로는 '친구가 나를 도왔다'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문장이 (1)이다. (2)는 '단어 대 단어' 직역이다.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번역하자면 아래 두 가지 정도로 해 볼 수 있다.


(3) 친구가 나를 도왔다.

(4) 친구가 나에게 도움을 줬다.


굳이 따지자면 러시아어 (1)은 (4)에 가깝다. 행위(도움)의 기점과 착점이 보다 직관적이고 분석적인 언어(문법) 형식으로 부호화된다. '도움'이라는 관념을 머리 속에 떠올려 보자. '친구가 그것을 나에게 주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친구가 그것을 나를 주는 것'은 뭔가 어색하다. '나에게'라는 부사어(수혜자:여격)와 '나를'이라는 목적어(대상:대격) 사이의 관념적(혹은 인식적) 간극이 이러한 차이의 원인이다.


한국어에서 '돕다'는 논리적으로 '도움을 주다'와 거의 같은데, 이 때 '주다'의 관념은 '도움'을 전달하는 방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흔히 언어학적으로는 '여격'으로 표지되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어에서는 어러한 여격을 행위 명사(도움)와 방향성 행위 동사(주다)로 분석된 표현 방식에서 사용한다. '도움을 주다 = 돕다'처럼 행위 명사와 방향성 동사의 의미가 관념적으로 합쳐진 동사가 있는 경우에는 여격보다는 대격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단일 동사를 사용할 경우 러시아어는 여격을 한국어는 대격을 쓰는 셈이다.


이러한 비교는 흥미로운 점을 생각하게 한다. 인지적 보편성의 관점에서 보면 '돕다'이든 '도움을 주다'이든 행위의 방향성이 관련됨은 분명하다. 그 방향성은 언어적 보편성으로는 '여격'으로 표지된다. 그러니 언어 보편적인 문법 표지(coding) 방식을 생각해 보면, 한국어도 '친구가 나에게 도왔다' 정도로 표현해야 할 터이나 특이하게도 대격을 사용하는 셈이다. '여격'에 방점을 둔 문법 표지를 굳이 고집하자면 합성적 동사 구성을 사용하여 '친구가 나에게 도움을 줬다.'처럼 방향성을 명시하는 동사를 추가하는 방식을 쓴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서술어가 문미(end of sentence)에 위치하기 때문에 격 표지를 조화시키기 위한 언어적 책략을 발달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말은 동사가 사건을 구성하는 핵심 관념이고 문장 생성의 핵이라는 생각에는 재고의 여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게 아닐까? 서술어 중심의 문장 구조 분석은 아무래도 인지적 보편성을 반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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