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으로 거듭나고 싶은 별명의 의미
글을 쓰고 싶었다. 딱히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의무교육의 울타리 밖을 넘은 순간부터 그저 내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하얀 종이 위에 남기고 싶었다. 성인이 된 지 4년이 흘렀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책 좀 읽으라고 말씀하셔도 밖에서 친구들과 놀고 컴퓨터 앞에 앉아 다른 세상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그래도 학생의 본분에는 충실했다. 성적표라는 친구와 최대한 원만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딱히 어딘가 특출한 곳 없는 나를 위해 부모님은 언제나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올곧은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어찌어찌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는 해,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가 창궐했다. 2020년 2월, 설레는 마음으로 수강신청을 하고 학교 기숙사에 갈 준비를 마쳤지만 현실은 나의 기대에 반응해주지 않았다. 비대면으로 시작한 대학 생활, 배움과 성장의 장이 되어야 할 대학이 컴퓨터의 작은 화면 속에 갇혔다. 그와 함께 나의 시야와 인간관계는 좁아졌다. 다시 성적표에 집착하고 시험에서 저지른 사소한 실수에도 격하게 자책했다. 비록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했지만 인간의 동력은 무한하지 않다. 흔히 말하는 번아웃(Burnout)이 어느 순간부터 찾아왔고 어디서부터 내 삶을 통제하면 좋을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러던 와중, 인간의 삶을 가장 단순하게 만드는 장소가 나를 불렀다. 입영통지서와 함께 대한민국 남성을 반겨주는 곳, 바로 군대다.
나는 지금 1년째 복무하고 있는 현역병이다. 또래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입대해서 주변 사람들은 이미 예비군 n년 차다. 내 주변 남자들은 군대를 '때로는 그립지만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 말한다. 이건 모순이다. 어떻게 그리움과 거부감이 동시에 나타날까? 자유를 통제하고 규율을 중요시하는 이곳이 어딘가 특별한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군대는 단순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잠든다.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일을 한다(심지어 군대 마트에서 산 같은 샤워 용품으로 샤워까지 한다!) 모두가 비슷하니 나를 타인과 비교할 이유가 사라졌다. 모두가 협동해서 일을 하는 이곳에서 성적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 그들이 그립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곳은 경쟁과 비교가 의미 없기 때문이다. 경쟁의 늪에서 기어 나와보니 웅크리고 있는 내 자아가 눈에 들어왔다. 잃어버린 자아와 화해하기 위해 온전히 나에게 집중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동료들과 운동을 했다. 밤이 오면 서로 청춘과 미래, 그리고 삶의 의미를 논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1년을 살아보니 어느 날 문득 예전부터 생각하던 글쓰기가 하고 싶어졌다.
어디서든 사람 사는 건 비슷하다는 말이 있다. 대학에서 나누지 못했던 또래 친구들과의 소통이 이 사실을 증명한다. 비단 20대에만 해당하는 고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미래 걱정을 하며 삶의 이유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서점에만 가도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자기 계발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다음과 같은 단어들을 살펴보자: 청춘, 노력, 열정, 운명, 목표, 행복, 그리고 꿈.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들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의해야 하는 거대한 숙제를 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글쓰기를 통해 천천히 그 숙제를 해보고자 한다. 글을 쓰면서 사람들과 삶을 공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고 싶다. 글을 써보니 작가명이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하다 '별빛카페'라고 적었다. 별빛은 희망이다. 어두운 밤하늘의 작은 빛이자 여행자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소원을 빈다.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나에게 어울린다. 카페는 만남의 장이자 쉼터다. 부디 내 글이 삶의 지친 사람들에게 한 잔의 여유와 편안함을 주길 바란다. 작가라고 하기엔 이게 첫 글이다. 그래서 별명이 어울린다. 별명이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한 걸음씩 숙제를 해야겠다. 갈 길은 멀지만 지난날처럼 막막하지 않다. 그걸로 충분하다.